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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 Godot Aug 29. 2024

갱고

갱고



 훈풍이 다 가신 뒤 붉고 한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즈음에 내게 몇 가지 역경이 있었다. 이를테면 이혼과 퇴사 따위의 스산한 사건들 말이다. 그때 나는 오래 전에 연락을 끊은 아버지에게 가기로 했다. 나는 그 결정에 굳이 스스로 이유를 붙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는 나의 정신은 기민하고 예민했다. 단순히 고속도로 위를 내달리는 운전자의 그것은 아니었다. 긴장감과 카페인, 그 사이에 몇 가지가 더 들러붙은 종류의 민감함이었다. 미지에의 공포에 육박하는 불안함, 부모의 따스한 품으로 파고드는 절박함, 그런 따위의 것들에 더해 수많은 미사를 붙일 수는 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말에 말을 덧붙이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었다. 중요한 건 앞으로 일어날 일과 그 일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때의 나는 온 힘을 생각에 쏟아붓고 있었다.


 영동고속도로의 끄트머리에서 65번 고속도로를 타고 삼척 방면으로 이십 분을 내달리며 시원하다못해 서늘한 동해의 해안선을 따라가면 어느 해변에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캠핑장이 있었다. 날은 가을이었고, 나는 셔츠와 치노 팬츠를 입고 그 위에 조금 두꺼운 가디건을 껴입고 있었다. 신발은 컨버스화를 신고 있었다. 아내와 이혼한 날 나를 위해 산 신발이었는데, 딱히 선물이나 기념물의 의미는 아니었다. 어쨌든 나는 가을 날씨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었다. 저멀리 드높게 솟은 산에 물든 단풍을 생각하고 입은 옷이었다.

 사무실에 들러보니, 아버지는 투박한 옷을 입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낡은 체크무늬 셔츠와 무릎 부분이 조금 헤진 청바지에 항공 잠바를 입고 있었다. 신발은 베이지색의 워커화였다. 그것 역시 얼룩덜룩 색이 바랜 것이었다. 작은 방갈로처럼 생긴 사무실에 들어가니 아버지는 손님들에게 이용 수칙을 전달하고 숯, 캠프 파이어 따위의 잔금을 치르고 있었다. 그는 나를 잠깐 보더니 이윽고 내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예처럼 무심한 사내였다.

 그가 내게 관심을 보인 것은 몇 시간이나 지나서였다. 아버지의 작은 캠핑장에는 꽤나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나는 아버지에게 사업 수완이라는 것이 있었나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곧 이곳의 풍경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이리라 하고 생각을 멈추었다. 열 명도 넘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동안 사무실의 한 구석에 앉아 커피 머신에서 뽑은 자판기 커피를 세 잔이나 마시고 있었더니 아버지가 문득 찾아와 내게 말을 걸었다.

 “밥은 먹었니?”

 무심하게 툭, 하고 말을 거는 그 어투가 오랜만이라 나는 불쾌함보다는 반가움이 앞섰다.

 “아뇨. 아버지는요?”

 “성수기라 낮에는 밥 먹을 시간도 없다.”

 “장사가 잘 되나봐요.”

 그는 그 말에는 답하지 않고 나를 지나쳐 자판기 커피를 뽑았다. 뽑아와서는 내 앞에 앉았는데, 내가 마신 커피의 수를 보고는 핀잔을 주었다.

 “이렇게 많이 마시면 밤에 잠은 오니?”

 “뭐, 어때요.”

 “예린이는 잘 지내니?”

 “이혼했는데요.”

 “그러냐?”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라. 그는 사소하다는 듯 중얼거리고는 눈을 피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회사 생활은......, 아, 그것도 그만 뒀지.”

 “네.”

 “아쉽게 됐구나. 근데, 나는 왜 찾아온 거냐?”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오는 데에 이유가 필요합니까. 싫으세요?”

 그는 답을 피했다.


