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누라 Jan 31. 2024

우리, 이다음, 어디로

그래도, 그날의 밤은 즐거웠어.

 라스베이거스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도시와 사람들 모두 아침에 지고 밤이 되면 서서히 피어난다. 그 속에서 홀로 밤이 되면 시들어지는 이가 있었다.


 통제를 하면 모든 것이 쉽다. 돌발상황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지휘관은 평안하다. 하지만, 좁고 어두운 울타리 안에 갇혀 울부짖는 양들을 지켜보기가 괴롭다. 더 솔직한 마음은 울타리를 지킨다는 명목하에 지휘관 자신도 통제되어야 하는 것도 싫다. 방임은 그들을 자유롭게 한다. 하지만 그 자유의 크기에 비례하여 지휘관의 불안은 겹겹이 쌓인다. 조금의 이성 남아있는 자라면 자유라는 이름의 방임을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통제와 방임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답은 헤겔 선생의 말씀에 있었다. 정과 반을 모두 배제하고 합에서 답을 찾고자 하였다. ‘우리는 아침부터 밤까지 온종일 함께한다.’ 이것이 내가 라스베이거스에서 20명의 대학생을 인솔하는 방침이었다.




 낮 시간의 공식 일정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니, 라스베이거스의 밤이 활짝 피었다. 아까까지도 비실비실하던 학생들은 라스의 밤과 함께 반짝였다. 그 가운데 나 홀로 지금까지 만 오천 보를 걸었다는 휴대전화기 알림을 확인하며 지쳐있었다.

 “이제 우리 뭐 하나요?”

 “오늘 밤은 스트립 마실 갑시다.”

 라스의 밤거리에는 세상의 많은 것들이 있다. 뉴욕의 여신, 프랑스의 탑, 긴자의 피라미드까지 낮에는 칙칙하기만 하던 골조가 불빛의 옷을 입고 만개하였다. 여기서 요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발견했다. 스마트폰의 우수한 카메라와 SNS가 보편화된 이들에게 사진 찍을 ‘각’이 보는 모든 곳이 놀이터였다. 누구 하나 자세를 잡으면 너도나도 사진을 찍고 그 자리에서 공유한다. 구석에서 조용히 셀카를 찍던 나도 어느새 붙잡혀와 그들의 피사체가 되었다. 곳곳에 있는 특이한 상점들은 그들에게 스튜디오가 되었다. 이따금 어느 호텔에서 하는 야외 공연들은 멋진 영상의 배경이 되었다. 지도상 도보 기준 왕복 1시간 걸리는 거리 위에 넘치는 수다와 웃음, 사진, 쇼핑을 가득 쌓았다. 돌아오니 3시간 이상 지나 있었다.

 “오늘 일정은 여기까지입니다. 내일 아침에 만납시다.”

 이미 한계에 도달한 나는 호텔 침대 위에서 그 즉시 종료되었다. 외로운 내 휴대전화만이 오늘 하루 3만 보 걸음 달성을 축하하였다. 그 시간, 아이들의 활기찬 눈망울은 라스의 밤을 여전히 밝히며 피어있었다. 술과 이야기 그리고 약간의 갬블이 함께하였으리라. 다음 날 아침 집합 장소에서 라스의 아침 햇살에 시들어버린 대다수 학생과 일부 햇살을 이기지 못하고 뻗어버린 몇몇이 확인되었다. 이제 막 라스에서의 24시간이 지났다.



 

 둘째 날 공식 일정이 끝났다. 모두 새로이 피어나고 나 홀로 시들고 있었다. 밤이 찾아왔다.

 “오늘은 또 뭘 하나요?”

 이틀도 안 되어 지긋지긋해졌다. 갑자기 오지 오웰의 오세아니아가 그리워졌다.

 “일단 The Sphere에 갑시다.”

