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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누라 Feb 01. 2024

남겨진 화분

그대여, 잘 살아남고 있는가?

*혹시라도 본 글에 불편함을 느끼는 분이 계신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나도 모르게, 텔레비전에서 힘든 상황에 놓인 아이들의 사연이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 방송에서는 여느 어른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이겨내는 아이를 칭찬하고 응원하지만, 난 너무나 성숙해 버린 그 아이의 모습이 싫다. 아이 어깨에 놓인 삶의 무게가 화면 가득 짓눌러, 지켜보는 와중에 나도 모르게 피곤해진다.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아이는 아이다울 수 있는 세상이 되길 기원한다.


       

    필요한 것들이 지워지는 삶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을 위하여 학교에서 장학 제도를 운용하는 일은 매우 좋다. 하지만, 장학금 지급을 위한 필수 과정으로 지도 교수 상담과 추천서 작성은 너무 괴롭다. 상대방의 사정을 듣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에 생채기가 난다. 비할 바 없는 어려움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저 성숙함이 싫다. 누군가의 삶을 엿보기엔 난 너무도 미숙함을 느낀다. 오랜 시간 혼자 지내온 그 학생이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장학금 사용계획서’

  내용을 검토하였다. 많은 부분 잘못 기재하였다.

  “장학금 사용 계획인 만큼, 학업 활동과 관련된 항목으로 정리하면 좋겠습니다.”

  장학 선정을 위한 현실적 조언을 해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 학생이 제시한 항목들이 나를 무겁게 했다.

  ‘햇반, 식자재, 생필품….’

  모두 지우고 ‘학용품, 도서, 시험 원서 등’으로 변경했다. 담담히 항목들을 지우는 학생을 바라보았다. 그 짧은 순간이 그의 삶을 대변하는 듯했다.



    효율, 너무도 가슴 아


  지워진 항목이 한동안 머릿속을 괴롭혔다. 며칠 속앓이를 하다가 견딜 수 없어 그 학생을 다시 불렀다.

  ‘과연 옳은 행동인가? 결국 나의 괴로움을 달래기 위한 행위진 않은가? 단편적 도움으로 더 깊은 상실감을 주면 어떡하겠는가?’

  ‘너는 누군가의 삶에 관여할 자격이 있는가?’

  모든 일에 대한 감당은 미래의 나에게 던지기로 하고, 그가 지운 항목들을 되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너무나도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니, 그간의 속앓이가 얼마나 비생산적인지 깨달았다.

  졸업을 앞둔 시기에 입사 지원을 위한 추천서 작성 건으로 그 학생을 다시 만났다. 만난 김에 취업 준비를 위한 이것저것을 함께 살펴보았다. 여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자기소개서 정리부터 헤매고 있었다. 학생들이 취업 준비를 하면서 가장 간과하는 부분은 ‘객관화된 자신을 설정’하는 것이다. 대학 4년의 학업과 활동을 마친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지 않는다.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그 학생의 교과 이수 사항과 교내외 활동 사항을 검토하였다.

  ‘주어진 환경에서 효율 높은 선택을 하는 사람’

  무척이나 명쾌하게 그의 대학 생활을 정리하였다. 무언가 방향성을 깨달아 기뻐하는 학생과 달리 나는 침울해졌다. 비단 그의 대학 생활뿐만 아니라 삶 전반을 보여주는 말이었기에 더욱 마음 아팠다. 시시때때로 지워지는 기회 속에서 효율 높은 선택이 강제될 수밖에 없었다. 세상 그 어떤 좋은 말도 강제되는 순간 서글퍼지는 법이다. 이 사람을 귀사에서 채용하면 누구보다 효율 높은 활동으로, 최적의 선택을 하여, 최고의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추천서를 마무리하였다.



    그대여, 잘 지내고 있는지?


 졸업을 앞두고 찾아와 화분 하나를 건네고 갔다. 그리고 한참 뒤 취업을 했다며 화분을 하나 더 들고 왔다. 덜컥 겁이 났다. 북향으로 난 조그만 창문밖에 없는 이 사무실에서 식물들이 잘 지낼까? 더구나, 나는 식물을 긴 시간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내 손을 거쳐 생을 마감한 식물이 수두룩한데 말이다.

  다행히도 그 두 화분은 아직도 잘 살아남는 중이다. 이들도 건네준 이처럼 제한된 환경에서 최적의 선택을 하며 사는 것인가. 화분을 바라보며 잠시 씁쓸해지다가 이내 밝아졌다. 어찌 됐건 살아 있는 두 생명 덕분에 이 칙칙한 사무실에 생기가 도는 듯했기 때문이다.

  화분만 남기고 떠난 그대여, 잘 살아남고 있는가? 누군가는 살면 되고, 자신은 살아남아야 함에 연연하지 마시길. 그대가 살아 있음에 세상 어딘가는 생기가 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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