 나를 위해 비워놓은 캠핑장 한 구석의 글램핑 사이트에 함께 짐을 푼 아버지는 숯을 피우러 다시 캠핑장의 방방곡곡을 누비러 떠났다. 나도 처음이지만 일손을 조금 도울까하여 그를 따라다녔다. 그런 작업은 전처와 캠핑을 다니며 자주 해보았다. 젊은 시절,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자주 해본 일이었다. 아버지는 캠핑장 스피커로 젊은 사람들 듣는 노래나 좀 틀어보라고 했지만 내가 불을 피우는 솜씨를 보고는 아무 말 없이 자신과 동행하게 했다. 그런 일이 거의 처음이라 조금 재미있었다. 나는 아버지와 추억이랄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그가 언제나 바쁘고 무심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왜 웃니? 즐거운 일이라도 있나?”

 “그냥요. 오랜만에 좀 여유로워서.”

 그 말은 반만 맞는 말이었다. 아버지를 도와 이런저런 일을 하는 것이 어린 아이가 아빠와 노는 것처럼 흥미로웠기 때문에 나는 웃었다. 그리고 내가 웃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반은 머쓱하고, 반은 수치스러웠다. 캠핑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일손을 거들어 이런 저런 일을 하기까지 나는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숯의 포장지를 뜯어 그릴에 붓고 불을 붙이며 그와 협력해 작업의 속도를 두 배는 빠르게 하는 단순 노동이, 지난 몇 십 년 동안의 앙금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였다.

 “여유로웠잖아? 이혼하고, 퇴사하고 나서.”

 “아버지는 그러셨어요?”

 “뭐가?”

 “여유로우셨냐구요. 이혼하고, 퇴직하고.”

 “곤란한 질문을 하는군.”

 “곤란하셨다면 죄송해요.”

 “집사람은 잘 사니?”

 “새아버지랑 잘 지내고 계세요.” 나는 아버지의 사소한 말실수는 눈감아주기로 하며 답했다.

 “참 좋은 사람처럼 보이더구나.”

 “신기하네요, 아버지는. 질투심이 하나도 없어 보여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눈에 띄는 감정 변화를 보였다. 그의 기분이 얼굴로 드러나는 것은 태어나고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그는 화를 냈다.

 “나라고 질투심이 왜 없겠냐?”

 “죄송해요.” 뭐가 죄송한 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보였는걸요.”

 “그렇구나.”

 잠시 우리 분위기는 어색해졌다. 나는 숯을 담은 봉지를 뜯고, 불을 피우고, 주차를 도와주는 일에 집중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한 이후 이곳, 강릉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작은 어촌으로 이주하셨다. 그곳에서 남은 퇴직금과 처분한 재산으로 캠핑장을 차리고 여생을 보내실 생각이었다. 어머니는? 재혼 상대를 어디에선가 찾아오셨다. 결단코 외도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사람 일이란게 모를 일이었다. 사실 그런 건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런다고 누가 잡아가나?

 어차피 동생도 클 만큼 다 컸기 때문에 부모님의 이혼과 향후 계획을 들었을 때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리 불화가 심한 집안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서로에게 관심이 지대한 가족도 아니었으므로 언젠간 예정된 일이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 이혼 얘기를 꺼냈을지를 두고 내기를 했었다.

 나는 아버지가 먼저 꺼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모든 일에 무심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모든 일에 무심하고, 만사에 귀찮음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 결혼이라는 관계도 구속으로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동생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했지만 아마 어머니가 아버지의 무관심을 견디지 못해 먼저 외도를 하고 재혼을 결심했을 거라고 했다. 동생이 제시한 몇 가지의 실질적인 증거들 때문에 나도 그 가설이 신빙성이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왠지 어머니는 그럴 것 같지 않다는 직관, 때문에 나는 끝까지 그 가설에 반대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우리는 이혼의 귀책 사유가 아버지에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어머니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잘못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고, 아무리 눈을 씻고 뒤져봐도 어머니에게는 악감정이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그렇다고 내가 아버지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었지만.


 모든 사이트에 불이 피워지고 캠핑장 전체에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할 무렵 해는 졌다. 캠핑장을 은은하게 밝히는 알전구와 가로등이 퍽 예뻤다. 가을이라 벌레도 없는 것이 예쁜 전경이었다.

