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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 Jul 16. 2019

네가 와서 나는 행복해

흰둥이는 14살


봄부터 흰둥이가 아팠다.

걱정되었던 부분은 잘 넘겼지만, 나이를 먹으니 여기저기 조금씩 아프기 시작한다. 나름 관리를 한다고 했지만 세월의 흐름에 어쩔 수 없는 위기가 찾아오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올 줄은 몰랐다. 여전히 아기 같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의 흰둥이는 이제 14살 반을 훌쩍 지나고 있다.

흰둥이가 아프고 나니 여름이 오는 게 두려웠다.  올여름은 또 얼마나 더우려나? 조바심과 걱정에 더위를 식힐 쿨~ 하다는 물건은 죄다 검색해 본다.


쿨방석은 꼭 필요하니까 장바구니에,

산책에 지치면 안 되니까 쿨조끼도 장바구니로,

맞다. 여름엔 물도 금방 미지근해지니까 냉기 유지되는 쿨 그릇도 필요하겠다,

비가 와서 못 나가면 집에서 놀아야 하는데 거실이랑 방에 쿨매트를 깔면 좀 시원할까, 이것도 저것도 장바구니로

.........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넣고 보니 가격이 상당했다.

다시 꼭 필요한 것들로 간추려서 장바구니에 담았지만 금액은 20만 원이 훌쩍 넘었다.

그러다 문득 차라리 이 돈이면 하루 종일 에어컨을 돌리는 게 이득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쿨하다고 광고하는 방석이나 매트를 다고 에어컨을 끄고 살 수 있는 여름은 아니다. 결국 과감히 장바구니에 물건을 모두 삭제해버렸다.



작년 여름에 겪었던 40도를 넘나 드는 끝없는 폭염에 겁이 났지만 애써 담담한 척,

'그래 까짓 거 여름 오라고 해, 내겐 에어컨이 있어. 설마 전기세가 30~40만 원이야 나오겠어.'

사실 그렇게 나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에어컨을 청소하며 점점 거세게 다가오는 여름을 맞이하기로 했다.


그리7월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가장 더운 여름이 7,8월 60일이라고 가정하면 이제 1/4이 지난 것이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큰 더위는 없었다. 가끔 폭염재난 문자가 왔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해 산책도 무리 없이 하고 있다.

물론 나보다 더위를 많이 타는 흰둥이에겐 여전히 더운 날씨겠지만, 집에서 큰일을 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산책을 나간다. 급하면 참지 말고 집에서 '응아'를 하라고 매번 말해주지만 이것만큼은 자기 고집을 꺽지 않는다.


누나는 집에서 응아 싸는 흰둥이가
너~~ 무 보고 싶은데, 소원이다. 응?
화장실이 싫으면 그냥 네 맘대로 아무 데나 싸.
괜찮아, 진짜야 괜찮아.


진심이야?
정말 아무 데나 싸도 돼?
산책 간다며 병원에 갔던 거처럼

또 거짓말이지?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가는 일이 고된지 그사이 몸무게가 1kg이나 빠졌다. (나 말고 흰둥이가).

먹는 것도 잘 먹고 소화도 잘 시키는데 살이 자꾸만 빠진다. 흰둥이 지 딴에도 먹고 나아야겠는지 넙죽넙죽 쓴 약을 잘 받아먹는다. 간혹 약이 쓴 지 몸을 바들바들 떨지만 약을 준비하면 예쁘게도 앉아 기다릴 줄도 안다. 지난주엔 그 모습이 어찌나 짠한지 약을 먹이다 말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되도록이면 흰둥이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를 썼는데 나도 모르게 왈칵하고 말았다.


우리의 시간이 다르다는 걸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마음이 받아들이는 것은 너와 나의 시간의 속도만큼이나 접점을 찾기 힘들다.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감정을 이성으로 아무리 다독여도 붙잡을 수가 없다. 어느 날은 요동치는 그 마음이 너를 두고 저 혼자 미친 듯 곤두박질을 다. 상상하기 싫은 것들이 점점 다가오는 현실은 어쩜 이렇게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까.


