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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 Nov 05. 2019

개를 키우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14살 흰둥이


연이은 세 개의 태풍에 시작도 모르게 어느새 가을이 냉큼 와버렸다.

도둑맞은 계절은 아쉬움에 풀풀 대는 발걸음을 내심 모른 채하며 흘러가기 바쁘다.  맑고 높은 하늘과 서늘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가는 가을을 놓칠세라 뿌르르 따라간다. 아쉬운 마음처럼 가을의 노을은 매일매일 처연하리만큼 곱기만 하다.


흰둥이는 그래도 가을이 좋단다.

여름 폭염에 마음껏 할 수 없었던 산책을 이제는 분홍색 혀가 길게 늘어지도록 걷고 또 걷는다. 덕분에 목덜미 털은 온통 침범벅이지만 얼굴엔 미소가 한가득이다. 작은 발로 알록달록 낙엽 위를 총총총 걸으면 바스락 거리는 소리마저 경쾌하다. 신나게 가을이 내려앉은 길을 걷고 돌아오면 네 개의 작은 발에서는 낙엽 냄새가 더해진 고소함이 진동한다. 참 행복한 순간이다.


그날도 우리는 아쉬움이 가득한 가을 산책 중이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집을 나선 지 불과 10분도 안돼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흰둥이의 배변을 치우고 막 일어나고 있었고 흰둥이는 여느 때처럼 공원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어어어-" 하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고 위를 올려다보는 순간 커다란 대형견 3마리가 계단을 내려와 흰둥이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사냥개처럼 개들은 컹컹- 킁킁- 대며 흰둥이를 마구잡이고 물고 밟고 이리저리 굴려댔다. 현실 같지 않은 순간이었다.


'꿈일 거야. 이건 꿈이어야 해.'


흰둥이 하네스와 연결된 리드 줄을 내쪽으로 힘껏 당겼지만 나보다 큰 개 3마리의 힘을 당해내기란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기억에도 남지 않을 만큼 일 순간에 손에서 리드 줄이 빠져나갔다. 겁에 질린 내가 먼저 놓았는지 개들의 힘에 놓쳐버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대로 서서 소리를 지르고 발을 동동거렸다.


대형견 3마리의 공격에서 흰둥이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온 머릿속을 해 집고 다녔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무섭고 두려웠다. 나는 공포라는 또 다른 맹견에 물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체 바보처럼 시뻘건 소리만 철철 내지르고 있었다.


'정신 차려! 이러다 흰둥이가 죽으면 그때도 울고만 있을 거야!'


그때 뒤로 족구장이 보였다. 나는 대여섯 걸음 뒤에 있는 족구장 문을 열었다. 문을 여는 사이 견주가 개들을 끌고 자리를 피해 주면 흰둥이를 안고 안으로 피해 있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족구장 문을 열고도 개들은 흰둥이를 물고 늘어졌다. 주인의 제지에도 절대 입에서 놓아주지 않는 커다란 개들에게 내 작은 흰둥이는 터그 장난감처럼 이리저리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상대 견주가 작은 흰둥이를 들어 안았다.


개들의 집요한 공격에 다친 흰둥이는 낯선 이 가 자신을 들어 올리니 겁에 질렸을 거다.

평화로웠던 산책에 일어난 돌발상황이었고, 자신보다 4~5배 큰 개 3마리에게 공격이었으니 흰둥이가 받았을 공포감을 어쩌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순간 처음 본 사람이 자신을 번쩍 안아 들면 누구라도 위해를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흰둥이는 본능적인 방어 수단으로 아저씨 손을 물어버리고 말았다.

손을 물린 아저씨는 당장 개를 데리고 가라며 소리쳤다.


그러나 여전히 흥분해 있던 개들이 주인을 둘러싸고 있어 무슨 일이 또 벌어질지 알 수 없던 순간이었다. 흰둥이에게 아저씨가 그렇듯 저 개들에겐 내가 낯설 테니까.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벤치에 앉아계신 아주머니께 염치 불고하고 동영상을 찍어달라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 벌벌 떨며 아저씨께도 사정사정을 했다.


