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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세 Jun 03. 2021

추억의 극장 (2) - 단성사

종로 3가의 터줏대감.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관

1907년에 주승희가 발의하고 안창묵과 이장선이 합자하여 2층 목조 건물로 세웠다. 1909년 이익우가 사장이었으나 한흥석으로 바뀌었고 1910년에는 일본인 후지하라[藤原雄太郞]에게 넘어갔다. 주로 전통연희를 위한 공연장으로 사용되었다. 1910년 중반 광무대 경영자 박승필이 인수하여 상설 영화관으로 개축하였다.


1919년 10월 최초로 한국인에 의해 제작된 연쇄활동사진극(連鎖活動寫眞劇) 《의리적 구토》를 상영함으로써 한국영화사상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1924년 초 단성사 촬영부는 7권짜리 극영화 《장화홍련전》을 제작, 상영함으로써 최초로 한국인에 의한 극영화의 촬영·현상·편집에 성공하였고, 1926년 나운규(羅雲奎)의 민족영화 《아리랑》을 개봉하여 서울 장안을 들끓게 하였다...... 


<네이버 백과사전> 中 에서 발췌 


위의 내용은 검색창에 '단성사'를 입력했을 때 백과사전에 실려 있는 단성사에 대한 설명의 일부분이다. 

종로3가에 위치해 있는 단성사는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관>으로 상징성이 높은 곳이다. 맞은편의 피카디리 극장, 한 블럭 아래편의 서울극장과 더불어 종로3가 극장가의 전성시대를 주도했던 트로이카 중의 한 축이었다. 복합 상영관이 들어서기 직전만 해도 단성사의 영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사는 역시 태흥영화사이다. 


이태원 사장이 운영하는 태흥영화사는 과거 수입과 제작 배급을 영화사들이 병행하던 당시 한국영화와 외국영화에서 명성을 떨치던 흔치 않은 영화사였다. 대부분의 영화사들이 수입과 배급에 열을 올리면서 한국 영화 제작에 소홀히 하거나 스크린 쿼터를 채우기 위한 <땜방용 영화>들을 만들기 급급하던 당시 태흥영화사는 한국 영화 제작에서도 독보적인 브랜드를 구축하였다. 


그것이 가능했던 원천은 역시 임권택이라는 거장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씨받이>, <아제아제 바라아제>, <장군의 아들>, <서편제>,<축제> 등 한국 영화사에 족적을 남길만한 작품들이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사장과 임권택 감독의 콤비 체제하에서 탄생한 것이다.


또한 직배영화가 입성하기 직전에는 태흥영화사는 20세기 폭스사의 영화들을 전담 수입(?) 하다시피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다이하드>, <프레데터>, <에일리언2> 등이 있으며, 흥행에서도 국내에서 대박급 흥행을 기록한 작품들이다.


태흥영화사의 80~90년대 초반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전부 단성사에서 개봉하였고, <단성사=태흥영화사> 라는 공식이 떠오를 만큼 밀접한관계가 유지되었다. 태흥영화사라는 안정된 라인업을 바탕으로 단성사에서 개봉하는 영화들은 20세기 폭스의 오락성 높은 영화들을 방학때만 되면 볼 수 있다는 묘한 기대감이 형성되었고, 또한 한국영화들 역시 임권택 감독의 수준높은 영화들을 상영한다는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단성사는 한국 영화 흥행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서깊은 상영관이기도 한데, 90년 6월에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은 당시 서울에서만 67만명을 동원하며, 그 당시에 11년 동안 깨지지 않고 있었던 79년 김호선 감독의 <겨울여자> (장미희, 신성일 주연 - 국도극장 개봉)의 서울관객 58만명의 기록을 깨는 기염을 토하였다.


<장군의 아들>은 애시당초 임권택 감독과 이태원 사장이 쉬어가는(?) 의미에서 신명나는 활극을 만들어 보자는 일념하에 제작된 영화인데, 모처럼 과거 B급 액션영화 연출에 일가견이 있었던 임권택 감독이 주연배우 전원을 신인들로 캐스팅하는 대모험을 감행하며 부담없이 만든 영화였다. 그러나 이 영화의 시원하고 선 굵은 액션은 당시 유행했던 홍콩 느와르 영화와 차별화되는 통쾌함을 선사하며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게 된다. 이 영화를 통해 박상민,신현준,김승우 등 굵직굵직한 스타들이 대거 탄생하게 된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자료탐구' 카페> 


