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고 싶은 당신에게-
쓰고는 싶은데 무슨 내용을 써야 할지 막막하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텅 빈 백지, 깜박이는 커서의 압박은 때로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몇 자 끄적여 보지만 신통치 않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슬슬 짜증이 올라온다. 때마침 요즘 한창 인기 가도를 달리는 드라마가 막 시작되면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TV 앞에 코를 박고 열심히 화면만 응시하게 된다. 힘든 일보다는 쉽고 재밌는 일에 마음이 쏠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나중에 쓰면 되지. 시간은 많아” “잠깐만 머리를 식히고 다시 시작하면 더 잘 써질 거야” ‘글을 안 써도 되는 이유’로 한 꼭지의 글이 채워질 정도로 다양한 이유로 스스로를 합리화 한 뒤 슬그머니 책상에서 물러나고 난다. 결국 야심 차게 시작한 글쓰기 프로젝트는 오늘도 허사로 돌아간다.
초등학교 다닐 때 가장 고역이었던 것은 일기 쓰기였다. 방학이면 한 달 치의 일기를 한꺼번에 써야 했던 중노동에 혹사당했던 사람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호기심 천국인 아이들의 세상일지라도 매일 재미있고 환상적인 일이 빵빵 터지는 것은 아니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나는 오늘로~~’로 시작해서 ‘참 재미있었다’로 끝내기 일쑤였던 이유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글감 찾기란 하루하루가 새로운 어린아이에게도 여간 고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출처: 프리큐레이션
어른이 되어도 삶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그중에는 당장 글로 옮겨 적고 싶을 만큼 드라마틱한 사건도 있지만 대부분의 일상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출근하고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한 뒤 때가 되면 퇴근을 한다. 밀린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 살피다 보면 어느새 하루의 끝에 다다르게 된다.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누구나 평온한 일상, 큰 변화 없는 생활을 바라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는 순간, 무미건조한 내 삶에 실망감이 밀려온다. 무탈한 삶에 감사해야 마땅하지만 글감을 찾다 보면 평온한 삶이 반갑지만은 않다.
스치는 바람 한 줄기. 막 고개를 내민 새싹 하나에도 시심(詩心)이 동해 정갈한 시 한 수, 아름다운 에세이 한편을 뚝딱 쓸 수 있는 필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우리들은 사정이 옹색하다. 그러다 보면 일 년에 한두 번 쓸까 말까, 평생을 써봐야 고작 몇 편이 되지 않는 빈약한 작품세계만이 남게 된다.
글을 쓰고자 처음 마음먹었을 때 필자도 글감 부족으로 고민을 했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쓸거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요즘 내가 주로 활용하는 방법은 메모 노트다. 핸드폰이나 아이패드의 메모장을 이용해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간단하게 메모해 둔다. 한 문장일 때도 있고 한 단어일 때도 있지만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잡아 두기 위해 그때그때 바로 메모를 한다. 나중에 글을 쓸 때 차곡차곡 모아둔 이 메모 부스러기들이 아주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다.
모아둔 메모는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메모장을 뒤적이다가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여’라는 메모가 눈에 들어온다. 아버지와 관련된 감정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정서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젊은 아버지든, 나이 들어 노쇠한 모습의 아버지든 간에 상관없다. 기억의 창고에서 불러낸 아버지와 나만의 속 깊은 대화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하지 못한 말, 하고 싶었던 말이 정제된 글로 재탄생해서 아버지와의 끈끈한 연결고리가 되어 줄지도 모른다.
이 외에도 글감을 찾는 방법이 또 있다. 책과 영화를 보고 난 감상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말고 리뷰를 써 보는 것이다. 리뷰가 좋은 이유는 책과 영화는 그 특성상, 스토리가 중요하므로 글쓰기의 기본 요소인 요약하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길러준다는 것이다. 덧붙여 자신만의 느낌이나 기억에 남는 장면, 나아가 날카로운 통찰까지 더해지면 리뷰를 넘어 한 편의 자기 성찰 에세이가 되기도 하고 사회비평으로 읽힐 수도 있다.
일상에서 있었던 일을 그때그때 기록해 두면 이 또한 좋은 글감이 된다. 직장 상사 때문에 화났던 일, 아이들이나 아내 혹은 남편으로 인에 속 끓였던 일 등도 모두 글쓰기의 재료다. 일상의 사건을 글로 옮기게 되면 억눌린 감정의 정화작업이 일어나기도 하고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던 옹졸함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여유가 생겨나기도 한다. 일석이조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곰삭은 삶의 경험을 지금 당장 글로 옮겨보자. 사람 사는 이야기만 한 좋은 글감은 없다.
여행의 경험도 놓치지 말자.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미지의 세상, 낯선 사람들의 삶 속으로 건너가는 것이다. 여행자의 눈에 비친 세상과 감정의 미세한 결을 글 속에 담아보자.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지나온 장소, 당황스러웠던 경험, 등등, 여행지에서는 글감이 넘쳐난다. 하루를 마감하는 마음으로 간단하게 메모 형식으로 남겨 둔 후 일상에 복귀한 뒤 찬찬히 메모장을 보며 여행기를 완성해 보자.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내면의 여행이라는 또 하나의 여행으로 떠나게 된다.
시집이나 에세이의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문장을 고른 후 이어서 글을 써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원저자의 글과는 전혀 다른 자기만의 색깔이 입혀진 글이 완성된다. 술술 잘 써지면 다행이지만 중간에 막히거나 생각만큼 매끄럽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거나 다른 문장을 골라서 쓰면 된다. 이 외에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느낌을 적어본다든가 최근에 가장 강렬하게 느꼈던 감정, 어린 시절 최초의 기억, 좌충우돌 사춘기 때의 사건사고 등등 모든 것이 글쓰기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이디어는 넘쳐난다.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한 덕분에 글을 쓸 시간은 부족할지라도 소재 부족으로 시달리는 일은 이제 없어졌다. 자신만의 방법을 개발해서 ‘글쓰기’라는 새로운 여정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최영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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