 나와 아버지는 비로소 밥을 먹을 짬이 났고, 그는 창고의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내오셨다. 소고기였다. 평창에 있는 우사에서 바로 고기를 받아오는 정육점에서 사온 고기라고 하셨다. 빛이 밝지 않아서 그런지 다른 소고기와의 차이점을 알기는 어려웠다. 나는 그릴에 숯을 피우고 고기를 구웠다. 우리는 둘 다 그릴에 고기를 구우며 자신의 몫을 챙겼다.

 첫 점을 집어먹을 즈음에 아버지는 내게 물었다.

 “술은?”

 “술이요?”

 나는 놀랐다. 아버지는 무심하기는 하지만 절제력이 뛰어난 사람이었고, 최소한 내가 본 동안 술이나 담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었다.

 “고기를 먹는데 술이 없어서야 되겠니?”

 “언제부터 술을 드셨어요?”

 “없으면 내가 가져오마.”

 아버지는 에둘러 답변을 피하며 창고로 향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생경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휴대전화에 진동이 울렸다. 동생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오랜만이었다.

 “여보세요?”

 <형, 뭐해?>

 “아버지네 캠핑장에 왔어.”

 <아버지? 우리 아버지?> 다소 당혹스러운 듯한 목소리였다.

 “응. 왜?”

 <그냥 전화해봤어. 음......, 아버지는 잘 계셔?>

 “잘 지내시는 것 같아. 캠핑장도 장사가 잘 되고.”

 <그러면 다행이네.>

 “무슨 일인데 목소리가 그러는 거야? 뭔 일 있어?”

 그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 했다.

 <형한테 동생이 한 명 더 있었던 것, 알고 있었어?>

 “뭐?”

 <형한테 동생, 나한테 형.>

 동생? 형? 너무 생뚱맞은 소리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놀라다 못해, 혼란하고, 석죽었다.

 “처음 듣는 소린데.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아버지한테 여쭤봐. 마침 아버지랑 있다니 여쭤보면 되겠네. 나도 방금 들은 일이라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어머니한테 여쭤볼거야.>


 혼란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 아버지와 나는 술을 마셨다. 그는 창고에서 위스키 몇 병을 꺼내왔다. 손님들이 먹다 놔두고 간 술이었다. 짐 빔이나 제임슨 따위의 비교적 값싼 위스키와 헤네시, 발렌타인, 야마자키 등의 비싼 위스키 등등이었다. 짐 빔과 제임슨은 술이 많이, 발렌타인과 야마자키는 조금 남아있었으며 헤네시는 아예 한 잔도 될까말까 한 만큼만 있었다.

 아버지는 잔에 가득 술을 담아 마셨다. 나는 얼음을 부탁해 조금씩만 마셨다. 우리는 건배를 했고 아버지는 한 번에 입안을 가득 채울 만큼 술을 마셨다. 나는, 위스키는 그렇게 마시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드릴까 하다가, 아무리 그래도 주제 넘는 조언인 것 같아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아무 말 없이 한 모금을 들이킬 뿐이었다.

 “맛있니?”

 “예. 근데, 아버지, 그거 그렇게 한꺼번에 많이 드시면 간에 안 좋아요.”

 “뭐 어떻니. 요새 하루에 한 병 씩은 이렇게 먹는데.”

 “진짜요?”

 “그럼. 신나잖니?”

 “많이 힘드셨어요?” 나는 중의적으로 물었다.

 “그럼. 어쨌든 캠핑장도 사업은 사업이잖니. 사업을 하다보면 사람이 활력도 돌지만 스트레스도 웬만큼 많이 받는단다.” 아버지는 불편한 부분은 노련하게 빗겨나가면서 답했다.

 “이해해요. 저도 준석이랑 사실상 동업자 관계였으니까요.” 나는 그의 노련함을 존중했다.

 “그러고 보니 난 네 소식을 통 모르는구나. 너랑 친구가 함께 만든 회사 아니었냐? 무슨 일이 있었던게냐? 왜 퇴사를 한 거야?”

 “사실 퇴사는 아니구요, 휴가를 낸 거예요. 병가.”

 “병가를 그렇게 오래 낼 수 있나?”

 “준석이가 저를 붙잡으려고 편의를 봐주는 거죠. 저는, 호의는 고맙지만, 병가 기간이 끝나는대로 회사에서 자리를 빼겠다고 말했어요.”

 “무슨 일이 있었길래? 너나 그 회사나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했잖니.”

