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겠다. 네가 결정한 것이라면.
<유퀴즈>에서 CL과 아버지인 이기진 교수의 이야기를 봤다. 모든 말에 울림이 있었지만 유독 '만약 나라면'을 생각케 하는 일화가 있었다. CL이 강변북로를 지나는 차 안에서 "아빠, 나 학교 그만두고 싶어"라고 했을 때 아버지는 이유를 묻지도 않고 "좋아.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자. 오케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대답했다는 것. 본인의 결정을 본인이 얼마나 오래 했을 것이냐며, 그래서 더 물을 필요가 없다고. 왜냐고 물으면 서로 하지 말아야 할 얘기들이 나오기도 하니까, 굳이 할 필요 없는 것이라고. 딸이 아버지가 절대 'No'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말에서도 둘 사이 신뢰가 얼마나 두터운지 알 수 있었다.
기대하고 예측했던 바와 다른 결정을 아이가 하려 할 때, 직선 주로에서 갑자기 핸들을 꺾을 때, 나라면 이유를 묻지도 않고 아이에게 그리 하라 말해줄 수 있을까. 백번 승낙할 참이었다 한들, 순간의 궁금함조차 내려놓을 수 있을까. 본인의 결정을 본인이 더 오래 했을 것이라는 판단을, 왜냐는 질문이 필요 없다는 생각을 곧장 할 수 있을까.
사소하게 오래 품은 기억이 있다. 열서너 살 무렵, 한자를 배우고 싶었던 나는 부모님께 요청하여 방문 학습지를 했다. 스스로 원해서 시작한 것인데도, 선생님의 방문일은 마음의 준비 속도보다 늘 빨리 돌아왔고 숙제는 조금씩 밀려갔다. 그렇다고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조금 쉬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나.
밀린 종이와 선생님을 유난히도 마주하기 싫었던 어느 날, 문 앞 발소리와 현관 벨소리가 귀에 닿은 후에야 나는 잔뜩 쪼그라든 채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오늘만 안 하면 안 돼?
이미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선생님이 와 계신다. 고로 그때의 나는 엄마가 특별한 해결책을 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못마땅한 시선이나 찌푸린 미간 또한 예상하고 감수했을 것이다. '오늘은 늦었으니 군말 말고 그냥 하라' 더라도 딱히 반박하지 못한 채 책상 앞에 앉았을 것이다. 무심코 터져 나온 기침처럼, 속내를 뱉어냈을 뿐이다.
그런데 엄마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라 그럼" 하곤 문을 열어, "선생님, 정말 죄송한데 오늘 ㅇㅇ가 몸이 안 좋아서 도저히 수업을 못 할 것 같네요. 너무 늦게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오늘 교재만 받고 다음에 수업해도 될까요" 는 식으로 죄송함을 전하고 선생님을 돌려보냈다.
그날 나는 "왜 하기 싫냐"는 말을 듣지 않았다. 혼이 나지도 않았다. 거실로 돌아온 엄마는 하던 일을 마저 했고, 어안이 벙벙했던 내 마음에는 이내 작은 공간이 들어섰다. 엄마가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준 것, 정말 별 일 아닌 듯 대해준 것, (지금 보면 저엉-말 별 일 아니다) 그리고 내 편에 서서 거짓말의 공범이 되어준 것, 이것들이 참 좋았다. 고마웠다. 그리고 다음 수업부터 나는 처음의 마음 그대로, 언제 그랬냐는 듯 기꺼이 다시 한자를 배웠다. 스스로 결정한 일탈에 대한 책임은 바로 나 자신이 졌다.
(어린 시절 나의 엄마가 늘 수용적인 태도였냐 하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 분명 엄마도 지금의 나처럼 때때로 육아에 지쳐 더 크게 화를 낼 때도 있었을 것이며, 엄한 훈육도 잔소리도 물론 하셨다. 그래서 내가 이 일을 기억한 건가 혹시.)
지금의 나라면? "어휴, 그걸 지금 말하면 어쩌라는 거야. 네가 하고 싶어서 한 거잖아. 선생님이 바로 코 앞에 있는데 이게 말이야 방귀야!" 하는 소리가 자동재생된다. 으, 정말 별로다.
가끔 아이와 부닥치는 일이 생길 때, 조금만 숨 돌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외로 납득되는 이유가 있다.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 보면 엉뚱함에 웃음이 날지언정 “어, 정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소리가 절로 나온다. 고작 여섯 살인데도 내가 굳이 바로잡으려 들지 않았어도 되는 것들이 꽤 많다.
물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 위험한 것, 더러운 것,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문제들에도 나는 자주 ‘No’를 외치지 않는가. 단순히 엄마인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육아 만병의 근원인 체력과 여유의 문제), 그냥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의 모호한 오판으로, 너는 늘 엄마 말 안 듣고 싫다고 하더라? 는 식의 지나친 일반화로, 어른인 내 말이 맞다는 아집으로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떼는 그러면 안 됐어) 말이다.
함께 하는 시간 속 부모의 대응 방식이야말로, 삶에 닥쳐올 크고 작은 수많은 문제들을 아이 스스로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지침이 되겠지. 그렇다면 (쉽지 않겠지만) 잘 들어서 진심을 읽고,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이상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Yes' 해 봐야지. 언제나 너를 믿고 있다는 것과, 이런 일은 너 스스로 결정해도 되는 문제라는 것을 (책임이 따른다는 것 또한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긴 말 없이 전해주어야지.
그럴 수 있는 내가 되고자, 그 마음을 잊지 않고자, 잘 안 될 때 되새기고자 여기 이곳에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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