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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도 Godot Aug 29. 2024

이쁜이 언니는 그날 밤 뭘 했을까?

이쁜이 언니는 그날 밤 뭘 했을까?

 


 정입분의 별명은 이쁜이 언니였다. 소싯적 미모가 뛰어나기도 했고, 이름도 입분이어서 그런 별명을 얻었다.

 이쁜이 언니는 동네에서 제일 나이가 많았다. 하여 다른 할머니들도 그녀를 언니, 또는, 이쁜이 언니라고 불렀다. 이쁜이 언니는 그 호칭이 좋았다. 그리고 할머니들도 이쁜이 언니를 좋아했다.

 외진 산간 동네에는 그들밖에 없었다. 동네의 이름은 쌔나리메였다. 새가 날아다니는 산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아무 뜻도 아니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 역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할 뿐이었다.


 “이쁜이 언니야, 이쁜이 언니.”

 마당 한 켠, 작은 텃밭의 잡초를 뽑던 주름 자글자글한 손이 멈추었다. 입분은 고개를 들었다. 동녀였다. 동녀는 입분보다 다섯 살이 적어 마을에서는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할멈이었다. 일부러 허리를 곧게 펴고 다녀 걸음걸이가 우스운 여자였다.

 “언니야, 뭐하노?”

 “풀 뽑제.”

 “맞나. 아나, 생선 좀 사왔다.”

 “왠기고?”

 입분은 동녀가 건넨 봉지를 받았다. 봉지 안에는 조기가 두 뭇 있었다. 얼린 걸 방금 꺼내왔는지, 꽁꽁 언 봉지 속 내용물이 단단하고 시렸다.

 “즈븐에 행식이가 일거리를 많이 줘서 살았다고, 성태가 언니야 사다주라 안카더나.”

 “아이고, 그기 머 일이라꼬….”

 형식은 입분의 차남이고, 성태는 동녀의 사남이었다. 환갑을 넘은 두 지체 높은 남자들의 이름을 그녀들은 익숙하게 불렀다. 그들은 여전히 이쁜이 언니의 둘째 머스마였고, 동녀네 막동이였다.

 “행식이가 행님 아이가. 가가 아우 챙기는게 머 대수라꼬 이런 거를 보내주노.”

 “캐도 있다 아이가, 언니야, 여적 나이 쳐먹고 저거 집 하나 간수 못하는 용순네 아들도 있다 안카나.”

 “어어.”

 “들기름에 찌지 무우면 그래 맛있대이. 오늘 저녁에도 쪼매 들고 가꾸로, 무쳐 먹자.”

 끄덕끄덕. 그녀는 받아든 봉지를 오래된 벽돌로 된 턱에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가 힘들고 아팠다. 익숙한 고통이지만, 요새는 부담이 예보다 더한 기분이 들었다. 누웠다 일어나도 아프고, 앉았다 일어나도 아팠다. 가만히 있어도 피곤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억척스럽게도, 무료한 나날이었다.

 “다른 할망들은 머하노?”

 봉지를 집어든 입분은 나일론 몸뻬 바지의 흙먼지를 털털 털고는 바로 옆의 평상에 걸터앉았다. 조기는 실했다. 이걸 구워먹으면 퍽 맛이 있을 것이다.

 “이파리 말리고 있제. 초구에 두 번째 비니루(비닐 하우스)에 다 모여있다.”

 “카먼 그게 마지막이다 아이가?”

 “어어. 맞다.”

 아, 그래서 저녁에 조기를 굽는다는 거였구나. 그러고보니 오늘이 잎을 말리는 마지막 날이다. 이제 일, 이 주는 아무것도 안하고 경로당에 모여 고스톱을 치거나 티비를 보아야 한다. 동녀는 입분의 얼굴에 난 주름들이 한껏 더 깊어지는 것을 보았다.

 “분쇄기 고치는 아지야들은 안 왔더나?”

 “성태가 행식이한테 연락한다 캣는데, 요새 바빠가 통 연락이 안된다 카더라.”

 “맞나.”

 이파리를 말리고 남은 대나 뿌리, 쓸모없는 찌꺼기들을 갈아버리는 용도로 경로당 뒷편에 분쇄기가 있었다. 지난 수확 때에도 분쇄를 하다가 무엇인가가 걸려 고장이 났는데, 아직 고치질 못한 것이었다. 공용창고에도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너무 크고 조작도 복잡해 쌔나리메의 노파들이 만질 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행식이가 언제 오겠노.”

 입분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힘이 풀린 꺼풀 사이로 동공이 총총했다.


 마을 초입으로 난 도로를 지나는 차들은 빨랐다. 길가에 사는 노인들은 창밖으로 뭐가 슝, 슝 지나다니는 소리에 이제는 이골이 났다. 그들은 하루동안 차 지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외려 더 불안해하는 사람들이었다.