아저씨, 개 좀 어떻게 해보세요. 그래야 제가 뭘 하죠.
우리 강아지가 나이가 많아요. 제발요. 제발요. 아저씨.


아저씨가 자신의 개들을 몸으로 막고 흰둥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틈에 난 흰둥이를 안고 족구장 안에 몸을 숨겼다. 흰둥이의 몸을 살필 겨를 도 없이 곧 112에 신고를 했다.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이라....' 전화를 끊고 저장돼있던 인근 파출소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산책 중에 대형견 3마리가 공격을 해서 사고가 났어요. 빨리 와주세요.


선생님이 다치셨나요?


아니요. 저희 강아지랑 상대 견주가 다치셨어요.


119에 신고는 하셨나요. 아니면 저희가 신고하고 출동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빨리 와주세요.


그때부터 아저씨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왜 가만히 있었느냐. 당신 개를 챙겼어야지.
이거 지금 사람이 개에게 물린 사고예요.
내가 동맥이 물린 것 같은데 당신은 개를 버리고 도망쳤잖아요.


진정되지 않았다.

3주가 훨씬 지난 지금도 온몸이 떨리고 손이 차가워진다.

심장이 딱딱하게 굳어져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나도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았다. 주먹을 꽉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가만히 있었다고요?
막으려고 했는데 커다란 개 3마리가 달려들었고 내 손에서 우리 개를 끌고 갔잖아요.
특이체질이라서 약물 알레르기가 있어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라고 우리 강아지를 구하고 싶지 않았겠어요
아저씨 개가 우리 강아지를 먼저 물었잖아요.

우리 강아지도 지금 물리고 다쳤다고요.


흥분한 아저씨도 소리를 쳤다.


우리 개는 입마개에 목줄을 하고 있었는데 당신 개는 입마개도 목줄도 없잖아.
누가 더 잘못한 일인지 따져봅시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누구 잘못이 더 큰지 따져보자니, 이건 뭐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입마개 대상이 아니고요.
하네스를 차고 있었는데 개 3마리의 공격에 빠져버린 거잖아요.
저기 사고 현장에 떨어져 있는 건 개의 하네스가 아니면 뭐죠.


거짓말하지 말아요.
내가 목줄이 없는 걸 봤는데 무슨 소리냐.
우리 개는 입마개도 하고 있다.


입마개? 그 빠져버린 입마개요?
우리 강아지가 사정없이 물렸는데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나는 지금 당신 개한테 물렸어요.

사람이 다친 사고예요.
누구 잘못이 더 큰지, 경찰을 불러 보면 알겠지.


경찰 불렀어요.
본 사람도 있고, 하네스 차고 있는 거 공원 앞 cctv에 찍혔을 테니 확인해보세요.


아저씨는 진돗개 3마리와 함께 공원 등나무 벤치에 앉아 있었고 여전히 난 흰둥이와 족구장 안에서 갇혀있었다. 움직이지도 못한 체 내 발밑에 멍하니 앉아있는 흰둥이를 살펴보니 털 곳곳에 피가 묻어 있었고 물린 곳도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물리적인 시간은 겨우 몇 분이었겠지만 우리에게 까마득히 오랜 시간이었다.

마치 온 하루가 그 순간의 블랙홀로 몽땅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은 이름과 연락처 주민번호를 물었고 나는 주민번호가 또렷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정신이 빠져있었다.


산책 중에 개들끼리 시비가 붙었어요. 개들끼리!

갑자기 나타나니까 싸운 건데 아니 저 아가씬 자기 개는 구할 생각도 않고 도망갔어요.

우리 개들은 목줄도 하고 입마개도 다 하고 있는데 저 개는 입마개도 목줄도 없었어요.
내가 저 개를 우리 개들에게서 떼어내다 사람이 물린 거라고요.


10kg도 안 되는 흰둥이가 대략 30kg 전후일 대형견 3마리와 시비가 붙었다니.

개들끼리 눈이 마주쳐서 싸움이 난 거라니.

내가 맛있는 녀석들 유민상, 김준현, 문세윤을 상대로 먹방 배틀이 붙었다는 것보다 더 황망한 설명이었다.