 “아버지 말마따나 사세도 좋고, 투자도 많이 받았어요. 저도 그 안에서 월급이며 인센티브며 많이 받으면서 열심히 잘 살고 있었죠. 그런데 스트레스......, 스트레스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답답한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 일 있잖아요,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아버지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이혼을 하게 되면서, 아, 더는 참을 수 없겠다 싶었죠. 그러면서 어떤 생각, 아니, 강한 확신이 들었어요.”

 “어떤?”

 “재고(再考)해야겠다. 좁게는 내 선택들, 넓게는 내 삶에 대해 재고하고 숨을 고를 필요가 있겠다, 는 확신요.”

 그는 나와 잔을 부딪혔다.

 “너는 참 여유롭고 현명하구나.”

 “그건, 어떤 뜻이세요?” 술을 마시며, 긴장이 풀리고 일전의 혼란이 약간은 해소되는 것을 느끼며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와 내 눈이 마주쳤다.

 “어떤 뜻이냐니? 이건 그냥 내 솔직한 감상이다.”

 “아버지 얘기도 듣고 싶어서요. 아버지랑 저랑, 같은 처지잖아요.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끼셨는지가 궁금해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군.”

 “어머니랑 왜 헤어지신건지가 궁금해요.”

 “갑자기? 왜?”

 “아버지나 저나 처지가 같은데 아버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가 궁금해서요. 저부터 먼저 말할까요?”

 다소 도발적인 그 언사를 들은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이제 무심하지 않고 냉랭했다. 최소한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나는 그가 화가 났다고 생각했다. 그 응시는 당분간 이어졌고 그것이 아버지가 내게 든 회초리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달리 말하자면 그건 아버지가 내게 내는 최초의 혼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혼내고 있었다. 그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술을 들이켰다.

 마침내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예전부터 느낀 점이지만 너는 엄마를 똑 닮았구나. 장작이나 옮기러 가자.”


 캠프 파이어를 신청한 몇 명의 손님들을 위해 나와 아버지는 창고 옆에 쌓아놓은 장작을 가지러 갔다. 장작을 사이트 앞에 벽돌로 쌓은 작은 구덩이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불을 붙이는 동안 나와 아버지는 친절한 웃음을 유지했다. 어쨌든 우리 둘 다 장성한 성인들이니까.

 내가 매캐한 연기와 싸우며 불을 붙이는 동안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님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건 오로라 가루라고 하는 건데, 불이 붙어서 활활 타고 있을 때 봉지째로 넣으면 불에 예쁜 색이 깃들게 돼요. 서비스입니다. 하지만 조심하세요. 예쁘다고 가까이 다가가면 다칠 수 있으니까요. 특히 어린 손님들이 예쁘다고 멋모르고 손을 갖다대는 경우가 있어요. 다치면 아주 아프답니다.”

 아버지는 캠프 파이어를 신청한 모든 손님들에게 오로라 가루를 나누어주며 친절하고 세심하게 설명해주었다. 나는 취기가 오른 탓인지 그 설명에 어떤 진심이 내포되어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나는 그 은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조금 그슬렸어.”

 “네? 아.”

 “조심하지 그랬냐.”

 “말씀해주시지 그러셨어요. 생각보다 불이 셌어요.”

 “하하.”

 한 시간 정도 캠핑장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캠프 파이어를 붙여주고 난 우리는 돌아오며 사소한 잡담을 나누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날 우리는 벌써 몇 차례고 어색한 기류를 넘었고, 그 때마다 아버지는 내게 친근함을 느끼듯 더 많이 웃어주었다. 내게 더 많이 말을 걸어주었다. 아직 내가 깨닫지 못한 인간 관계의 어떤 원리라도 있는 걸까.

 “아버지를 좀 더 일찍 뵈러 올 걸 그랬어요.”

 “왜?”

 “제가 상경한 이후로 우리끼리 못한 얘기가 많으니까요. 우리 가족은 좀 더 즐거울 수도 있었을텐데요.”

 “음.”

 “제가 좀 더 노력할 수도 있었을 거고요.”

 “그렇게까지 생각해주다니 대견하구나. 하지만 그건 네 일이 아니란다.”

 “그런가요?”