 입분의 집은 입구에서 두 번째 집이었다. 새마을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에 시멘트와 슬레이트를 지원받아, 남편과 자신과 세 아들과 두 딸의 힘을 모아 만든 번듯한 집이었다. 휴농이면 동네 아범들과 고스톱을 치고 막걸리를 마시느라 집에 코빼기도 안 비추던 남자가 그렇게 눈을 반짝이며, 땀을 흘리며 열성을 보인 것은 입분이 그를 만나고 처음이었으며 마지막이었다. 하여 그녀는 집을 볼 때마다 이제는 없는 남편이 생각이 났다. 다 늙고 아들이며 딸들이 죄 도시로 나가 가족을 꾸리면 남은 것은 저뿐이라 할 것이 별로 없던 입분은 텃밭을 기르기로 했다. 돌보는 것은 그녀가 가장 잘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뒷마당 장독대 옆에 난 조그마한 흙더미에서 시작한 것을 남편이 죽고서는 평상 앞 텃밭으로, 나중에는 동네 빈 밭이면 어디서든 하며 텃밭을 가꾸었다.


 스르륵. 담 밖으로 차 서는 소리가 들렸다. 입분은 혹여 형식인가, 싶어 급히 고개를 들었지만 아니었다. 형식의 차는 검은색이고 저기 선 차는 흰색이었다. 파란띠와 노란띠가 그려져있고, 위로는 색깔 유리통 같은 것을 달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파출소의 장 순경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실망했다.

 “이쁜이 할머니, 뭐하고 계셔요?”

 “사탕 먹고 있다. 니도 무울래?”

 입분은 홍삼 사탕을 건넸다. 그러자 장 순경은 사양했다. 그는 홍삼 사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그것을 건네었다.

 “장순경이 니는 머하노?”

 “저야, 뭐, 순찰 돌죠.”

 “그짓말 하지 마라. 니, 행식이 찾으러 댕기는거 아이가?”

 장 순경은 너털너털 웃었다. 그 웃음은 곤란했다.

 “아휴. 저희가 알면 당연히 알려드리죠.”

 “카머는 와 이 초네까지 와서 기웃기웃거리노? 하루에도 너거들 차가 수십 번은 보인다 안카나!”

 “저희도 곤란해요. 이해해주십쇼, 할머니. 아드님이 요새 워낙에 유명해요.”

 “유명은 머가 유명하노.”

 “할머니도 뉴스 보셔서 알잖아요. 아드님 부하들이 버스를 들이받아서 아드님과 함께 도망을 갔다구요. 그런 일만 아니었어도 저희 같은 시골 파출소에 이렇게 순찰 지시가 많이 떨어지지를 않아요. 저희도 하루에 두 번만 왔다갔다하면 좀 좋습니까?”

 “몰라, 내는 모른다….”


 텃밭을 가꾸는 일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매진하다보면 하루가 지나고 일 년이 지났다. 곧 마을에는 입분과 비슷한 처지의 할멈들이 하나 둘 늘었고, 그들은 입분과 함께 텃밭을 가꾸며 슬픔을 거름으로 주었다. 그러다보면 꽃이 피고, 나물이 영글었다. 곧 마을은 남편을 잃은 여자들로만 가득찼다. 그녀들은 자식을 잘 키운 만큼, 남편을 잘 보필한 만큼 꽃과 나물을 잘 키우고 곧 서로를 잘 보살폈다.

 그러던 하루였다. 추석이 조금 지나고 입분네 집에 둘째 아들 형식이 찾아왔다. 무슨 일로 온 건지 묻기보다는 그저 하염없이 좋아 벙긋 웃으며 자식을 안은 입분에게 형식은 씨앗 몇 봉지를 주었다. 이게 머꼬? 그냥, 지나가다가 엄마 생각나가꼬 좀 사왔다. 맞나, 무슨 꽃인데? 몰라, 나도. 시장 할매한테 걍 쩨일 예쁜 걸로 몇 봉 주소, 캤다. 엄마가 마을에 삐까리로 텃밭을 만들어놨다카니께, 할매가 이마이 많이 줬다 안카나. 하이고, 고맙데이. 키아보고 꽃 피면 전화할게. 밥은 안 먹고 가나? 으응. 출장 가는데 마침 근처 지나가니께 엄마 생각나서 잠깐 들렀다 안카나. 미안해요. 아이다, 미안키는. 내가 미안하제.

 형식은 입분이 가장 좋아하는 아들이었다.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는 주먹 깨나 써서 왕처럼 군림하고, 어른들 사이에서는 솔선수범하여 예의를 지키는 곧은 아이였다. 엄한 성격의 남편을 똑 닮았다. 유약한 성격의 첫째나 장난기가 많은 셋째, 변덕스러운 두 딸에 비하면 훨씬 알기 쉽고 말을 잘 따른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에서 선생을 폭행해 퇴학 처분을 받았을 때에도 앞으로는 기술을 배워서 공장을 차리겠다고, 능력이 있으면 다 되는 시대가 올 거라고 호언장담을 할 때에도 그녀는 그를 믿었다. 공장에서 주임을 폭행해 입건되었을 때에도, 마누라를 때려 이혼을 당했을 때에도 그녀는 자식을 믿었다. 항상, 다른 자식들보다도 더. 은행에 담보로 맡긴 고향집을 압류당한 형식이 그 집을 다시 어머니에게 돌려줄 때, 그 믿음은 비로소 결실을 맺고 보상을 받았다. 형식은 마흔줄이 되어서야 자신이 경영하던 사업을 성공시켰고, 멋진 외제차에 어머니를 태우고 고향으로 금의환향했다. 그 날 잔치를 벌이기 위해 잡은 소고기의 맛을 입분은 아직 잊지 못한다.

