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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나뜨 Oct 20. 2024

레벨 012

스토리퀘스트- 지옥의 계 (기본-Lv. 10)

  방랑상인, 마치 어딘가를 떠돌 것처럼 생긴 그 이름처럼 방랑상인은 세계의 전 대륙을 돌아다니며 얻은 물건을 파는 떠돌이 상인이다. 파인더즈에서는 태초의 두 대륙인 하카루나와 하카로네만 언급되지만, 방랑상인이 파는 물건은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는 특별한 아이템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본다면 앞선 두 대륙 말고도 파인더즈의 세계는 더 거대한 세계임이 틀림없었다.

  유저들이 방랑상인을 찾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순전히 수집 아이템을 모으고자 하는 욕구, 다르게 말하면 도감을 채우는 사람들이 있고,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아이템을 사는 유저들, 마지막으로 스토리에 진심인 사람들이 있다.

  하카루나와 하카로네 대륙에는 섬도 포함되는데, 방랑상인의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크랑푸르타 열도와 거인의 천공열도, 피치렌트 천공섬, 오드아이 무덤, 검은 연기 부락, 미첼로의 저주받은 검은 숲이 있다. 이곳들은 모두 메인 시나리오에 등장하지 않는 별개의 지역이다.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지만 두 대륙을 직접 돌아다니며 탐험하는 유저들의 이야기로는 못해도 십만 개 이상의 섬이 있다고 한다. 단순히 복사 붙여 넣기의 형태가 아니라 각각의 이야기가 있고, 각각의 생활방식이 있는 그런 섬들이라고 한다. 하다못해 접근하기 힘든 거인의 천공열도에는 그들만의 언어가 따로 있을 정도다. 그렇듯 방랑상인이 판매하는 아이템들은 파인더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가 떠돌아다닌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이템이 너무 많아서 아공간주머니도 부족했는지 아예 거대한 성을 개조해 끌고 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만나기도 어렵고, 찾기도 힘든 그런 존재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가 입을 열면 그 자리가 연극 무대가 되고, 그가 앉으면 길고 긴 장터가 되고, 그에게 질문을 한다면 모르는 것이 없는 수준이다. 하나를 알면 진짜 백을 아는 그런 캐릭터다.

  "심지어 그는 외부의 일도 알고 있다지? 신기해... 이 세상은."

  가상의 만들어진 생태계 속 작은 NPC(Non-Player Character, 비플레이어 캐릭터) 하나가 어떻게 현실의 일들까지 알고 있는지는 게임사도 설명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소문이 진짜일지도 모르겠다.


  파인더즈 속 구현된 the CITY의 모습은 100 퍼센트 완벽하게 구현되었다. 쓰레기 등의 아이템들이 나뒹구거나, 저녁 늦은 밤의 길고 좁은 어두운 골목길 같이 스산한 분위기는 아니지만, 건물 등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모든 것은 완벽 구현되어 있다. 나는 코어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코어 아파트 단지는 거주 B구역에 위치해 있다. 1단지부터 12단지까지 모여 있고, 단지마다 경계가 따로 존재하지 않아 멀리서 보면 마치 하나의 성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원래는 15차까지 3차례의 공사를 더 거쳐 15단지라는 거대한 아파트 대단지의 계획이었으나 건설사인 원더코어가 파인더즈 세계에 홍보 목적으로 땅을 사들이면서 13차부터 15차까지의 아파트 건설기획은 아파트 부지를 팔아 없애버렸다고 한다. 길고 긴 12개의 아파트 대단지를 빠져나오면 그제야 방랑상인을 만나러 갈 수 있다. 

  방랑상인의 위치는 다른 파인더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지금에서야 그의 도움이 커진 것이지 처음에는 중요하지 않았기에 지도에 NPC의 위치가 표시되지는 않는다. 그냥 돌아다니는 파인더들에게 묻고 물어서 찾는 것뿐이다. 그리고 퀘스트 진행에 있어서 방랑상인의 도움이 절대적인 것도 아니라서 빠른 진행을 원한다면 방랑상인의 도움이 약간 필요한 것뿐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지도 위 표시되는 것까지는 유저들도 원하지는 않는다. 이미 세계지도에 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 복잡하기 때문이다.