아저씨!
어떻게 이 작은 개랑 그 큰 개 3마리랑 시비가 붙어서 싸움이 나죠?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돼요.


목줄이 없었잖아요. 목줄이-


하네스 차고 있었어요.


저거 다 거짓말입니다. 내가 풀어진 거 봤고 경찰 오기 전에 채운 거예요.


아저씨 개들이 공격하는 바람에 필사적으로 도망치다가 빠진 거잖아요.
만약 아저씨 주장처럼 우리 개가 목줄이 없었다면 도망쳤겠죠.
그렇게 일방적으로 공격받지 않았을 거 아니에요.

입마개요, 흥분하면 쉽게 빠져버리는 입마개가 무슨 소용이죠?


그럼 뭔 목줄은 그렇게 잘 빠져요. 하지도 않아 놓고 거짓말하지 마요.


그러니까 자꾸 어깃장 놓지 마시고 cctv 확인해보자고요.


아저씨는 말문이 막힐 때마다 목줄 타령을 했고, 내가 개를 구하지 않고 도망가 일이 커졌다고 했다.


감정이 격해져 각자의 주장만 하시니 한분 한분 다시 얘기를 해봅시다.

일단 아저씨가 먼저 얘기를 해보세요. 어떻게 된 일인지.


서로의 주장이 오고 가는 그때 구급대가 도착했다.

구조대원들은 곧장 아저씨에게로 다가갔다. 다친 상처를 확인해야 하는데 지금은 무리가 있으니 개를 안전한 곳으로 치워달라고 했다. 구급대원과 건장한 경찰들이 커다란 개들 앞에서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환장할 지경이었다.

아저씨는 개들을 집에 데려다 놓고 오겠다며 자리에 일어났다. 그들이 떠난 자리엔 구급대원들만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리고 경찰은 내게도 어떻게 된 일인지 다시 한번 설명을 해달라고 했다.


막 도착해 여기서 산책 중이었어요. 배변을 해서 그걸 처리하고 일어나는 순간 아저씨 소리가 나서 올려다보니 개들 3마리가 저희한테 달려들며 내려왔어요. 리드 줄을 잡고 있었고 아마 저희 강아지는 2~3계단쯤 올라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큰 개들 3마리가 일순간에 저희 강아지를 물었고 줄이 개들에게 휘감기면서 제 손에서 빠져나간 것 같아요.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하네스가 빠진 건지 기억은 안 나요. 목줄 진위 여부는 cctv를 확인해보세요. 누구 말이 맞는지.

입마개가 풀린 개가 우리 강아지를 먼저 물었어요. 나머지 두 마리도 공격을 했고요.

그리고 제가 자꾸 도망쳤다 하는데 특이 체질입니다.
약물 알레르기가 있어 진통제등 약 사용이 제한적이라 저기 족구장 문을 열기 위해 한 다섯 걸음 정도 떨어져 있던 거예요. 그래야 저희 강아지랑 그 개들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저보다 큰 대형견 3마리가 우리 강아지를 물고 흔들고 있었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었어요.

(당신들도 무서워 곁에 다가가지 못하지 않았느냐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분은 자꾸 도망쳤다 하시는데 그건 제가  아저씨한테 미안해야 할 사항이 아니라 우리 강아지한테 미안해야 할 일이죠.

방법이 없어서 아저씨한테 개 좀 치워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럼 우리 강아지는 안고 가겠다 하지만 아저씨도 혼자 힘으로 대형견 3마리를 컨트롤하지 못했어요. 자신의 개인데 말이죠. 하는 수 없이 아저씨가 우리 강아지를 안아 들었어요. 대형견에게 집중 공격받은 강아지가 낯선 사람이 자신을 번쩍 들어 올리니 놀라서 자기 방어를 위해 물 수밖에 없었겠죠. 그래야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빠져나올 거라 생각했을 테니까. 우리 강아지도 물렸고 지금 얼마나 다쳤는지 알 수 없어요. 이런 상태라면 아마 주인인 제가 안아 들었어도 물렸을 거예요.

그리고 아저씬 자꾸 개들끼리 시비가 붙어서 싸움이 난 거다 하시는데 왜 우기시는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했다고요.


