불혹의 나이에 미국에서 시작하는 스키

엄마가 되고 나서 나의 삶은 훨씬 더 스펙터클 해졌다.

by Feisty Fox

자식을 낳고 키운다는 건 이런 것이다. 지난 몇 십 년간 나와는 아무 상관도 접점도 없던 세상이 마치 시골쥐가 서울에 온 것처럼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되는 것.

아니, 우주선을 타고 대기권 밖으로 정신없이 쏘아 올려져 작은 창문 안에서 저 멀리 떨어진 지구를 보며

“아… 저곳이 내가 살던 곳이구나” 하며 떠나온 세상을 등지고 광활한 우주를 담담히 맞이하게 되는 것. 거창하지만 그렇게 표현하는 게 부모가 된 삶과 더욱 어울리겠다.

아무튼 엄마가 되고 나서 나의 삶은 훨씬 더 스펙터클 해졌다.

아주 평범하지만 너무 보수적이었고, 늘 넉넉하지는 않았던 나의 원 가정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

10k 뛰고 메달 수집하기.


교통사고 나면 큰일 난다는 이유로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자전거를 40살에 구입해서 아들과 동네 달려보기.

피클볼 - 그리고 테니스 수업 (매우 매우 초보이지만)

그리고 대망의 스키.


스키는 대학교 3학년 때 주류회사 하이트에서 주최하던 대학생 스키 캠프 이후로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고 (그 스키캠프에서 조차 스키를 타는 것은 안 배우고 열심히 수다 떨고 베프를 만들어옴…) 그동안 뉴잉글랜드의 눈이 많이 오는 추운 동네에 살면서도 한 번도 관심조차 가진 적이 없었다.

2년 전 다섯 살도 채 안된 아들이 나보다는 풍요로운 겨울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의 꼬마 친구들과 함께 몇 번의 스키 레슨을 보낸 것을 기점으로

나도 스키의 세계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 처음에는 피자를 외치며 스키를 피자 조각 모양으로 만들어서 겨우 Bunny Hill이라 불리는 아가들이 스키를 연습하는 거의 평지… 에서 자신감을 키우고

- 그렇게 한 두 번 하고는 내가 사는 곳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스키장의 가장 초급 트레일에서 피자를 외치며 목숨을 걸고 내려왔고

- “완전 평지” 여서 스키가 안 나갈 정도로 안전하다는 친구의 말을 믿고 초급트레일에 리프트 타고 올라갔다가 (그녀는 그 리프트에서 ‘아 맞다, 그 트레일까지 가는 길은 조금 가팔라’ 하며 실토했다가 내가 한 열두 번쯤 넘어지고 패트롤 불러달라며 울먹이자 내가 불쌍했는지 버리고 가지 않고 턴 하는 법을 알려주어 지금까지도 은인.)

- 그 이후의 몇 번의 스키 여행에서는 초급트레일을 편안하게 내려오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남편과 친구들, 아들친구 그룹 뒤를 따라왔다. (물론 그들이 나보다 보통 20분은 먼저 도착했지만)


아무튼 이번에 다녀온 스키 여행에서 처음으로 그룹을 따라서 중급트레일도 패닉 하지 않고 내려올 수 있었고 그 감회가 새로워 이렇게 글까지 쓰고 싶어졌다.

지나간 겨울들,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머리에는 소중한 추억도 조각조각 일부분만 남아있지만 추운 겨울 트레일에 올라가서 리프트에서 내리면 몸에 저장된 기억들이 재빠르게 일하기 시작한다.


처음 산 꼭대기에서 바라보던 하얀 산 밑의 풍경과 코에 닿던 차갑고 깨끗한 공기.

병아리 같던 아들이 팔을 클 대 자로 벌리고 내려오던 언덕.

남편이 위로 아래로 회전하며 스키 묘기를 부리는 동시에 내려오는 나의 동영상까지 찍고 있는데 정작 나는 목숨을 걸고 내려오고 있어서 웃겼던 순간들.

처음 리프트 타고 올라가 스키를 포기하려던 나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서 내려오게 가르쳐준 친구.

저녁에는 친구와 흑백요리사 그룹처럼 착착 재료를 썰고 볶고 찌고 식사를 준비하던 시간.

엄청 튼튼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스키를 탈 수 있게 도와주는 근육은 하나도 없어서 내려올 때마다 바들바들 떨리던 나의 팔다리.

오늘은 드디어 여전히 무겁고 힘이 없는 그 팔다리가 어려운 길을 내려오는 방법을 약간은 배운 것 같은데 다시 힘을내어 이제는 근육에 그 기억을 저장하기를.

다음 스키 여행을 오랜만에 다시 기대하고 기약해 보며, 다음 런은 좀 더 가볍고 자유로워 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