가슴 한가운데 호수가 생겨 눈물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기분이다. 언젠가 이게 차고 넘쳐흘러버리면 그때는 어쩌지 걱정이 될 만큼. 한여름의 집중호우처럼 가슴에 눈물이 날로만 차오른다. 그러다 마음이 어쩔 수 없는 날엔 샤워기를 틀고 그 아래서 꺼이꺼이 울었다.


나의 삶에서 흰둥이를 빼 버리면 뭐가 남을까? 그때에 나는 어떻게 버텨야 할까?


아픈 강아지를 두고 내 걱정뿐이라는 게 미안하고 미안해서 차마 흰둥이 앞에선 눈물을 흘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애써 참고 있었는데 쓴 약에 몸을 바들 떨면서도 싫은 내색 없이 받아먹는 모습에 눈물이 쏟아졌다.


인간인 나는 생각과 감정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울다가 웃다가 그런 게 당연한데 너희는 좀 담백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그때가 오면 "나 먼저 갈게, 잘 있어, 좀 잘 살아봐, 알겠지? 그리고 즐거웠고 행복했다. 안녕~."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너무 쿨해서 울고 있는 내 모습이 무안해지게 말이다.


아프지 않게 보살펴 주는 일이 이렇게나 힘든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사람이 개를 기르는 것보다 개가 사람을 성장시키는 게 더 크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마음의 호수에 눈물 수위가 점점 높아지지만 섣불리 울음을 터트렸다간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힘껏 참고 있다. 또 그래야만 한다. 흰둥이는 내 감정이 곧 자신의 감정인 양, 내가 웃으면 한없이 행복하고. 내가 슬프면 한없이 우울하기 때문이다.


개라는 동물이 원래 그런 건지, 자신의 감정은 1도 없는 것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나의 감정에 기분이 좌우된다. 세상에 이런 바보 같은 동물이 또 있을까. 내가 울든지 말든지 짜증을 내든지 성질에 뻗쳐 난리법석을 떨던지 개는 마냥 귀엽기만 하면 되는데. 너희들은 그냥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라고 이 녀석들아!


엄마 뱃속에서부터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일까, 개는 언제나 이런 얼굴로 우리를 바라본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그 모든 것에 당신이 있어요.
내 눈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바로 지금 당신이랍니다.



흰둥아, 누나한테 와줘서 정말 고마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한테 와줘서 정말 정말 고맙고 사랑해.

흰둥아, 그러니까 누나한테 숨기거나 미안해하거나 눈치 보거나 그런 건 하지 마.

짜증 부려도 되고, 말썽 부려도 괜찮아.

예전처럼 집에 들어왔을 때 현관 앞에서 꼬리 흔들고 미리 나와 있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을게.

불러도 한 번에 달려오지 않아도 돼, 두 번 세 번 내가 좀 더 크게 너를 부를게.

인형들이 가지런하게 놓여있는 걸 아쉬워하지 않을게.

하루에도 몇 번이나 물고 던지고 놀던 삑삑이 소리가 왜 안 나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을게.

그냥 지금처럼만 내 곁에 있어줘.

하지만 그것이 아파도 참고 버텨달라는 아니야.

넌 이미 최선을 다하있고 최고의 흰둥이니까 언제든 네 맘대로 해도 섭섭해하지 않을게.

그리움은 언제나 나의 몫이야, 혹시 모를 너의 몫까지 내가 다 그리워할 테니까

넌 걱정 말고 네가 좋은 대로 하면 돼.

누나가 너에게 바라는 건 오직 그것뿐이야.

나의 강아지, 나의 천사, 오늘도 해맑게 웃어줘서 정말 고마워.

우리 내일도 마음껏 예뻐하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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