 그런 형식이 그녀에게 준 씨앗들을, 입분은 소중하게 키웠다. 그리고 그 씨앗은, 생뚱맞게도, 삼이었다.


 “아무튼, 별 일 없으시죠?”

 “별 일 읎다. 신경쓰지 마라.”

 “알겠습니다. 아, 요새는 삼 안 키우시죠?”

 “안 키운다!”

 “걱정돼서 여쭤보는 거예요. 요새는 옛날이랑 달라서 삼을 키우는 게 불법이예요. 요새는 그걸로 대마라는 걸 만들어요. 마약입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거짓말하시면 저희가 할머님을 잡아가야합니다. 동네분들한테도 여쭤볼거예요.”

 입분은 부러 그의 말을 무시하며 부뚜막으로 향했다. 쌓아놓은 나뭇가지 몇 대를 부러뜨려 아궁이에 넣고, 막내가 저번 설에 가져다준 고체 착화제를 한 줌 던지면 불을 붙이자마자 무지막지한 연기가 났다. 장 순경은 눈이 따가워져 마당을 나섰다. 이쁜이 할머니가 더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여긴 것이었다. 그 위에 아직 녹지 않은 조기를 석쇠에 올려 굽기 시작하면 생선 비린내가 연기에 섞여 눈이 더 따가웠다. 그는 차를 몰고 도로로 나섰다.


 몇 달 뒤에 찾아온 고향 마을이 온통 삼밭인 것을 둘러본 형태는 만족한 얼굴을 띄었었다. 입분이 평상에 앉아 참외를 깎아주는 동안 형태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행식아, 니 베 짤라 카나. 삼이 그래 좋나.”

 “내는 아이고, 중국이랑 동남아 쪽에 내 아는 사장들이 삼을 취급한다 안카나.”

 중국? 동남아?

 “맞나. 근데 이게 돈이 되나?”

 “엄마, 한국 삼이 그렇게 귀하댄다. 중국이랑 동남아는 물이랑 땅이 안 좋아가, 우리나라 거를 최고로 친다카더라. 이 동네에 핀 요만큼만 팔아도 내 떼돈 번다. 엄마도 수고비 두둑이 챙겨줄게.”

 “내 혼자 한기 아인데….”

 “안다, 동네 아지매들이 같이 밭 맨거. 엄마한테 돈 드릴 테니까 그 돈 노나서 가지고 맛난 것도 잡숫고 그라이소. 저번에 맹키로 우리 직원들 보내서 소나 한 번 더 무까?”

 입분은 현기증을 느꼈다. 이마가 지끈거렸다. 참외를 깎던 손이 덜덜 떨려, 손을 벨까 겁이 난 나머지 그녀는 깎던 참외를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안 보려 한 건지, 아니면 그저 우연인건지 형식은 평상에서 일어나 차의 트렁크를 열었다. 안에는 가죽으로 된 서류 가방이 있었고, 그는 그 안에서 통장과 도장 그리고 봉투 하나를 꺼내어왔다.

 “엄마, 받아라.”

 “됐다. 내는 이런거 필요 읎다.”

 “내 성의라 안카나.”

 “진짜다. 벌로 카는줄 아나.”

 “형희 형이나 형오하고 내 연락 안하는 거 알잖아, 엄마. 지애나 순애도 맹 안하고. 마누라 도망가고 아버지 돌아가시가 내는 이제 가족이 엄마 밖에 읎다. 내는 엄마밖에 챙길 사람이 읎는데, 엄마가 안받아주모 너무 섭하다. 꼭 좀 받아도, 엄마.”

 그 말에 입분은 그것을 받아들어야만 했다. 통장에는 평생 보지 못한 개수의 0이, 봉투에는 지폐가 아닌 무슨 종이 같은 것이 다발로 있었다.


 읍내의 농협 은행을 갔다오면 해가 슬슬 저무는 즈음이었다. 산중에 위치한 쌔나리메에 다가가는 차창으로는 벌써 마을 한가운데에 훤하니 밝은 빛이 보였다. 하우스의 비닐을 뚫고 빛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빛줄기를 따라 연기가 폴폴 피어오르고 있었다. 조기를 굽고 있을 것이다. 조기를 얼마나 많이 굽는지, 초입에 가까워질수록 생선 껍질이 구워지는 비린내가 더 진하게 났다. 형식은 동녀의 아들 성태 편으로 마을에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주고는 했다. 조기가 그 중 하나였다. 삼 태우는 냄새는 조기 냄새에 섞이면 그렇게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성태는 형식을 도와 마을에서 재배한 삼을 어딘가로 실어나르고는 했다.

 ‘머가 그래 좋아가.’

 입분은 무릎을 괜히 한 번 매만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객이 몇 없는 시골버스. 입분이 일어서자 버스가 더 낡고 휑해보였다. 저앞에 큰 운전대를 잡은 버스 운전수의 희끗한 뒤통수에 대고 “내립니데이.” 소리치면 버스가 털털털 소리를 내며 속도를 늦추었다. 이윽고 차가 완전히 멈추면 그녀는 한 발, 한 발을 딛고 계단을 내려가는데에 몇십 초는 들였다. 두 발이 땅에 닿고 지팡이를 디디면 다시 털털털. 버스는 흙먼지와 매연을 공중에 흩뿌리며 제 갈길을 가고 입분은 콜록이며 길을 건넜다. 혹여나 차가 지나갈까봐 그녀는 좌우를 살피며 천천히 걸었다. 자라 같은 느린 걸음에 누군가가 자신을 치고 도망갈까봐, 아니면 형식의 차가 지나가는 것을 놓칠까봐 일부러 신중히 걷는 것이었다.

