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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곶사슴 Jun 05. 2019

카페 창업의 개꿈

퇴사 후에 오는 것들 #13

모든 상황이 나에게 도전하라며 손짓하고 있는 듯했다. 많지는 않지만 적당히 모아둔 돈도 있었고, 자진 퇴사가 아니라 권고사직이었기 때문에 꽤 큰 퇴직금이 수중에 들어와 있었다. 커피를 많이 만들어본 경험도, 실내 공사도 직접 진행해 본 적 있으니 생판 처음 하는 사람보다는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현실적인 것들 보다도 로망이라는 것이 나의 충동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청춘을 불사르며 나의 길을 개척하는, KBS 9시 뉴스 전에 해주는 드라마 속 주인공마냥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개척해나가는 삶을 살 것만 같은 꿈과 희망.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나이 들고 반드시 후회할 것 같았다.


그런데 조사를 하면 할수록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생각 이상으로 매우 많다는 것과 그들이 선뜻 뛰어들지 못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속속 알게 되었다. 나에게 로망인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로망인 법이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여윳돈이 생기면 한적한 곳에서 나만의 카페를 하고 싶다'라는 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이 만나왔던가. 핸드드립 한 번 내려본 적 없는 사람들도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이 시장이 얼마나 폭발 직전의 레드오션인지 인식되면서 아찔하고 두려워졌다.


커피만으로는 장사를 할 수 없는 것도 문제였다. 직접 만들든 아웃소싱을 하든 커피와 곁들일 무언가가 필요했다. 을지로 카페의 성패를 좌우할 인스타그램 마케팅에 있어 커피의 품질보다는 화려한 공간과 그럴듯한 디저트가 훨씬 더 중요해 보였다.


문제는 내가 마시는 것 외의 것에 손을 대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빵집과 카페 알바를 오래 하면서 별별 음료를 다 만들어 보았지만 정작 탄수화물을 뭉쳐서 만드는 달달이의 생성에 관여한 적은 없었다. 아는 것도 없지만 일단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 도전한 음식은 아보카도 과카몰리였다. 만드는 과정을 영상으로 보니 이보다 쉬운 음식이 없어 보였다. 과연 숲 속의 버터, 아보카도를 반으로 자르고 씨를 빼낸 뒤 속살을 숟가락으로 퍼내서 으깬 다음 다진 채소들과 함께하면 되는 것...으로 쉽게 생각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아보카도를 태어나서 처음 사 본 나는 충분히 익지 않은 아보카도가 그 정도로 단단하다는 것을, 익으면 성질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신의 싱그러움과 탱탱함을 자랑하고 싶었던 녀석은 칼이 자신에게 박히는 것조차 거부했으며, 단단한 씨앗은 좀처럼 제 살과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맛도 내가 먹어본 아보카도와는 많이 달랐다. 굉장히 썼다.


결과적으로, 경험 부족이 만든 부끄러운 경험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파트너에게 이러저러하여 실패했다고 이야기하니 레시피 스크린샷을 보여주며 '여기 익은 것을 쓰라고 나와 있는데'라고 말했다. 일주일쯤 지나 다른 아지트 친구들과 말랑해진 아보카도를 썰어서 김에 싸 먹고 있는데 한참 같이 먹다가 '그런데 갑자기 웬 아보카도야?'라고 물어봐왔다.


...


다음으로 도전한 것은 스콘이었다. 반죽을 만든 뒤 덩어리를 잘라 굽기만 하면 끝인 음식이었다. 과연 영국 놈들. 음식 대충 만드는 것으로 이들을 따라올 문명이 없었다. 그런데 인터넷의 스콘 레시피는 정말 사람마다 제각각이고 설명도 굉장히 두르뭉슬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숫자만 다르고 비율은 같겠거니 하고 몇 개를 비교해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아 보였다. 사용하는 도구에 따라, 만드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만들어지는 음식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스콘 연구가 시작되었다. 반죽의 묽기를 적절하게 맞추지 못해 생김새는 매번 달라졌고, 그럴듯한 생김새를 완성했으나 맛이 영 이상할 때도 있었다. 재료의 성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또 어떨 때는 생긴 것도 괜찮고 맛도 그럭저럭 먹을만한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다.


오븐도 좋은 것을 구하지 않고 창고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던 전기 오븐 토스터를 사용했는데 열이 반죽 속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았다. 타이머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시계를 보면서 어느 정도 구워졌는지를 파악해야 했다.

하루는 크게 망쳐서 정말 맛없는 스콘을 만들게 되었는데, 마침 그 날 아지트에 온 파트너가 스콘을 한 입 먹어보고는 갑자기 유튜브를 찍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은 스콘을 만들어 볼 거예요' 하면서 시작해서 열심히 만드는 과정 보여주고 다 만들어졌을 때 '그럼 이제 먹어보겠습니다!' 하고 한 입 먹는 것 보여준 다음에 쓰레기통에 스콘들 버려져 있는 걸로 마무리하는 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원래 실없는 소리를 많이 하는 친구니 무거워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한 말이겠지. 원래 저렇게 무심한 성격이지. 라며 열심히 합리화를 해보았지만 앞으로 있을, 이것보다 더 큰 시행착오 속에서 계속 이런 식으로 상처 받는 일이 반복될 것 같았다. 좋은 뜻으로 한 행동일지라도 계속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나에게는 좋게 들려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나도 문제였다.


몇 주 동안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걸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의지가 없는 듯했다. 애초에 나는 먹는 일에 그렇게까지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아니다. 카페에 가서 배가 고프지 않으면 주전부리 없이 뜨거운 아메리카노나 드립 커피만 주문하는 사람이었다.


정말 좋아하는 것이거나 너무 실력이 좋아서 사람들이 팔아보라고 하는 것도 될까 말까 한 세상에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들어가서는 본전도 못 찾고 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창업이란 것은 안 될 것 같은 일을 어떻게든 돌파하는 사람들이 거머쥐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도 나는 그 지점을 돌파해야겠다는 의지가 없었다.


그렇게 카페 프로젝트는 퇴사 후 놀다가 일어난 해프닝 정도로 끝나고 말았다.



당시 그 친구와 나는 여기저기 카페를 해볼까 한다는 이야기를 떠들고 다녀 아직까지도 카페 어떻게 되어가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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