 “네 일이 아니라고 하니 어감이 좀 이상하구나. 네 책임이 아니라고 해두자. 가족의 분위기는 부모가 책임지는 법이야. 가장이라는 말이 그래서 있는 거지. 그런 점에선 난 별로 좋지 못한 가장이었어.”

 나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바라 마지 않던 일, 이라고 차마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런 상황을 줄곧 원해왔다.

 그런데 정확히 무엇 때문, 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웠다. 분명 나는 아버지에게 앙금을 갖고 있었다. 그의 소홀함과 무심함에 대한 용서할 수 없음의 감정. 그러나 나는 내가 가진 앙금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삼십 년이 조금 넘도록 나는 아버지의 ‘아버지’로서의 미흡함에 대해 원망감을 가져왔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를 진심으로 용서할 수 없었더라면, 그래서 그를 진심으로 원망하고 있던 거라면, 나는 그에게 미안함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일말의 미안함을 느꼈다. 전보다 노쇠한 몸을 이끌고 홀로 살아가는 노인에 대한 측은함일 수도 있었다. 또는 기대 수명의 삼 분의 일을 살아온 시점에서 처음 배운 회한이라는 감정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좀 더, 고속도로에서 느낀 날카로움의 감정, 그러니까, 단순히 말에 말을 덧붙이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 복잡하고 복합한 서운함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내가 캠핑장에 찾아온 내내 먼저 내게 말을 걸어주셨다.


 “오늘 할 일은 이제 끝이다. 좀있다 사무실 불을 끄고, 문만 잠그고 오면 돼.”

 “오랜만에 하루가 길었어요.”

 “요새 어떻게 지내니?”

 “아무것도 안 해요. 운동도 별로 안 하고, 아침 저녁으로 산책만 조금 하고 평소에는 집에서 TV만 보고 있어요.”

 “힘들겠구나.”

 “에이, 힘은요.”

 “나도 너희 엄마랑 헤어지고 계속 그렇게 살았었지. 그랬더니 온 몸이 배기더구나. 그래서 이곳에 캠핑장을 차리기로 했지. 젊었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했고.”

 “그러면 조금 낫던가요?”

 “훨씬. 삶의 감각, 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감각이 아주 선명해.”

 “좋은 일이군요.”

 “음. 그렇지. 좋은 일이지.” 아버지는 잔에 술을 가득 따르며 말했다. 벌써 다섯 잔 째였다. 저렇게 많이 마시면 간이 상할텐데, 하고 나는 생각했다.

 “걱정되냐?”

 “뭐가요?”

 “내가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것 말이다. 얼굴에서 티가 나는구나.” 그는 너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네 엄마랑 똑같이.”

 “아까는 죄송했어요.” 나는 건배를 청하며 말했다. “이혼 사유를 물어보는 것, 아무리 부자지간이라 하더라도 예의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최소한 제가 먼저 말해야 했을텐데 말이죠.”

 그러면서 나는 그에게 나의 이혼 사유를 말해주었다. 사실 거창하지도 길지도 않은 이혼 사유였는데, 그러니까,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나와 전처는 맞벌이였고, 둘 다 집보다는 회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이였다. 우리는 거래처 담당자 사이로 만나 몇 번의 불장난을 이어가다 충동적으로 결혼을 선택했고, 불길이 사그라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주 빠르게 서로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그런 애매하고 미약한 관계를 견인해 줄 아이라는 존재가 우리 사이에 생기지도 않았으므로 우리는 서로에 대한 바람을 잃은 것이었다.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법한 사유였다. 사실 우리는 처음부터 서로를 사랑하지도 않았던 걸지도 몰랐다.

 “그런데 말이죠, 이상하게도, 그렇게 진부하고 그냥저냥인 사이가 끝나고 나니 살면서 처음 겪는 정도로 큰 불안을 느꼈어요. 말하자면, 음, 말하자면......, 뭔가를 따라하고 있다는 감각이었어요.”

 “뭔가를 따라한다는 감각.” 아버지는 내 말을 따라했다.

 “분명 저는 제 삶을 살고 싶었어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행복한, 그런 삶을 말이죠. 그런데 전처와의 결혼이 끝나고 나니 내가 무언가를 따라하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분명히,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죠.”