 ‘머가 그래 좋아가….’

 터벅터벅. 고관절과 힘겹게 씨름하며 들어간 비닐하우스. 할멈들은 출입구쪽으로 화덕과 휴대용 버너를 몰아놓고 그 위로 조기를 한가득 구워대고 있었다. 이쁜이 언니가 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하우스의 문은 영원히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동녀며 용순이며 말자며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늙은 여자들이 삼을 피우며 헤벌레, 널브러져있었다. 하우스에 들여놓은 평상 위로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은 것으로 보아, 모이자마자 밥은 먹는둥 마는둥하고 곧장 불부터 피웠을 것이다.

 “언니야, 왔나?”

 “복순아, 이쁜이 언니 왔다.”

 “동녀랑 용순이도 깨워뿌라. 언니야 왔다 안카나.”

 눈알이 매캐할 정도로 연기가 자욱한 그 하우스 안에서 입분은 유일하게 삼을 좋아하지 않는 여자였다. 싫어하는 것도 피우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그걸 피우고 나서 느끼는 깨름칙한 기분을 끝내 놓지 못하는 유일한 노인이었다.

 “너거는 밥도 안먹나.”

 입분이 말했다. 그러자 막내 용순이 연기만큼이나 매캐하고 느릿한 어조로 답했다.

 “인자는 밥맛도 읎다, 언니야. 아덜한테 땅이나 물려주고 빨리 가야제.”

 “맞다. 행식이가 삼이나 좀 안 갖다줬으모 내는 지금까지 안 살아있다. 서방도 없고, 자식들도 안오는데 내가 여 와 있노.”

 동녀가 용순의 말을 거들었다. 입분은 그들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언니야, 아나. 니도 한 대 피아라.”

 평상 구석에서 느릿느릿 기어온 복순이 입분에게 말린 삼을 건네었다. 잎과 대를 거두어 말리고, 성태가 형식에게 가져다주고 남은 것들을 할멈들이 피우는 것이었다. 입분은 복순이 건넨 삼을 받아 구석에 놓인, 조기를 굽는 화로에 지져 연기를 피웠다. 한두 모금을 빨아보니 텁텁하고 착잡했던 체증이 내려가시는 기분이었다. 평상을 보니 복순은 다시 엎드려 자고 있었다.

 “언니야, 행식이한테 참말로 고맙다고 전해주라.”

 평상에 걸터앉은 입분에게 동녀가 말했다.

 “성태가 바깥에 나오고 아무도 안 찾아줘서 참말로 서글펐다카대. 행식이해이 아니었으모 칵 죽어뿔라캤다카니께 가슴이 천불이 나고 찢어지는거같더매로 또 참말로 감사하고 고마벘다 안카나.”

 “하이고, 그래 말 안해도 된다. 행식이가 옛날부터 동네 대장이었다아이가. 대장이 쫄병들 안챙기모 그기 대장이가. 우리 서방이 여적 살아있었으모 행식이가 성태 안 돌보모 천불역정을 냈을기라.”

 “하이고, 하이고.”

 연달아 한숨 비슷한 무언가를 내쉬는 동녀의 얼굴은 주름이 자글한 가운데 활짝 피었다. 입분은 그게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아무렴 어떻냐고도 생각했다. 손가락 열 개를 여덟 번, 아홉 번은 쥐었다 펴야 겨우 셈이 되는 자신의 인생 동안 이해가 안되는 것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 것을 일일이 다 신경쓰고 하려면 마음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입분은 한 대를 다 피웠다.

 “벌써 다 피았나, 언니 오늘 먼 일 있었나?”

 용순이 지척에서 말했다.

 “내야 먼 일 있겠나. 우리 행식이가 다 잘 해줄긴데.”

 “맞제. 아고, 행식이…. 내가 행식이 걱정을 다 하노. 우리 뱅오가 잘 있어야할긴데.”

 “뱅오한테 전화 안왔나?”

 “뱅오가 전화비가 어디있노. 강원도 산골짝서 여꺼정 차 타고 올 돈도 없을텐데….”

 “오늘 농협 가가꼬 느 통장에 돈 넣어주고 왔다. 거를 뱅오한테 보내주먼 안되겠나?”

 “어데로 보내노. 뱅오, 통장이 없다.”

 입분은 그러면 병오네 동생, 병훈한테 보내주면 안되겠느냐고 말하려 했다. 그러다가 문득 병훈이 작년 이맘때쯤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이 기억나 차마 할 말이 없어졌다. 병훈의 아내는 시어미와 연락이 끊긴지 진즉 꽤 됐다.

 “오며는 꼭 전해줘라. 내가 장 서는 날에 농협 가가꼬 뱅오 줄 통장 하나 만들어오께.”

 “아이다, 언니야. 성태가 노나준 돈 한 푼도 안 쓰고 애끼놓고 있다. 내캉 일해가 새끼 밥 안 굶게 해야된다 아이가.”

