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으로 회귀
2017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처음 신림동 고시촌을 방문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왜 하필 크리스마스 날이었나. 무릇 큰 목표를 이루려는 대인배는 크리스마스처럼 모두 쉬는 휴일에 남들이 안 하는 힘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개똥철학자여서 그랬나. 여하튼 그 날 외교관이 되겠다는 부푼 꿈을 가득 안고 V 모 고시학원 원장님께 수험 관련 상담을 받으러 갔다.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학원에는 공부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뜨거웠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과 행색은 체르노빌 원전 핵폐기물 청소하러 트럭에 올라탄 노동자의 것들과 유사했다). 학원 상담 데스크에는 나와 똑같은 외투를 입고 있는 직원이 있길래 그 직원이 이 사실을 알아채기 전에 서둘러 외투를 벗고 돌돌 말아서 원장실로 들어갔다. 당시 원장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웠고 피곤해 보였는데 사법고시가 폐지된 터라 학원 사정이 예전보다 어려워져서 그런가 보다 했다.
원장님의 지나친 낙관적인 조언으로 이미 커질 대로 커진 내 부푼 꿈에 허황된 희망까지 추가되어 그 날 바로 학원 근처 원룸 전세를 계약했다. 그리고 다음 연도 첫 주에 바로 고시촌에 입성하여 공부하기로 다짐을 했다. 계약했던 방에 살던 원래 세입자는 고시를 포기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신림동을 떠난다고 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시험 합격 전까지 신림동을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 확신에 가득 차있었다.
그런데 고시생이라는 신분을 몸에 장착한 이후부터 악몽과 스트레스로 잠을 쉽게 들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으면 시험장에 앉은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고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려서 불을 켜고 눈이 자연스레 감길 때까지 책을 보다가 잠에 들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 자신을 난사람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이 좁은 관악구 대학동 안에서 나는 그냥 범인 중에 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데 필요한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나만 잘하면 이런 열등감 따위는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눈으로 보이는 부족한 점수와 성과들이 나를 더욱더 볼품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듯했다. 공부하면서 불안해질 때마다 하루에도 열 번씩 마음속으로 포기 선언을 크게 외치곤 했다. 하지만 고시촌의 생활을 포기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확신도 없을뿐더러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기에는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그래서 시간이 꽤나 흐른 뒤 내가 외교관이라는 꿈을 왜 꾸게 되었나 다시 한번 정리해보기로 했다.
1위부터 5위까지의 이유들이 모두 외교관이 꼭 아니어도 되는 것들이네. 더 이상 외교관이란 직업은 내가 너무 하고 싶고 간절히 원하는 것이 아니었나? 이런 의구심이 자꾸 들기 시작했고 내 노력만으로 합격이라는 현실의 벽을 깨부수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했다. 결정적으로 물리적 체력과 정신적 체력 모두 곧 방전되기 직전이었기에 외교관이란 직업은 내가 별로 원하지 않는 다고 내 마음을 스스로 위안하며 고시생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리라 다짐했다. 이 날 이후 외교관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기꺼이 포기했다.
시험을 깔끔하게 포기한 지금은 무척이나 행복하다. 하루살이처럼 내일 계획을 세우지 않고 하루하루를 먹고 싸고 운동도 하면서 보내고 있다. 단, 새벽이 되면 가끔씩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때문에 항상 새벽 2시 전에는 자려고 노력한다. 수험생활을 보내는 동안 더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에 대한 후회는 있지만 시험을 포기한 것 자체에는 후회 없다. 포기란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단어였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