3년 뒤 단성사는 또 다시 한국 영화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게 된다. 임권택 감독이 판소리를 소재로 하여 제작한 영화 <서편제>는 개봉 당시만 해도 개봉한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았을 만큼 별다른 흥행세를 보이지 못한다. 그러나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주연 배우들을 초청하고 영화를 관람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일종의 '바이럴 마케팅' 효과가 전국에 급속도로 퍼져나간다. 단성사 앞은 개봉 2주만에 <서편제>를 보려는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기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이 놀라운 신드롬은 결국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서울관객 100만을 돌파하는 신기원을 세우게 된다. 지금의 1,000만 관객 영화에 버금가는 크나큰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단성사표 영화들은 한국 영화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작품들이 많았고, 외화 역시 20세기 폭스의 고품질 오락 영화들로 관객 몰이에 성공하며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까지 탄탄대로를 달린다. 그러나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관'이란 가치는 결국 열악하고 낡은 시설이라는 역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개봉관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그저 제대로 된 영화만 내걸면 관객들이 울며 겨자먹기(?)를 감수하더라도 영화관을 찾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로 시설을 리모델링하거나 새로운 복합상영관들이 차츰 선을 보이면서 단성사의 브랜드 이미지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잘 나갈때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면 지금의 추락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 만큼 단성사의 시설불감증은 심각할 정도였다.


가장 큰 직격탄의 시발점은 90년대 중반 영화 마니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던 영화 잡지 <씨네21>에서 처음 실시한 전국 영화관 평가 결과에서 단성사의 '앉으면 기립자세가 되는' 좁은 좌석 간격과 쿠션이 거의 빠져버려 푹신함을 느끼기 힘든 저질 좌석이 적나라하게 폭로가 된 사건(?)이다. 이 보도 이후 영화팬들 사이에서 단성사의 이미지는 급추락하기 시작한다. 이후 상영관에서 영화 보는 도중에 바닥에 쥐가 다니는 것을 목격했다는 등의 괴담(?)이 나돌만큼 단성사의 저질 시설은 날이 갈수록 그 악명을 더해만 갔다.


이후 중간 개보수를 거쳐 2개관으로 새로 개관하지만 근본적으로 낡은 구조물을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따랐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초반까지 CGV, 메가박스 등 최첨단 시설의 멀티플렉스 들이 개관하면서 영화관람 문화에 대한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뒤바뀌게 되고, 결국 시설 리모델링의 적기를 놓친 단성사와 피카디리 극장등은 기나긴 침체기에 접어들게 된다. 결국 2005년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새로이 변신하게 되지만 이미 주 고객층을 빼앗긴 뒤였다.


이후 복합 상영관 체인인 씨너스에 편입되고,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부도를 맞으면서 영화관 주인이 새로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단성사는 그 명맥을 산소호흡기처럼 유지하다가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필자에게도 단성사는 여러모로 추억이 많은 영화관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처음으로 찾아간 영화관이었고, <다이하드>를 보면서 예기치 못한 대박영화를 접하게 되었다는 쾌감과 만족감에 열광하며 극적인 장면에서 관객들과 함께 박수를 쳤던 흐뭇한 기억이 묻어있는 영화관이다.



비록 종로 3가가 전반적으로 젊은 세대의 관심에서 많이 멀어져 있는 현실이 되었지만 그 '추억'만큼은 묻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단성사에서 개봉했던 영화들 중에 기억에 남을 만한 BEST 5를 꼽아본다. (순전히 필자의 100% 주관이 반영된 것임) 


1. 다이하드 (1988년 9월 24일 개봉, 존 맥티어난 감독, 브루스 윌리스 주연, 서울관객 701,508명 동원) 


서울 올림픽의 열기가 절정에 달하던 88년 9월 24일 조용히(?) 개봉했던 <다이하드>는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시간이 눈덩이처럼 관객수가 증가했던 작품이다. 필자가 중학교 1학년 시절이던 당시 친구들과 중간고사를 마치고 함께 봤던 영화이다. 당시 종로 3가 지하철 역안의 매점에서 500원짜리 장터국수를 사먹고, 2,500원의 입장료를 내고 관람하니 영화+점심 비용이 불과 3,000원이면 모든게 해결되었던 시절이다. 정말 지금에 비하면 마치 호랑이가 까치 담배를 피우는 듯한 시절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던 상황에서 가지고 있었던 유일한 정보는 같이 보러갔던 영화광 친구에게서 들은 한마디. "그냥 이주일이 액션영화 한 편 찍었다고 보면 돼." 당시만 해도 TV 드라마 <문라이팅> (이 드라마는 '다이하드'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이듬해 KBS2에서 매주 월요일 10시 55분에 방영되기도 하였다.)에서 코믹한 이미지를 구축했던 상황이었기에 친구의 비유는 꽤나 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 정말 생각지도 못한 복권에 당첨된 듯한 기분을 느낀 그 당시가 여전히 선명하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현존하는 액션 영화들의 교과서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당시만 해도 람보나 코만도로 대표되는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사내들이 별다른 저항에 부딪히지 않고도 슈퍼맨처럼 적들을 쓰러뜨리는 컨셉의 액션영화들이 주류를 이루던 상황에서 지극히 평범한(?) 사내가 고층 빌딩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 기지를 발휘하며 차근차근 공포의 테러리스트들을 퇴치하는 과정이 카타르시스의 절정을 몰고왔던 영화이다.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 였던 나카토미 빌딩에서 주인공 맥클레인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소방호스를 자신의 몸에 묶고 뛰어내리는 장면에선 모든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일제히 박수를 치기도 하였다. 당시만 해도 영화관의 관객들은 참으로 순수했다는 생각이 든다. ㅎㅎ 