 “아이고, 가시내야. 카니께 요새 삐쩍 마르제. 성태가 밥사무우라고 준 돈인데 그거를 아끼모 우야노. 니 머먹는데, 요새?”
 “새참이랑 삼밥 먹는다 아이가.”

 총총. 입분의 눈알이 다시 총총해졌다. 별도 총총했다.

 그녀들은 아마도 웃고 있었다. 이런 똘개이 같은 가시네. 아고, 우스버라. 와카노. 자욱한 연기 가운데 웃음이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마침내 하우스는 가득 찼다. 칠, 팔순을 훌쩍 넘기고 구순을 바라보는 입분은 이토록 웃은 적이 없었다. 무엇이 우스운가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말할 것도 많아 뒤죽박죽이었다. 이쁜이 언니가 웃자 동생들도 덩달아 웃었다.

 턱이 빠져라 웃고나면 턱이 빠졌다.

 귀가 터져라 웃고나면 귀가 터졌다.

 눈물이 날 새라 웃고나면 눈물이 홍수처럼 하우스를 가득찼다.

 그러면 모든 것이 참으로 예뻐보였다.

 입분은 점점 시야가 어두워졌다. 자신이 죽는 것은 아닌가, 덜컥 겁이 난 나머지 그녀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물에 뜬 것처럼 사지가 사방으로 움직이는데 물은 아닌 것이 아마도 공중에 뜬 모양이었다. 바닥이 없는 무저갱이었다. 처음에는 무서워 실금을 한 듯 몸뻬가 축축하게 느껴졌는데, 몇 분이 지나고도 몇십 분이 지나고도 손끝으로 발끝으로 뭔가 닿는 것이 없고 땅에 부딪혀 몸이 부서지지도 않아서 이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반짝. 반짝.

 무언가가 아궁이에 남은 불씨마냥 빛을 내고 있었다. 손을 뻗어보니 닿았다. 홍삼 캔디였다. 입분은 비닐로 된 껍데기를 까고는 그것을 입 안에 넣었다. 그윽한 약방 냄새와 함께 달착지근하고 끈적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캔디를 먹으면 그녀는 왠지 모를 안도를 느꼈다. 그것은 그녀가 태어나고 처음 먹은 사탕이었다. 집안일을 하면서 남편의 다과통에 들어있던 것을 몰래몰래 한 개 씩 집어먹던 것이 그녀와 홍삼 캔디의 첫 만남이었다. 나중에 남편에게 걸렸을 땐 도둑년도 아니고 왜 서방 것을 훔쳐먹냐고, 호되게 혼났다. 그 뒤로 남편은 읍내에 다녀오는 날이면 항상 캔디를 한 봉지 씩, 장을 보는 봉다리의 가장 밑에 깔고는 모르는 척 부엌에 놔두고 TV를 보았다.

 남편이 사온 홍삼 캔디를 그녀는 자식들과도 나눠먹고는 했다. 장롱 위로,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즈음에 봉지를 숨겨놨다가 아이들을 칭찬하고 싶을 때 한 개씩 나눠주고는 했다. 형희와 형식, 형오는 캔디를 좋아했고 지애와 순애는 캔디를 싫어했다. 딸들은 계집아이들끼리 놀러간 들에 핀 아카시아를 따먹는 것을 더 좋아했다. ‘머시매들은 저거 아비를 닮는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그중에서 캔디를 가장 좋아하는 것은 형식이었다. 아버지에게 걸려 호되게 혼나기 전까지는, 형이나 동생의 캔디를 빼앗아먹을 정도로 캔디를 좋아했다(그 뒤로도 그는 가끔 그들의 것을 훔쳐먹고는 했다).

 형식을 가장 아끼는 마음은, 무엇때문일까. 입분은 문득 생각했다. 자식들이 명절마다 문안을 드리러 오면, 그들은 자리에도 없는 형식이 엄마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불평을 하고는 했다. 그게 진담이건 장난이건,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그녀 자신의 편애를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는 왜 둘째 오빠만 예뻐하는 거야? 솔직히 우리 중에 제일 부끄러운 자식이잖아.>

 순애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입분 스스로도 그게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행식이가 머가 부끄럽노. 즈 앞가림 잘 하고 댕긴다 아이가.>

 <앞가림은, 무슨. 범죄자잖아.>

 <말조심해래이. 즈그 오빠한테 못하는 말이 읎노.>

 <혹시나해서 말하는데, 엄마가 잘 챙겨주지 못해서 형식이 오빠가 그렇게 된거라고 생각하지마. 그 오빠는 옛날부터 문제만 일으키고 다녔어, 애들이나 두들겨패고.>

 존재하기나 했는지 의심되는 그 대화는 입분이 버럭, 성을 내서 끝이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도 느그들 두들겨패고 싶었던 적 많대이!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았다.

 ‘내는 왜 그 말만 선명할꼬.’

 점점 몽롱하고,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지는 가운데에 입분은 형식의 행실을 상상했다. 내키는대로 사람을 때리고, 술과 도박과 계집질을 즐기고, 못된 짓을 도맡아 하며 큰 돈을 만지는 놈팽이. 어미 스스로도 좋은 생각이 들지 않는 한심한 자식에게 관심이 가고, 그런 아들을 가장 챙기고 싶은 마음은 과연 아픈 손가락을 감싸고드는 어미의 추한 본능인걸까. 아들이 돈을 주고 심으라고 한 대마를 동네의 노인들과 나누어피는 것은 과연 아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하는 일인걸까. 아들을 너무 생각하는 걸까….