아 잘하셨어요. 특이체질이신데 만약 개 구한다고 달려들었다가 물렸으면 더 큰일이 벌어졌겠죠.

양쪽이 서로 운이 없었던 거 같고 만약 누구라도 먼저 봤다면 피했을 텐데 나무들이 많고 하니까. 정말 운이 나빠 벌어진 일 같은데. 서로 개 키우시는 분들이고 지금은 흥분해서 대화가 잘 안되는데 저쪽 분이 일단 개한테 물린 거니까, 중요한 건 빨리 치료를 받는 거니까. 사람이 치료받는데 가장 중요하지요.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아저씨의 억지주장에 머리끝까지 분통이 치밀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왜 하필 우리에게 생긴 걸까. 하지만 난 화만 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주말 오후라 일단 문을 연 동물병원을 찾아야 했다. 침착하고 싶었는데  떨리는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다. 휴대폰을 들고 흰둥이가 다니는 병원에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24시간 병원이 있어 응급진료 예약을 했다.


개를 데려다 놓은 아저씨가 다시 공원에 모습을 보였다. 구급대원들에 응급처치받은 아저씨는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경찰도 오늘은 일단 돌아가라고 했다. 서로 진정하고 내일쯤 다시 연락해 이야기 하자며 강아지도 다쳤다는데 치료 잘 받으라는 말을 남기고 개들이 달려 내려왔던 그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때 누군가 돌아가는 경찰에게  "그 개 3마리? 언젠가는 큰 사고 터질 줄 알았어. 문제라니까."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일순간 공원에는 적막과 슬픔만 남았다.

그 개들의 낮고 울리는 컹컹거림과 킁킁대던 소리, 개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울부짖던 흰둥이의 깨갱거리는 소리, 그리고 마음에 비수처럼 내리꽂던 아저씨의 고함소리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처럼 맴돌고 있었다.

언제 오셨는지 우리 옆 벤치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어떻게 개를 3마리를 끌고 나온데. 진짜 생각도 없는 거지. 개들끼리 싸우긴 무슨 이 작은 개가 가당키나. 너무 걱정 말아요" 라며 우리를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셨다.  


우리 흰둥이는 괜찮을까.

병원에 가기만 하면 괜찮을까.

흰둥이는 왜 이렇게 되었지?

이토록 고통스러워하는 이유가 뭐지?

도대체 나의 흰둥이는 왜 다친 거지?


해가 지고 있었다. 분명 노을이 지던 시간인데 지금  기억엔 온통 흑백 세상뿐이다. 병원으로 가는 길 차는 왜 그렇게 막히는지. 불안이 조금씩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지만 품에 안겨 작고 퍼석한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는 흰둥이에게 마저 옮겨갈까 나는 온 힘을 다해 요동치는 마음을 짓눌렀다.



병원에 도착해 할 수 있는 검사를 받고 치료에 들어갔다.

앞다리를 심하게 물렸지만 불행 중 다행인 건 뼈는 무사했다. 위치상 운이 나빠 목덜미를 물렸다면 체격 차이로 살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물린 곳이 가장 많이 쓰는 앞다리 근육이라 문제는 만에 하나 있을 염증인데  2~3일은 고비일 거라고.

작은 개가 큰 개에게 공격을 당하면 목과 갈비뼈가 가장 많이 다친다고 한다.

물리는 것 외에도 진돗개 특성상 마치 사냥감처럼 대해 압박에 의한 골절이 있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그래도 또 다행인 게 흉부 압박이 심하지만 갈비뼈도 무사했다.

다만 갈비뼈 아래부터 배, 그리고 생식기까지 얼마나 질질 끌고 짓밟았는지 찰과상에 붓기가 심해서 피하출혈에 탈장이 의심되었다. 복부에 피가 많아 당장 탈장 수술은 어렵고 피가 체내에 저절로 흡수되는 2~3주가 지나도 불룩한 멍울이 가라앉지 않으면 그때 탈장 수술을 하자고 했다.

봄부터 비심인성 폐수종에 안 좋아진 폐가 이번 사고로 악화될 수 있으니 지금은 강아지의 심적 안정이 가장 우선이라고 하셨다.