 아버지는 나와 빤히 눈을 마주하며 계속 나의 말을 들었다. 나는 그의 의중을 알 수 없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발뺌했다.

 “물론 이 얘기를 충분히 설명하려면 며칠이고 꼬박 날밤을 새워야하겠지만, 어쨌든, 저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는 시원섭섭하게도 그런 말을 했다. “나라고 완벽한 사람이 아니니.”

 그는 나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잔이 가득 찼다. 나는 조금만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가 내게 따라준 가득 찬 잔에서 나는 어떤 인정(認定)을 느꼈다.

 “좋네요. 그 말씀은.” 나는 잔을 마시며 말했다.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이러려고 오늘 아버지를 찾아왔나봐요.”

 거나한 취기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게 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에 달리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마치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으레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충분한 설명 없이, 피상적인 감각을 읊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었다.


 새벽이었다. 나와 아버지는 각자 손에 한 병씩 술을 들고 해변으로 갔다. 동해는 거칠었다.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그러나 해변은 고요했다. 해변은 할 말이 없었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사람은 커녕 날짐승도 하나 없었다. 마치 깊은 동굴과도 같은 적막이 나와 아버지를 감싸고 있었다.

 조금 서늘한 바람이 부는 녘이었다. 나와 아버지는 자리에 앉았다. 병과 병을 부딪히며 술을 마셨다. 아버지의 노구(老軀)가 퍽 작아보였다. 술을 마시면 마실 수록 더 쪼그라드는 듯 했다. 문득 깨달은 것은, 그가 나약한 사내라는 것이었다. 최소한 내 입장에서는. 그는, 어떤 문제들에 대해서, 어린아이만큼이나 무능한 사람이었다. 감히 입 밖으로 무언가를 꺼낼 수조차 없는 사내였다.

 나는 아버지의 옆에 앉아 의뭉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 동생에게 들은 것이 떠올랐다. 나와 동생 사이에 형제 한 명이 더 있었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었을까? 그것은 비밀이었다. 족히 삼십 년은 넘게 은폐되어온 비밀. 나는 그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취기에 잠시 존재가 잊혀진 어떤 앙금에 더불어, 그에게 느낀 나의 배신감을 가중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유산, 내 형제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죽어버린 걸까.

 파양, 내 형제에게 어떤 결함이 있어서 그 존재가 지워진 걸까.

 병사,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태어난 그 작은 존재가 무슨 고통을 겪다 죽은 걸까.

 또는 내가 감히 상상도 못하는 우리 안의 스펙터클한 가정사가 있나.


 아니, 사실, 그런 것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내 관심사는 내 눈 앞의 이 사내가 왜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가였다.


 약한 사람에게 마땅히 느끼는 측은한 마음이 나로 하여금 그에게 질문을 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과감한 충동을 느꼈다. 아마도 그에게 고통이었을 어떤 사건에 대해 캐묻고, 추궁하고, 집착하며 파고들고 싶었다. 그가 무슨 고통을 느꼈을지는 상관 없이. 아니, 애초에 그가 그런 고통을 느끼기나 했을런지. 나는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그러나 내가 마침내 어떤 말을 골라 그에게 질문하려 했을 때, 아버지가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그의 어조는 다소 쇠약하고 섬세했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지?”


 나는 감상적이고 유약한 그의 말에 당혹감을 느꼈다. 저 나이대의 사람들이 당연히 보일 법한 위태로움이었다.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에 쉬이 능숙하게 대응할 수 없었다.

 “내 성격이 워낙 무심해서 너희 엄마와 너희에게 필요한 관심을 쏟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 충분히 이해한다.”

 그는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듯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난 최선을 다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든, 네 동생이, 집사람이 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했어. 그러니 만약 나를 원망하려거든, 내 마음이 아니라, 내 능력을 원망해라.”

 “아버지.”

 “내 보잘 것 없음을 원망해.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어쩌면 가족을 꾸리고 이끌어 나갈 만큼 능력이 없는 수컷이지. 이런 말이 네게 상처가 될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이 말들을 해야겠구나.”

 그의 어조는 흡사 자해하는 사람의 것이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연실색했다. 그제서야 나는 그가 술을 마시는 것이 즐거워서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걸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 과시하는 자해처럼, 아버지는 위스키를 단번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위태로워보였다.