 입분은 홍삼 캔디가 먹고싶어졌다.

 동녀야, 내 저고리 어디갔노?

 몽롱한 와중에 자신의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듯한 기분은 참 오묘했다. 용순과 평상에 나란히 걸터앉아 삼을 피우던 동녀는 못지 않게 몽롱한 목소리로 복순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입분은 엉거주춤, 일어서서는 복순에게 향했다. 삼을 많이 피워서인지 고관절이 전혀 아프지 않았다. 걷는 것이 수월한 것은 아니지만, 힘들지도 않았다. 지팡이 없이 한 발자국, 발자국 씩 내딛으면 어느새 평상 끝에 누워있는 복순이 있었다.

 복순아, 내 저고리 봤나.

 복순에게 말했다. 복순은 축 처져있었다. 입분은 복순을 흔들어 깨워보려고 했다. 미동도 없었다. 그러고보니 복순은 입분의 저고리를 깔고 앉아있었다. 그 저고리는 형식이 사준 것이었다.  이놈 가시내. 입분은 홧김에 복순을 밀쳤다. 복순은 스윽, 하고 넘어갔다. 입분은 저고리를 주워 먼지를 탈탈 털어냈다. 그녀는 그것을 입었다. 그러고는 다시 주춤주춤, 하우스를 걸어나갔다.

 어두운 들판 한가운데에 외따로 난 비닐하우스에 할멈들이 모여 조기를 구워먹는다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고보면 하루에 몇 차례고 마을 근처를 지나다닌다는 장 순경도 참 멍청하다고 입분은 생각했다. 왜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는걸까, 그녀는 나름의 가설을 세워보았다. 그러나 밤공기가 충분히 들어차지 않았는지, 삼 꼴은 연기가 머리에서 덜 빠져나갔는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는 않았다. 아무리 무언가를 생각하려해도, 홍삼 캔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저고리의 오른춤에 난 지퍼를 열면 홍삼 캔디가 남아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까서 먹었다.

 아.

 형식이 남편의 다과통에서 홍삼 캔디를 훔쳐간 것이 기억이 났다. 유달리도 캔디를 달라고 조르던 날이었다. 전쟁놀이에서 이겼다고 했다. 입분은 공부 열심히 해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으면 홍삼 캔디를 주겠다고 했고, 형식은 심술을 부리며 캔디가 먹고싶다고 했다. 끝까지 무시를 하자 어디론가 사라지길래 그냥 포기한건가, 싶었던 입분은 그날 저녁 남편이 형식을 흠씬 두들겨패는 것을 보았다. 평소보다도 유달리 심하게 때리고 있었기에 놀란 그녀는 대체 왜 애를 잡냐고 물었고, 남편은 ‘길바닥에서 놀고 다니니 못되 쳐먹은 것만 배웠다’면서 형식이 홍삼 캔디를 훔친 사실을 알려주었다. 입분이 그 날을 선연히 기억하는 것은, 그러나, 남편이 둘째 아들에게 가한 폭력의 가혹함 때문이 아니었다. 맞는 동안에 악다구니를 쓰며 내가 왜 맞아야 하느냐고, 나는 왜 홍삼 캔디를 못먹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형식의 발악이 입분의 마음에 강하게 새겨진 것이었다. 뺨을 맞고, 박달나무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맞는 동안에도 형식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가난한 집이 싫다던가, 홍삼 캔디 말고 더 맛있는 걸 먹고 싶다던가, 맨날 때리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던가. 그것은 흡사 결투와도 같았다. 어릴 적 그녀가 읍내에서 본 활동 사진의 활극과도 같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남편과 형식의 결투는 칼과 칼의 대결이 아니라 뺨싸대기-몽둥이와 독기(毒氣)의 대결이라는 점이 있었다. 그 전으로도 후로도 남편과 형식이 사사건건 대립하는 일은 많았지만, 그 날 만큼 심한 적이 없었다.

 ‘사탕을 안 애낐으먼, 내가 사탕을 더 많이 줬으먼…, 내가 대신 맞았으먼….’

 울대가 뜨거워졌다. 삼을 말고 싶어졌다.


 동녀야, 댓자루 많이 남아 있나?

 하우스로 들어간 입분은 동녀며 용순, 그 외에 다른 할멈들이 오순도순 모여있는 것을 보았다.

 “우야노, 언니야.”

 동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복순이가 숨을 안 쉰다.”

 머라꼬?

 입분은 당황하여 평소보다도 더 엉거주춤,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녀들은 복순을 둘러싸고 서있었다. 복순은 아까 입분이 밀쳐 넘어간 그 자세 그대로였다. 노인들은 모두 울고만 있었다. 엉엉. 우야노, 인자. 복순아-. 아이고-. 침울한 목소리로, 그녀들은, 아까와는 정반대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울상인 채로 누구는 찔끔, 누구는 질질 울고 있었다.

 입분은 어떤 느낌을 포착했다. 그 느낌은 전에 한 번, 그러니까, 형식의 형량이 확정되고 그가 법정을 나설 때 느낀 것이었다. 입분은 그때 남편이 한 행동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야들아, 진정해라.