우여곡절 끝에 12명의 테러리스트를 처치하고 자신의 아내와 뜨거운 포옹을 하며 영화가 마무리되고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죽은 줄 알았던 테러리스트 중의 1명이 살아남아 맥클레인 부부를 향해 총을 겨누는 위기의 상황에서 테러리스트를 처치하는 것은 다름아닌 자신의 실수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이후 총을 쏘는 것을 두려워했던 LA 흑인경찰이었다. 결국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더욱 큰 쾌감을 전달한다. 맥클레인을 구해준 경찰은 무전기를 통해 서로 간의 진한 우정과 교감을 나누던 맥클레인을 그제서야 직접 마주하게 된다.) 엔딩 크레딧에서  흘러나오는 'LET IT SNOW'의 멜로디가 더욱 흥겹게 느껴지게 된다. 

크리스마스에 강추하고 싶은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다이하드>이다. 


2. 어른들은 몰라요 (1988년 7월 2일 개봉, 이규형 감독, 김혜수, 김세준 주연, 서울관객 220,591명 동원) 


필자가 처음으로 친구들과 함께(부모님을 대동하지 않고 ^^) 처음으로 영화관을 찾아서 본 영화로 더욱 기억에 남는 영화이다. 1987년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박중훈, 강수연 주연)로 대박흥행을 기록하며 그 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흥행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 이규형 감독이 내놓은 또 다른 청춘영화였다. 이번에는 주연 남녀배우로 당시 떠오르는 하이틴 배우 김혜수와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에서 '보물섬' 역할로 주연배우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 김세준을 기용하였다. 


사실 청춘물이라 불리기 애매한 부분은 당시 잘나가던 아역배우 '순돌이' 이건주와 몇 명의 아역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들에 대한 스토리 비중 또한 꽤 높았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영화는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방향에서 표류하게 되고 결국 마무리는 '록키'를 어설프게 복사한 태국 선수 오캄포와 주인공 남자배우(김세준)와의 타이틀 매치로 이어지는데 영화 전체가 산만하고 짜임새 없다는 생각이 당시에도 들 정도였다. 


특히 김혜수의 연기력을 떠올려보면 지금의 '엣지 있는' 모습이 가히 <상전벽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이다. 

이 영화를 2위에 올려놓은 이유는 처음 극장에 찾아가서 본 영화라는 상징성이 워낙 크다는 이유밖에 없다. 


3. 에일리언2 (1986년 12월 24일 개봉, 제임스 카메론 감독, 시고니 위버 주연, 서울관객 292,436명 주연)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을 맞아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모처럼 영화를 보려고 일요일 아침 일찍 종로3가로 향하였다.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봉한 <킹콩2>를 보러가기 위해서다. 종로 3가역을 나오는데 일요일 아침부터 영화관을 찾으려는 듯한 사람들로 출구에서부터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영화 표를 구하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지하철 출입구를 나왔는데 사람들의 무리가 두갈래로 마치 영화 <십계>의 하이라이트 장면처럼 나뉘어지는 것이었다. 두 갈래로 나뉜 사람들의 발걸음은 한 쪽은 성룡의 복코가 선명하게 보이는 영화 간판이 내걸린 피카디리 극장(당시 '용형호제'를 상영)으로 향하였고, 다른 무리는 시고니 위버가 꼬마 아이를 안고 커다란 기관총을 들고 서있는 간판이 그려진 단성사로 향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당시 극장 간판을 보고 시고니 위버를 남자배우로 착각하였다. 사실 영화 자체에서도 남성들을 압도하는 여전사로 그려진 탓도 있었지만 포스터 자체도 더욱 터프하게 그려진 듯하였다.  어릴적의 기억을 제외하곤 피카디리 극장과 단성사 극장을 당시에 처음 접한 필자는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시고니 위버의 포스터가 그려진 단성사 극장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 발동하였다. 그러나 <에일리언2>는 중고생관람가였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허리우드 극장이 있는 낙원상가로 향하였고 1층에서 표를 구입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극장이 있는 4층으로 향하였다. 바로 전에 접한 피카디리, 단성사와는 달리 허리우드 극장은 참으로 한산하였다. 워낙 영화의 인지도의 차이가 컸던 탓인지 대비되는 풍경이었다. 


