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인문학 27 : 제목 없는 선택들

by 수안

어느 날, 책과 활동지를 가방 옆에 둔 채로 정신없이 휘리릭 나와버렸다. 그날따라 새벽까지 밀린 넷플릭스 영상들을 찾아보느라, 평소와 달리 책에 대한 집중을 잃은 듯했다. 철저히 준비하지 못했다는 찜찜함이 남은 채, 아침에 겨우 일어나 부랴부랴 집을 나섰고, 학교에 도착해서야 오늘 수업에 필요한 것들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잠깐 멈칫했지만 마음이 급해지지는 않았다. 뭔가 다른 뜻이 있는 걸까. 대신 교실마다 놓여 있던 책장들이 떠올랐다. 일부는 같고 일부는 다른 종류의 책들. 아이들이 자주 꺼내던 책과 거의 손대지 않았던 책들이 자연스럽게 갈라져 보였다.


그 순간 주제가 정해졌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과,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아 한 번도 읽지 않았던 책. 이렇게 두 종류의 책을 함께 읽어보기로 했다.
손도 대지 않은 책들은 대개 오래된 책이거나 줄글책이었다. 물론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손은 만화책으로 향했다. 그중에서도 설명 문장이 함께 들어 있는 인기 만화 시리즈는 생각보다 줄글책 못지않은 분량을 담고 있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가도 중간중간 멈춰 설 수 있어서인지,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첫 반 책장에는 제목이 떨어져 나간 책들이 꽤 있었다. 너무 많이 읽혀 표지가 해지고, 제목이 사라진 채 투명 테이프로 감싸져 있는 책들. 조금 우습기도 했고, 이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책들이 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제목이 없으니 줄거리보다 흔적이 먼저 보였다. 자주 접힌 페이지, 닳은 모서리. 아이들은 설명을 기다리지 않았다.


“이건 ○○가 맨날 보던 책이에요.”
“이건 끝까지 읽은 책이에요.”
이름은 사라졌지만, 책은 여전히 불리고 있었다.
그날 아이들의 책 고르기는 자기 방식으로 반응하는 일이었다.


첫날 한 아이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손톱을 물어뜯는 이야기가 담긴 책을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으로 고른 아이였다. 그런데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을 고르라는 질문 앞에서는, 다들 좋아하는 인기 만화 시리즈를 집어 들었다. 많이들 읽는 책이지만, 정작 그 아이는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날 만화책을 고르지 않은 아이들이 오히려 눈에 띄었다.


조금 뒤, 다른 책을 보고 있던 한 아이가 그림 하나를 가리켰다. 집처럼 생긴 정자가 그려진 장면이었다.
“선생님, 아까 말씀하신 정자가 이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조금 전, 다른 학생이 인상 깊게 펼쳐 보인 페이지의 첫 단어가 ‘정자’였고, 나는 잠시 건축물인 정자를 떠올려 설명했었다. 알고 보니 그 단어는 이야기 속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설명은 어긋났지만, 책과 책 사이는 동음이의어로 묘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다음 날에는 준비해 둔 책을 먼저 소개한 뒤, 음식과 그림이 함께 등장하는 책을 찾았다. 콩, 팥, 작은 동그라미 여러 개와 ‘콩콩콩’으로 시작되는 시부터 읽었다. 작은 동그라미를 보며 어떤 반에서는 초콜릿을 먼저 외쳤고, 고학년 반에서만 콩이라는 단어가 바로 튀어나왔다. 같은 모양 앞에서 반응은 갈렸고, 그 차이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전해졌다.


책을 전부 다 읽기엔 시간이 부족해 목차에 나온 음식 이름만 천천히 불러주고 서너 가지만 고르도록 했다. 의외로 몇몇 반에서는 토란이 선택됐다. 왜 하필 토란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런 선택은 이유보다 먼저 말로 나오기도 하니까. 식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엄마가 설탕을 넣어 저어주며 동동 떠 있는 쌀알을 신기해하던 초등학생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첫 번째 반에서는 또 다른 의외의 상황이 펼쳐졌다. 사춘기를 다룬 책에 몇몇 남녀 학생들이 유난히 큰 반응을 보였다. 심리와 신체 변화, 부끄럽고 조심스러운 이야기들에 웃음과 질문이 반복됐다. 호기심은 컸고, 부끄러움은 살짝 남아 있었다. 나는 어디까지 읽고 어디에서 멈출지를 매 순간 가늠하며 속도를 조정했다.
수업이 끝난 뒤에야 생각이 이어졌다. 이 이야기들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지나가야 할 내용이라는 점. 언젠가는 전문가의 설명을 통해 차분히 듣거나, 각자가 천천히 책으로 확인해야 할 이야기라는 점. 그날의 여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셋째 반에서는 듣기에 집중하게 하려고 목차의 음식들을 랩처럼 읽겠다고 해놓고, 막상 생각보다 빠르게 읽지 못하고 몇 단어에서 버벅거렸다. 아이들이 웃었고, 나도 민망해서 웃었다. 박자를 잡으려던 쪽은 나였는데, 리듬은 어느새 교실 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그날은 잘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어긋나는 사람이 수업을 이끌고 있었다.


첫날의 실수는 우연 같은 필연이었고, 다음 날에는 의도가 더해졌다. 정답을 쥐여주지 않고 방향만 남겼을 때 아이들은 각자의 속도로 움직였다. 이것이 성과였는지 실험이었는지는 아직 말하기 어렵다. 다만 준비가 빠진 자리에서, 준비를 했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과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분명했다.


요즘 나는 설명보다 먼저 나오는 반응들을 조금 더 유심히 지켜본다. 제목 없이 불린 책들처럼, 이유 없이 고른 토란처럼, 많이들 좋아하지만 정작 자신은 펼쳐보지 않았다고 말한 그 아이의 선택처럼, 문득 떠오른 식혜처럼. 감정은 늘 생각보다 한 발 앞서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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