  내가 세계지도를 켠 이유는 바로 그 점 때문이다. 방랑상인을 찾고 찾아가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터, 그렇다면 스토리퀘스트 말고도 시간에 따라 운영되는 스케줄퀘스트들이 있기 때문이다. 


  the CITY는 현실의 그 모습 그대로 완벽한 원 모양을 하고 있었다. 도시가 있는 위치는 하카루나 대륙의 현대구역이다. 현대구역은 중세풍의 다음 지역과 달리 마나, 마력이 아닌 마도공학의 지나친 발전으로 인해 기계화되었다는 설정이다. 너무 발전한 나머지 따라오지 못하고 도태된 이전 시대의 잔여물은 지하로 숨어 들어가고, 갑작스러운 기계화를 받아들여 파고든 새 시대의 신인류는 지상에 남게 되었다. 어쩌면 the CITY의 현실보다 더 미래적이고 차가워진 사회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또 이론으로만 가능했던 것들과 상상 속으로만 존재했던 것들도 실현되는 가상의 세계이기에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어쨌든, 오늘은 월드퀘스트와 토벌퀘스트가 있는 날이다. 월드퀘스트는 하나의 지역에 있는 모든 유저가 강제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초거대 규모의 퀘스트이고, 토벌퀘스트는 유저의 원함에 따라 참여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보상의 큰 의미는 없어서 레벨을 올리려는 경험치를 위한 퀘스트다. 그러니까 방랑상인을 찾아 스토리퀘스트를 진행해도 나는 오늘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어차피 중세풍의 다음 구역에서도 그 지역의 월드퀘스트가 등장할 텐데, 굳이 현대구역에서 퀘스트를 진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제 진짜로 파인더즈의 세상으로 들어가 보자.


  나는 모든 창을 닫아두고 방문 손잡이를 잡는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을 마주하게 될지, 파인더의 이야기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

  천천히 손잡이를 꺾어 내린다. 달칵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천천히 밖으로 나간다.


  이게 게임 속 세상이라고는 믿기 않을 정도의 몰입감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모습이다. 아파트의 변함없는 모습 그대로, 퀴퀴한 복도 그대로, 그 냄새까지도 복제된 이 세상은 접속할 때마다 참으로 놀랍다.


  엘리베이터는 공사 중이다. 현실에서도 공사 중이었다. 이런 것 까지도 구현이 되는 거였다니. 진짜로 그 소문이 맞는 걸까? CIS 국제연구센터가 게임을 미끼로 도시민을 감시하고 있다는 소문이. 옛날에는 CIS가 우리의 구원자가 되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우리에게 평안한 삶을 가져다준 건 맞지만, 들려오는 검은 뒷이야기는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천천히 계단을 걸어 내려간다. 다른 층에 거주하던 사람들도 이 슬픈 소식을 보고, 계단을 타고 내려가고 있었다. 나도 그 행렬에 들어갔다.


발견가능 모험구역-현대/ 코어 11차 아파트단지 (평화)

  작은 안내문구가 떠오른다. 지금 접근한 곳이 어딘지를 알려주는 안내문이다. 발견 가능한 모험지역 중 나는 지금 현대구역의 코어 11차 아파트 단지에 있다. 다음 지역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기계화로 완벽 통제되는 도시 사회를 보여주듯 위험도 0퍼센트의 평화상태 지역이다. 유저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거나 필요에 의한 1대 1 대전이 가능한 지역들도 있다. 하지만 현대구역은 그렇지 않다는 것. 피 터지며 싸울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함께 내려온 사람들도 각자의 할 일을 향해 가고, 내 앞으로 작은 공원이 보인다. 아이들이 뛰놀며 동심을 찾고, 어른들은 햇빛을 피하려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서로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차갑고 냉랭한 사회 속에도 당연 낭만 있는 모습이었다. 

  '방랑상인... 어디에 있을까.'

  일단 스토리퀘스트는 모든 유저가 필수적으로 행해야 하는 퀘스트다. 하지 않으면 레벨을 올릴 수도 없고, 컨텐츠의 이용은 가능하나 보상은 받을 수 없다. 적정 레벨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보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막상 받아도 사용할 수 없는 보상이 태반일 것이다.


> [하이스트]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시야 오른쪽에 알림 로고가 들어오며 메시지가 왔다는 안내를 해준다.

  '찾았나?'

  채팅 창으로 들어간다.

[하이스트]  - 우든 씨, 어제 보내준 직업아이템-[천사의 깃털] 고마워요.


  내 닉네임은 [우든]이다.


[우든]  - 저야말로 고맙죠.

[하이스트]  - ㅎ

[하이스트]  - 부탁하신 방랑상인 좌표예요. #골든타워 워프터널 근처에 있어요

[우든]  - 다행히 근처네요.

[하이스트]  - 근데 조심하세요 비식별개체가 돌아다니고 있어서

[우든]  - 

[우든]  - 일단 정보 감사해요. 오늘 토벌 가시는 거죠?

[하이스트]  - 그렇지 않을까요? 공대장님이 아직 접속을 안 하셔서 잘 모르겠네요

[하이스트]  - 물어보고 연락드릴까요?