옥상에 있는 허리우드 극장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안내원에게 어떤 아저씨가 "신문에는 1회가 11시에 시작된다고 했는데 왜 갑자기 바뀐거에요?"하고 물었더니 안내원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사람이 없어서요..." 


4. 프레데터 (1987년 7월 17일 개봉, 존 맥티어난 감독, 아놀드 슈바제네거 주연, 서울관객 317,754명 동원) 


아놀드 슈왈츠네거 현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이름을 영어로 표기하면, Arnold Schwarzenegger. 일단 영어를 보더라도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난감함이 감도는데, 유상무상무의 이름 놀이를 과연 어떻게 따라해야 할지 고민이 드는 것에 맞먹을 정도이다. 


참으로 다양하다. 아놀드 슈왈츠네거, 아놀드 슈왈제네거, 아놀드 슈워제네거, 아놀드 슈와제네거 등등 

하지만 이 영화의 당시 신문광고를 보라. 참으로 독창적인 표기법이다. '아놀드 슈바제네거' 죠스바, 스크류바의 형제뻘로 순식간에 둔갑시킨 기상천외한 주연배우 표기법이 당시 내 시선을 붙들어맸다. 왜 이렇게 표기했냐고 극장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어떻게 이런 발음이 탄생하게 될까. 정작 영화의 내용보다 주연배우의 이름 표기에 더욱 관심이 쏠리게 만든, 머리에 쓸데없는 고민을 하게 만든 그런 영화였다. 


그렇다고 영화가 허접하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유난히도 더웠고 또한 장마가 휘몰아치면서 잠시 피난민 생활을 하게 만들었던 그 해 여름 프레데터는 단성사 앞을 뜨겁게 달구었다. 필자는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빌린 복사테이프로 이 영화를 보았는데,  맑은 날에도 비가 내리는 저질 화질과 씨름하면서 가뜩이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던 프레데터의 존재를 탐구하느라 현미경 같은 분석을 해야만 했다. 


5. 쥬만지 (1996년 1월 20일 개봉, 죠 존스톤 감독, 로빈 윌리엄스 주연, 서울관객 540,402명 동원 - 12개관 합산수치) 


헐리웃 메이저 영화사들이 9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인 직배체제로 전환하면서 태흥영화사가 수입한 20세기 폭스사의 영화들을 주로 내걸던 단성사는 이후 콜롬비아 트라이스타 영화들을 주로 상영하게 된다. <스트라이킹 디스턴스>,<나쁜 녀석들>이 대표적인 영화인데, 그 중에서도 어드벤쳐물 <쥬만지>는 단성사가 개봉한 콜롬비아 직배 영화 중 가장 좋은 흥행 성적을 기록한 영화이다.


5년여만에 단성사를 찾아가게 되었는데, 의자에 2시간 넘게 옴짝달싹 못하는 부동자세로 영화를 보게 되어야 하는 것에 영화가 시작하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앉게 된 자리는 2층 맨앞자리였다.앞에 의자도 없고 난간과의 간격이 꽤나 넓은덕분에 필자는 두 다리를 쭉 벋고 마치 비디오방에서 영화를 보는 것처럼 편안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2시간내내 정신을 쏙 빼놓은 롤러코스터 같은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로빈 윌리엄스의 큰 딸로 나온 배우가 훗날 <스파이더맨>에서 헤로인으로 등장하는 MJ. 커스틴 던스트였다. 


멀티플렉스로 재개관한 이후에도 단성사를 가끔 찾았었다. <공공의 적2>,<미스터 스미스 미세스 스미스>,<백야행> 등을 이 곳에서 보았는데 이전의 커다란 샹제리제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고 1층에는 아직 입점되지 않은 빈자리가 더 눈에 많이 뜨이는 귀금속 상가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예전 전성기 시절의 북적거리고 활기찬 느낌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제는 영화 박물관 밖에 남지 않은, 추억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영화관 단성사에 대한 단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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