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호구다!
음악프로그램을 해본 적 없는 작가 후배가 SOS전화를 했다. 특집 쇼를 하게 됐는데, 음향팀에서 이런 요청을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상황을 들어보니, 헤드라이너로 (갠적으로 내가 아주 좋아하는) 밴드가 무대에 서게 됐는데, 오프닝 공연에 무명의 지역 밴드와 악기를 공유하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뮤직 페스티벌이나 쇼에서 아주 흔한 일이다. 보통 쇼나 공연에서는 출연팀들이 요청하는 악기를 악기팀이 조율해서, 공통의 악기를 출연한 모든 팀이 쓰게 되는데, (혹은 팀 별로 악기를 별도로 세팅해주기도 함) 팀 별로 악기 세팅값이 다르기 때문에 음향팀과 악기팀에서 리허설을 하면서 세팅값을 체크해 놓는다.
후배가 하는 쇼에서는 오프닝 로컬 밴드가 무대를 하고 최종 헤드라이너가 무대에 서는 순서인데, 오프닝 밴드가 무대에 선 후에 악기 세팅값이 달라질 수 있으니 헤드라이너 팀에게 양해를 구해달라는 얘기였다.
"응????? 이게 무슨 소리지?" 당연히 팀별로 악기 세팅값이 다르니 무대에 오르는 팀마다 리허설 때 체크해 놓은 상태로 다시 세팅을 하면 그뿐인데, 앞 팀이 한 악기 세팅 값으로 다른 팀이 또 하라는 말일까?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서, 그게 무슨 말이야? 하고 물으니 후배 역시나,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보통 공연을 하면 각 팀별로 악기 세팅을 따로 하지 않고, 한 번 해놓은 걸로 다 하냐면서 확인차 전화를 했다고 한다.
"당연히 잘못된 거지. 그쪽 상황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리허설 안 해? 음향팀 없어?"라고 물었고, 음향팀도 있고, 리허설도 하는데, 저런 말을 했단다. 그러고는 그 스탭이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헤드라이너 팀이 예민해서요, 악기 세팅이 잘못되면 좀 언짢아하거든요. 말씀 좀 잘 전해주세요"
세상에. 이런 기적의 화법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헤드라이너 밴드가 예민하고 까다롭기만 한 팀이 되어버려 기분이 언짢았다. 후배에게 나는 그쪽 시스템은 잘 모르지만, 일반적으로는 악기를 공유하는 건 맞고, 팀별 사운드 세팅값은 리허설 때 대부분 조율하기 때문에 그건 음향 악기팀 소관이고, 양해를 구하더라도 그건 작가의 일이 아닌 듯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가수들이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까다로운 것은 존중받아야 할 지점이 아닐까? 무대와 상관없는 것들을 트집 잡아 (이를테면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날씨나 행사에서 피하고 싶은 의전 등) 까다롭게 굴면 험담을 할 만 하지만, 공연을 위해서 섬세하게 맞춰가는 부분을 그리 지적하니, 시스템을 모르는 후배 작가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인 줄 알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겠지? 하긴, 나는 음방과 쇼의 시스템을 모르던 한 때에는 음향팀의 어이없는 항변에 가수들이 모두 청각장애인 줄 알았던 적도 있었다. 어떻게 청력을 상실했는데 노래를 저리 잘할까 감탄했던 그때가 새록새록 생각나는 날이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