 구(sphere) 형태의 건물 내외부가 LED display로 도배된 최첨단 공연장의 공연을 예매하였기에 가야만 했다. 원래는 양들은 우리에 가둬두고 양치기들만 가려 했다. 그러나 제기랄. 양들의 가련한 눈망울이 떠올랐다. 결국 모두 함께 갈 수 있도록 학교에 우는 소릴 했다. 첨단의 첨단 기술을 온몸으로 느끼고 공연장을 나왔다.

 “이제 어디로 가요?”

 시간이 늦었다. 아니, 사실 라스의 밤은 아직 더 많이 남았다. 문제는 우리가 호텔로 돌아갈 차편이 없었다. 전세 버스 기사님은 이미 한참 전에 퇴근하셨다. 인솔자에게 새로운 도전이 주어졌다.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20마리 양들을 울타리로 데려올 것.’ 지도를 뒤져 정류장을 찾았다. 저쪽 구석에 있는 자판기에서 토큰을 뽑았다. 원하는 노선의 버스를 찾아 탔다.

 ‘난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는가? 저 양들은 스스로 알아볼 생각 없이 나의 지시만 따르는가?’

 이 모든 것이 나의 결정이기에 소리없는 불만은 내 안에서만 맴돌 뿐이고 나는 더욱 빠르게 라스의 밤과는 반대 방향으로 쇠약해졌다. 드디어 호텔에 도착했다. 오늘의 일정을 무사히 소화한 나 자신에게 휴대전화가 칭찬하였다. ‘오늘 하루 3만 보 걷기 달성을 축하합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나는 즉시 방전되었고, 아이들은 남은 밤을 더 불태웠다.




 라스베이거스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일찍 달려서 그랜드캐니언에 갔다. 어마어마한 아메리카의 스케일에 압도되었다. 서로 경쟁적으로 카메라에 사진을 구겨 넣었다. 맑은 날씨 덕분에 셔터만 누르면 작품이 되었다. 드넓은 하늘만큼이나 광활한 협곡을 바라보니  동안의 피로가 가시는 느낌이었다. 다시 라스로 돌아오니 밤이 되었다.

 “이제 어디로 가요?”

 저 소리 왜 안 나오나 했다. 라스에서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밤은 베네치아에서 시작했다. 베네치아의 수로를 실내에 구현한 아메리카의 스케일에 혀를 내둘렀다. 이어서 라스의 밤거리를 살짝 걸어 화려한 뒷골목으로 갔다. 어느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것처럼 펍에서 자리를 잡고 술과 이야기로 그곳을 가득 채웠다. 인솔자와 학생의 경계가 옅어지고 다 함께 여행자가 되어 라스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스트립으로 나와 어느 호텔에서 진행하는 화산 쇼를 구경했다. 공공의 유희를 위해 길거리에 가스를 내다 버리는 모습을 보니 쇼에 대한 아메리카의 진심이 느껴졌다. 늦은 밤, 어제의 경험을 빌려 자신만만하게 시내버스를 타고 숙소로 복귀하였다. 이상하다. 나도 모르게 학생들의 기운을 전해 받은 걸까. 라스의 밤처럼 활기찬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시들지는 않았다. 빌려 받은 기운을 끌어모아 겜블을 즐겼다. 그러나 아주 잠시뿐이었다. 일부 어린 양들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다시 지휘관 본능을 일깨웠다.

 ‘내가 진짜, 애들 카지노 즐길 수 있도록 망까지 봐야 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문제가 생기면 모두 내 책임인걸. 급격히 피로가 겹겹이 쌓여갔다. 라스의 마지막 밤을 하얗게 불태운 아이들은 결국 다음날 문제를 일으켰다. 짐을 싸서 LA로 이동해야 하는데 몇몇 학생이 밤을 새우다 기절하여 연락두절되었다. 출발은 한 시간 가까이 지연되었다.  


 전체 일정의 절반이 지났으나, 귀국까지는 아직 까마득해 보인다.

 너무 힘들어. 다 밉다.

매거진의 이전글 6시에 만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