 이쁜이 언니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사뭇 준엄하기까지 했다. 노인들은 울음을 그치고 입분을 바라보았다.

 정신 잘 차려야 한데이. 너거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알고는 있나? 몰래 삼 피우다가 재수없게 복순이가 죽은 그정도 문제가 아이라. 할마시들이 머를 몰라가꼬 피우다 죽은, 그정도 문제가 아이다 이말이라. 이 삼을 누가 줬노. 삼을 누가 주고, 우리가 삼을 누구한테 주나 이말이다. 삼을 누가 키우라고 했노. 행식이하고 성태 아이가. 복순이가 숨을 안 쉰다꼬 우리가 어디에 신고를 하모 행식이하고 성태가 애먹는다. 그게 무슨 뜻인가 하먼, 우리가 지금껏 삼 키우고 돈 받은 것들 때문에 우리 자석덜이 뉴우스에 나오고 감옥을 간다 이 뜻이다. 정신 똑띠 차리래이.

 가장 크게 동요한 것은 동녀였다. 마을의 삼밭에 가장 자주 오는 것은 성태, 그러니까, 동녀의 아들이었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하며 그저 입분에게서 신묘한 계책이 나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너거가 내한테 돈 빌려가서 내도 잘 알고 있다. 행식이랑 성태가 가져다준 돈으로 너거 아들 집 사고 땅 사는 데에 보탰다 아이가. 돈천만원씩 왔다갔다했는데 복순이 때문에 장순경이 같은 아가 오먼 금방 들통나고 죄다 감옥소 간다. 정신 똑띠 차리고, 그만 울어라.

 “언니야, 카머는 우예 해야 하노?”

 “캐도 숨을 안 쉬는데 병원을 가야제….”

 문디 촌년아, 여적 이해를 못하것나! 우리 마을이 망한다꼬! 쌔나리메가 읎어진다 이 얘기라!

 입분이 기함에 가까운 큰 목소리로 호통을 치자 그녀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몇몇은 상황을 이해했지만, 몇몇은 그저 입분의 화가 두려워 더 이상 말하기를 포기한 것이었다.

 입분은 노인들을 반으로 나누었다. 동녀가 속한 무리는 하우스 안을 깨끗이 정리하고 흔적을 말끔히 지우기로 했다. 그녀들은 일사분란하게, 집안을 청소하던 작고 꼼꼼한 손을 놀려 하우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감추었다. 그것은 불과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다같이 힘을 모아 축 늘어진 복순을 평상 위에 올려놓고, 바닥이며 주변에 빛이 닿는 부분에 남은 삼 탄 자국들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그러는동안 입분의 무리는 근처의 농막에서 비료 포대를 옮길 때에 쓰는 손수레를 신속하게 들고 왔다. 평상에 놓인 복순의 몸뚱이를 수레에 싣는 데에는 모두의 힘이 필요했다. 하지만 일단 싣고나면 둥그런 바퀴가 아무 문제 없이 흙바닥도, 시멘트나 아스팔트도 굴러다녔다. 입분은 동녀를 제외한 다른 노인들은 집으로 돌려보내고, 날이 밝는대로 마을의 삼이란 삼은 뿌리까지 뽑아 모조리 불태워버리라고 지시했다. 동녀는 입분과 함께 수레를 앞에서 뒤에서 끌며 어디론가 향했다.

 “언니야, 우리 어디 가노?”

 그즈음에는 입분의 정신도 맑아졌다. 하여 마음이 정갈해지자 그녀는 실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그리고 무슨 결심을 했는지를 깨달았다. 어지럽고, 손의 떨림이 멈추지를 않았다. 형식이 돈을 건네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이쁜이 언니?”

 “조용하고 따라오니라.”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의 떨림에도 불구하고, 어조가 분명해서 오히려 권위적이었다. 동녀는 놀랐다.

 “어차피, 인자 다 가는 사람들이다.”

 입분은 차분하게 말했다. 말의 끝이 흐려 문장이 불분명하게 끝났음에도 동녀는 그 말을 오히려 또렷이 듣고는 십분 이해하게 되었다.

 “우예 된동, 사람은 땅으로 돌아가는기라….”

 “맞다, 언니야.”

 동녀 역시 숨이 조금 차지만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복순이 언니도 똑같이 생각했을기라.”

 “….”

 “내도 언니야랑 똑같이 생각한다. 우리는 이래삐 몬한다.”

 그들은 숨이 차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동이 트는 즈음이면 길이 생긴 모양이 분명히 보여서 걸음이 더 빨라졌다. 그러는 동안 고관절의 뻐근함도, 주름 사이의 오한도 돌아왔지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동녀야.”

 입분이 차분하게 말했다.

 “니 우리 서방 기억나나.”

 “하먼.”

 “훈장이었다 아이가. 전쟁 나고는 농사만 지었지매는.”

 “하먼.”

 “참말로 똑똑했는데, 그제.”

 “하먼.”

 “힘도 세고.”

 잠시 침묵.

 “갑자기 와?”

 “힘이 딸리가. 서방 보고잡다.”

 “성태 부르면 안되나.”

 “우리만 알면 된다. 이기 머 좋다꼬 아들을 불러 시키쌌노.”

 “맞다.”