[우든]  - 

[하이스트]  -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수고하세요


  어제 이 분께 아이템을 하나 보내드렸다. 서로 얼굴도 모르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이지만 직업 각성을 위해 아이템이 필요하다는 월드채팅을 보고 아이템을 보내드리는 대신, 현대구역에서 방랑상인을 보면 좌표를 바로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골든타워는 현실에서 CIS 국제연구센터 산하의 실험기관인 허브에어가 자리한 곳이다. 허브에어는 실험으로 바쁠 테니 게임에 신경 쓸 일이 없다. 그렇기에 아마도 다른 기업이 가상의 세계에서 그 자리를 꿰찬 모양이다. 더 크고, 더 높고, 아름다운 건물로 말이다.


  "거기까지 꽤 거리가 있지만, 아파트 근처 워프터널을 타고 가면 되겠지."

  워프터널은 거대하고 방대한 세계에서 아주 필수적인 기능이다. 이곳에서 저쪽으로 마치 순간이동하는 듯한 워프 기능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곳으로 워프 할 수는 없다. 워프터널은 워프터널끼리의 이동을 돕기에 지정된 워프터널에서 지정된 워프터널로만 이동할 수 있다.

  그래도 골든타워 워프터널 근처라고 했으니 골든타워까지 찾아갈 필요가 없기에 다행이었다.


코어 9차 아파트단지 [ 워프터널 ]

  코어 아파트단지에는 총 3개의 워프터널이 위치해 있다. 13차가 완공될 예정이었던 부지에 하나, 1차 단지 후문에 하나, 마지막으로 내가 있는 9차 단지에 하나다. 이름만 9차 단지일 뿐, 실제 위치는 1차부터 9차까지의 아파트단지가 하나의 워프터널을 동그랗게 싸고 있는 모습이다. 

  워프터널의 기능은 아주 용이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혼력이 소모된다. 파인더즈의 세계에서는 레벨이 3가지로 나뉜다. 가장 기초적이고 얻기 쉬운 기본레벨, 가장 희귀하고 얻기 어려운 영혼레벨, 마지막으로 플레이 중인 캐릭터의 직업레벨이다. 기본레벨은 그냥 게임을 즐기기만 하면 자동으로 쌓이고 오른다. 직업레벨도 마찬가지. 하지만 영혼레벨은 특수한 업적을 달성했을 때와 스토리퀘스트를 진행할 때 아주 조금씩 오른다. 또 직업각성이나 환생할 때 굉장히 많은 영혼력이 소모되기에 조건조차 알 수 없는 특수 업적보다는 스토리퀘스트가 필수 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거리에 비례해 영혼력이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그냥 워프터널 이용금이 차감되는 것뿐이다.

  워프터널은 진주 같은 흰색의 무거운 공이 금속의 원판의 중앙 바닥에 박혀 있는 형태다. 이용자가 금속의 원판에 들어갔을 때 그 공이 떠오르며 지도를 펼친다. 그 지도에서 가고자 하는 곳의 워프터널을 터치하면 된다. 워프 한다는 안내문과 함께 영혼력이 소모되며 워프 된다. 아주 간단한 절차다.

  나에게도 흰색의 공이 떠오르며 지도를 펼쳐준다. 골든타워 근처의 워프터널.


  "어? 왜 클릭이 안되지?"

  분명 워프터널을 나타내는 아이콘이다. 골든타워 근처 워프터널이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선택되지 않는다. 

: 현재 이용 불가능한 워프터널입니다. 

  "예?"

: 다수의 미인증 식별개체가 감지되어 현재는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지금 한 시가 급한데, 우리는 파인더잖아. 여긴 게임, 우린 스킬을 갖고 있어. 거기에서 알아서 처리하고 있겠지. 내가 가서 도움이 되면 좋고, 어?"

: 중앙정부의 절차에 따라 근방의 워프터널로 우회하겠습니다. 목적지- 플로우 가로수길 [ 워프터널 ]

  중앙정부는 현대구역의 도시를 운영하는 곳이다. 그들도 뭘 하겠다고 절차절차하며 통제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미 파인더즈의 세계는 유저의 등장으로 박살 났다고. 신을 부활시키겠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데, 그들이 뭘 할 수 있겠냐고.

  "됐고, 골든타워 워프터널로."

  취소 버튼과 원래 가려고 한 워프터널을 번갈아 연타한다.

: 인식 불가능한 접근이 감지되었습니다. 벌금을 부과합니다. 이용자 확인 중...

  "아, 빨리!"

: 인식 불가능한 접근이 감지되었습니다... ... 확인 중...


  타닥, 타닥타닥.

  그 순간, 골든타워 워프터널이 선택된다.

  "된 건가?"

: 인식...!#$! [오류코드: ========] 목적지- 골든타워 [ 워프터널 ], 워프를 준비합니다.

  워프터널의 금속 원판 밑에서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의 연기가 풍겨 올라온다. 영혼력의 소모를 알리는 안내와 함께 내 몸이 흩어진다.

  반짝!


  골든타워 워프터널로 이동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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