아이고 아가야, 어쩌다가. 얼마나 놀랬을까. 괜찮아 괜찮아 아가.
선생님이 한번 살펴볼게, 너무 놀라지 마. 아이고 착하다 흰둥이. 예쁘네.


마음이란 게 참 별거 없다. 동물병원 선생님의 그 따뜻한 말 한마디에 불안으로 조금씩 잠식해가던 마음이 일순간에 유연 해지는 게 느껴졌다.


흰둥이는 입마개 대상자가 아니에요.
만약 10kg 이하 강아지가 입마개를 한다면
그 개가 공격적이니까 주변 사람을 위한 견주의 선택인 거죠.
그렇지 않다면 하지 않는 게 맞아요.
그리고 하루 종일 개를 보는 저희도 주인이 컨트롤하지 못하는 대형견 앞에는 다가가지 않아요.
그건 정말 위험한 짓이에요.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세요. 잘못하신 거 없어요.
세게 나가세요. 혼자서 대형견 3마리를 산책시킨다는 게 상식적이지 못한 행동이에요.
그렇게 산책하면 안 돼요. 주변 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니죠.


공원에서 사고가 나고 가해 견들의 주인과 경찰은 개를 키우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서로가 보았다면 피했을 텐데 운이 나빴다고. 하지만 난 그 말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개를 키우면 충분이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그럼 혼자서 대형견 3마리를 데리고 나오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개를 반드시 훈련시켜야 했다. 사회성이 갖춰진 개들은 처음 만났다고, 눈이 마주쳤다고 무조건 달려들고 싸움을 일으키지 않는다.

적어도 난 그렇게 공부했다.


흰둥이와 잘 지내기 위해 책을 보고, 인터넷을 찾아보고, 교감을 나누며 이런저런 기본 복종 훈련을 했다.

처음엔 그저 재미였지만 이젠 안다. 그것이 타인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

덩치가 커서 흥분하면 주인의 힘으로 제어가 불분명한 개를 반려한다면 더더욱 그랬어야 했다.

입마개와 목줄 했으니 끝이라는 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다.

그건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아주 최소한의 상식일 뿐이다.


산책에서 어린아이를 만나면 먼저 멈춰서 기다려야 한다.

어른도 나와 같은 특이체질이거나 개를 무서워한다면 피해 줘야 한다.

처음 보는 개와 충분히 인사를 나눌 수 있는지 파악하기 전까지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개가 불안해하지 않고 얌전할 수 있는지 그렇게 될 때까지 훈련은 필수다.

사회성이 좋고 개와 사람 모두에게 공격적이지 않아도 개가 지나간 자리가 배변으로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해서도 안된다.


개를 키우는 반려인이라면 꼭 알아야 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 들이다.

단지 답답했을 개를 위해 빨리 산책을 마치고 돌아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언제 어떻게 사고가 날지 몰라 이리 피하고 저리 돌아가고 전전 긍긍하는 그것은 산책이라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흰둥이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나흘 밤낮을 아파서 울었다. 제대로 앉지도 눕지도 못했다. 서서 자는 시간이 많았고 앉아서 졸다 기운이 빠져 몸이 휘청이면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통증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두운 밤 눈앞에 내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며 울었다. 그 상태가 심각해 병원 수의사 선생님과 상의해 신경안정제, 스트레스 완화제를 처방받았다.


아픈 흰둥이는 하루 종일 만져달라고 했지만 온몸이 상처와 멍이라 쓰다듬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머리를 가만가만 만져주면 잠깐이라도 눈을 붙였다. 이틀 만에 화장실에 갔지만 뒷다리를 손으로 쳐줘야 했다. 나흘이 지난 아침에 처음으로 대변을 보았는데 검붉은 설사였다. 제대로 된 배변은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그리고 보름이 넘는 시간 동안 흰둥이는 집 밖으로는 나갈 수가 없었다.


흰둥이가 상처의 고통과 아픔을 이겨내는 동안 나는 끓어오르는 부아를 꾹 참아내야만 했다.




다음 이야기 # 개념 있는 견주가 개의 매너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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