 “미안하다, 나는-”

 아버지가 뭐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를 욕했던 것 같다. 말은 기점이 되어 모든 기억을 뭉뚱그렸다.

 아마 나도 그를 욕했던 것 같다.


 새벽의 기억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물론 그 뒤로도 아주 오랫동안 나는 아버지와 대작하며 속 깊은 얘기를 나누었다. 아니, 그런 것 같았다. 사실 아무런 기억도 남지 않았다. 뭔가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어떤 격한 감정이 오갔다는 느낌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기억의 불완전한 자투리들만이 남아있었다(지금에 와서는 그것마저 다 잃었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나는 해변가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한 손에 술병을 쥔 채로 모래사장 한복판에 누워있었다. 피부가 따갑고, 머리가 많이 아팠다. 독주는 숙취가 없다고 어디선가 들었는데 그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나는 해변의 한 쪽 끝에 위치한 개수대에서 얼굴을 씻은 뒤 비틀거리며 캠핑장으로 걸어갔다.

 아버지는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일을 하고 계셨다. 사람들에게 조식을 만들어주고, 커피를 타주며 퇴실 처리를 공손하고 친절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내가 전날 분명히 느낀 그의 나약한 인상은 어디에도 없었고 오직 강인하고 능숙한, 사업 운영에 이골이 난 경영자의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그의 무슨 능력을 원망해야할 지 도통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받아마신 후 곧바로 그의 일을 도왔다. 캠프 파이어와 그릴의 잿더미를 수거하고, 사이트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주웠으며 공용 취사 공간의 식기들을 빡빡 닦았다. 어지럽기는 했지만, 그러는 동안, 술이 점점 깨는 것 같았다. 캠핑장의 손님들은 밝은 얼굴로 나와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캠핑장을 떠났다. 그들은 다양한 차를 타고 길을 나섰다. 국산차, 수입차. 소형차, 중형차, 대형차. 승용차, SUV, 픽업 트럭, 캠핑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다 끝나고 청소 업체에서 아주머니들이 찾아오면 우리는 그제야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콩나물과 청양고추, 손님들이 남긴 해산물 조금과 계란을 넣고 끓인 매운 라면을 내놓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끓여주던 것과 똑같은 맛이었고 나는 그것을 맛있게 먹었다.

 “아버지에게 갔다고 어머니에게 말해도 될까요?”

 밥을 먹으며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왜?”

 “어머니가 궁금해하실까봐요.”

 “아니, 내게 왜 허락을 구하냐는 거다.”

 “아버지가 원하지 않을까봐?”

 “내가 원하고 말고가 무슨 상관이겠니. 집사람은 이제 내 마누라는 아니지만 여전히 네 엄마다. 엄마에게는 뭐든 솔직하게 말해야지.”

 “네.”

 잠시 정적.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고 했었지.”

 “네.”

 “무슨 일인지 알고 싶으니?”

 “아니요.”

 “그렇구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극적인 노인의 체념, 후회 엇비슷한 그 추모에는 감흥도 기분도 없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캠핑장에 다녀온 후로 이틀을 더 쉰 나는 준석에게 연락해 회사에 복귀하고 싶다고 말했다. 준석은 나를 환영했다. 바로 그날 우리는 술을 마셨다. 그는 내 상사이기 전에 내 친구였고, 그 사실을 상기시키기라도 하듯 나를 환대하며 자신의 즐거움을 피력했다. 그건 진심인 듯 했다. 준석은 자신의 친구가 역경과 방황을 이겨내고 다시 어떤 길을 걷기를 선택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할 줄 아는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좋은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에 아버지를 떠올렸다. 무심한, 회피하는, 우회적인 인간. 지난 수십 년 동안 내가 이유 없이 싫어했던 그 사람. 그 사람의 답답하고 의중을 알 수 없는 번민을 떠올렸다. 그걸 이해한다거나, 공감한다거나 심지어 묵인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날 그의 캠핑장에 다녀온 이후로 나는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고 어머니나 동생을 통해서 그의 소식을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인간적으로는, 그가 더 싫어졌다고 말하는 편이 적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순간에 당신을 떠올렸다.