 완만하지만 벅찬 언덕을 오르고나면 공용 창고가 있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훔쳐갈 것도 없어 빗장으로만 닫긴 창고의 문을 열면 한구석에 분쇄기가 있었다. 녹이 슬고 먼지도 많이 꼈지만, 한창 마을이 번성하여 쌀이며 보리를 키울 적에 여물을 만들기 위해 들여놓은 것이라 크고 튼튼했다. 동녀가 창고의 등을 켰다. 그러면 남편을 따라 그나마 기계를 만진 적이 있는 입분이 분쇄기의 전원을 켰다. 처음에는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당황한 입분은 두 번, 세 번 전원 버튼을 눌러보았다. 여전히 기계는 움직이지 않았다.

 “우야노. 우야면 좋노.”

 입분이 말했다.

 “언니야, 코드.”

 동녀가 말했다.

 “참말, 내 정신 좀 봐라.”

 입분은 기계의 하단으로 이어진 코드를 창고 한 구석으로 길게 늘어져있는 소켓에 연결했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분쇄기에 시동이 걸리고, 먼지가 풀풀 나리며 모터와 날이 돌기 시작했다. 서슬퍼런 녹슨 기계가 내는 굉음은 악몽과도 같았다.

 “하나, 둘, 셋.”

 “엇차.”

 입분과 동녀는 힘을 합쳐, 이제는 복순이 아닌 살덩어리를 기계에 집어넣었다. 갈갈갈, 처음에는 모터에 옷이며 뼈가 걸려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입분이 기억나는 대로 이것 저것을 만져보니 방금 전보다도 훨씬 더 큰 굉음을 내며 날이 돌아갔고 피가 윤활유가, 뼈와 살이 가루가 되었다. 입분과 동녀는 그것이 더 이상 소음을 내지 않을 정도로 입자가 동그랑땡의 반죽 마냥 곱게 갈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것들을 챙겨 다시 손수레에 실었다. 해가 밝으면 호스나 솔과 양동이를 들고 와서 기계를 닦아야 했다. 그리고 그전까지 그녀들은 수 시간 전엔 친구였던 어떤 냄새나는 덩어리를 쥐도 새도 모르게 숨겨야만 했다. 입분은 산 깊은 곳, 화장을 하느라 어느새 자연히 잊혀진 서방의 가묘(假墓)를 떠올렸다.

 손수레는 산중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동안 그녀들의 몸은 아우성을 넘어 비명을 지르는 정도로 힘겨웠다. 그러나 몸보다는 마음이 더 편치 않았다. 추악한 손보다도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걸음걸이보다도 더 또렷한 어떤 생각의 씨가 복순의 피를 빨아먹고 뿌리를 내렸다.

 “동녜야.”

 “어어?”

 “행식이도 이랬겠나.”

 “….”

 “성태도 이랬겠나.”

 “우리 성태는…. 우, 우리 성태는, 안했을기라.”

 “와?”
 “성태는 쫄배이고, 행식이는 대장 아이가. 성태는 해봐야 주변에 우리맹키로 삼 키우는 할매들이나 보는 아라고 들었다. 가끔 조기나 멫 뭇 사다가 할매들 갖다주고, 추럭(트럭)으로 행식이한테 보내주고…. 아무튼, 성태는 안했을기라. 성태는 내맨키로 유들유들한 아라.”

 입분은 그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아주 적확한 지적이었다. 성태는 동녀를 닮아 성정이 온순해 사람을, 친구를 동그랑땡으로 만들 생각을 못할 아이였다. 다만, 그렇다면, 형식의 악한 성정 역시 나를 닮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마음 속에서 고개를 처들었다. 더러운 피는 더러운 어미로부터 자식에게 내려가는 것인가 하는 걱정을 했다. 티브이 연속극에서는 그런 일이 왕왕 있었다.

 “오메야, 내 정신 좀 바라.”

 동녀가 말했다.

 “머가?”

 입분이 물었다.

 “빨리 안 내려가모 연속극 못 본다 안카나. 아이 참, 우짜노….”

 동녀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입분은 머리를 흘러다니는 글자 한 마리가 낚시꾼에게 잡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복순의 반죽을 볼 때보다도 가슴이 더 철렁했다.

 “카모, 얼렁 가자. 다 왔다.”

 “이쁜이 언니야, 언니야 집에 채신 티브이 있다 아이가? 그걸로 지나간 것도 볼 수 있으머 좋겠네. 내려가모 성태한테 물어봐가꼬 단디 알아봐야겠다.”

 수다스러운 동녀가 분주하게 다리를 놀리려 안간힘을 쓰는 것은 참으로 웃긴 모습이었다. 하여 입분은 저도 모르게, 왁자하게 웃어버렸다.


 가묘 주변에 복순을 버릴 때 즈음에는 노래가 부르고 싶어졌다. 그런데 무엇을 부를지는 알 수 없어 그녀는 우선 가락만을 흥얼거렸다. 그러다가 노랫말이 떠오르면 느릿하고 미약한 목소리로 노래를 읊조렸다. 간다면 가라지 누가 너를 못 보낼 줄 알고 가라지 누가 너를 잡을 줄 알고-. 총총한 별은 스러지고 하늘에 볕이 밝아올랐다. 동녀는 불안에 떨며 노래를 따라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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