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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누라 Nov 16. 2023

6시에 만나요

너희들 내 도..도도독..도독...동료가 되라!

여느 학교들과 다를 바 없이 우리 학교도 홍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유튜브 채널 운영이다. 학교 및 학부(과) 소개를 위한 각종 영상과 입시를 위한 정보 등을 제공하고 있다. 사실 다들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영상들을 잘 보진 않는다. 어쩌다 슬쩍 훑어보고 만다. 그러나 그중 딱 한 가지는 재밌게 보고 있었다. 재학생 크리에이터 한줌단이 만든 vlog 영상이다. 전문가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가장 자연스러워 보였다. 학생들의 깨알 같은 학교생활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화면 넘어에서 연예인처럼 있던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 수업을 듣는 학생 중 한줌단을 알고 있는 학생이 만남의 징검다리가 되어 주었다.


  “언제 만나는 게 좋을까요?”

  “저희가 다들 수업이 많아서, O월 O일 저녁 6시밖에 시간이 안 되는데 괜찮으실까요?”


당연히 안 괜찮다. 퇴근 시간이니까.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당시 나는 그 친구들에게 뭔갈 부탁해야하는 잠재적 ‘을’의 입장이었기에 ‘갑’의 제안을 퇴짜 놓을 수 없었다.


  “다들 수업 마치고 온 거에요?”

  “네, 방금까지 수업하고 바로 왔습니다.”

  “그러면 밥을 못 먹었겠네?”

  “네….”


우리 ‘갑’님들을 굶길 순 없었기에 밥을 시켰다. 배달이 오래 걸렸다. 그 덕분에 오랜 시간 수다를 떨었다. 말 그대로 수다였다. 그 어떤 진지한 얘기 없이 서로 각자의 얘기를 한 듯하다. 사실 무슨 얘기 했는지 뜨문뜨문 잘 기억이 안 난다. 밥 먹고 나니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구체적인 작업 논의를 위해 다음 미팅 약속을 잡았다.


  “이번에도 6시?”

  “ㅇㅇ”

  “밥, ㄱㄱ?”

  “ㅇㅇ”


우리 학교 학생들 참 바쁘다. 특히 2, 3학년이면 기본이 20학점 이상이니 고등학교 시간표 저리 가라 할 정도다. 학교 정책상 타 대학보다 졸업을 위해선 2~30학점을 더 들어야 하니 어쩔 순 없지만 때론 안타깝기도 하다. 우리 ‘갑’님들께서 작업을 잘하시게 하도록 전보다 더 풍성한 저녁을 대접했다. 그러한 정성이 통해서였을까, 며칠 뒤 그들이 가져온 결과물은 내 기대 이상이었다. 많지 않은 여유 시간에 이런저런 활동을 겸비하는 학생들이 대견하다. 새삼 이 자그마한 학교에도 재능 넘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저마다 품은 보석 같은 능력들을 잘 갈고닦아서 이 사회에서 반짝반짝 빛나길 바란다.


카페에서 잠시 만나 결과물에 관해 얘기하다 보니 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아직 더 부탁할 일들이 있어서 다음 약속을 잡았다.


  “아, 이런. 다음 결과물에 대해서도 자세히 얘기해야 하는데. 시험 끝나고 또 봅시다. 역시나 6시?”

  “ㅇㅇ”


한결같은 녀석들. 6시에 만나자며 은근히 밥 사 달라하는 그 학생들이…. 싫진 않다. 그저 더 많은 학생에게 더 풍성히 베풀지 못하는 내 지갑 사정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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