 무엇으로?

 무엇을 위해?

 무엇을 바라?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나와 동생 사이에 있었던 또다른 한 명의 형제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당시로서는 흔한 일이었는데, 그러니까, 임신 초기 자신이 임신한 줄 몰랐던 어머니가 해열제를 복용했고 그것이 태아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미쳐 결국 유산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그 일로 어머니는 깊은 우울에 빠졌다. 죽은 아이를 떠올리게 하는 모든 일에 경기와도 같은 혐오를 내비쳤다. 그러나 어쩌다보니 내 동생, 그러니까, 유재가 생겼다.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으면서도 나는 옛날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상기해야만 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십 수 년을 나와 유재를 키우는 것에 전념해야만 했다. 그것으로 당신의 마음은 시들어버렸다. 가족이라는 것, 모성이라는 것, 협력이라는 것 그리고 마음이라는 것에 대한 어머니의 신뢰는 온전히 깨져버렸다. 그녀는 우리 가족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슬픔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갈라섰다. 그게 나와 유재가 철 없이 내기를 걸었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혼의 전말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여전히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었다. 아니면, 최소한, 잊지 못하고 있었다. 새아버지와의 건강하고 긍정적인 관계와는 별개로 어머니는 아버지를 인생에서 지워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의 소식을 계속 알고 싶어했다. 죽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아버지를 보고싶어하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달리, 혹은, 어머니와 같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머니를 보려 하지 않았다. 유재가 아버지에게 찾아가 무릎을 꿇어가면서까지 청을 했지만 아버지는 끝내 어머니를 찾아가지 않았다. 유재는 장례식장에도 찾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저주하며 더는 당신을 자신의 아버지로 생각하지 않겠다고 내게 말했다. 마치 내게 말하면 내가 아버지에게 전달해주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아버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를 찾는 일은 그 후로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이미 내 혈관에 깊이 새겨진 상(像)이었으므로 찾을 필요가 없었다.


 아니, 한 번. 그래. 거짓말은 하지 말자. 재혼을 하고 나는 단 한 번 아버지의 행방을 찾고자 했다. 아버지의 캠핑장의 근황을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에 캠핑장을 검색했을 때, 그러나, 그의 캠핑장은 폐업한 지 오래였다. 혹시나싶어 짬이 되는 날 그 날의 그 해변을 다시 찾아갔지만 남아있는 것은 폐허 뿐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나는 그를 찾지 않기로 했다. 그의 연락처가 아직 휴대전화에 남아있기는 했지만 전화를 걸려고하지도 않았다.


 다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세상은 어지러웠다. 언제는 안 그랬나 싶다가도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동생은 장가를 가고, 나도 재혼을 했다. 자식도 생겼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나. 나는 그의 무심함이 내게 깃들어버렸다는 직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름을 지을 때에도 나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자식이 크는 것을 볼 때에도 나는 아버지를 생각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잠을 잘 때에도, 조금씩 늙어감을 실감할 때에도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건 내가 아들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들의 초상은 아비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비는 아들의 거울이기 때문이었을까. 뒤늦게 짧은 논리로 거창한 이론 내지는 미사여구를 붙일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고민했다. 나는 그 고민에 약간은 중독됐을런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몸을 씻었는데, 몸을 다 씻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욕실의 거울로 얼굴을 들여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칠 만큼 당신과 닮은 사내가 거기 서 있었다. 서서, 있었다. 공포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런 생각들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늙으면 아버지처럼 되는 걸까.


 재혼 상대와의 사이에서 첫 아이를 가졌을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나는 그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그 생각은 답을 내놓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내가 아무리 용을 쓰고 발악을 해도 나는 그 답을 결코 알 수 없었다. 생각의 결과, 그것만은 알 수 있었다.

 대신 그때부터 나는 당신도 그랬으리라고 믿기 시작했다. 내가 그를 생각한 만큼 당신도 나를 생각했으리라고, 내가 그를 혐오한 만큼 당신도 나를 혐오했으리라고, 내가 그에 대해 무지한 만큼 당신도 나에 대해 무지했으리라고. 그리고 세상이 그런 얄팍한 이해를, 핍진하지 못한 공감을 섭리라고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한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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