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닌 우리를 생각해야 되는 이유
상대방이 나의 기획을 받아들이고 활용하게 만드는 스며듦의 과정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천천히와 자연스러움을 강조했습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오랫동안 섬세하게 공을 들여야 겨우 가능할 정도로 그만큼 다른 이가 나의 기획을 실행하게 만드는 일은 어렵습니다. 이것이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는 상대방에게 비용을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아주 비싼 비용을요.
상대방이 나의 기획을 받아들이고 활용하고 실행하기 위해서 다양한 값을 치러야 합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뭔가의 일을 더해야 됩니다. 마음의 불편함과 몸의 불편함이라는 비용이 발생합니다. 상대는 '뭘 또 시키나'라는 하기 싫은 마음도 이겨야 하고 다른 할 일도 많은데 자신의 공수를 분산해서 투입해야 합니다. 때로는 그동안 익숙해진 일하는 방식을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바꿔야 할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왜 자기 밥그릇 지키지 못하고 다른 조직에게 끌려다니냐는 비난을 받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비용을 통칭해서 이야기하면 전환비용(swiching cost)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전환 비용은 소비자가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에서 경쟁사의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로 전환할 때 발생하는 직간접적인 비용을 의미합니다. 이때 비용을 금전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시간적, 노력적, 심리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요소를 포함합니다. 기획의 실행 과정을 대입해 보면 상대방이 자신의 익숙한 방식이 아닌 나의 생각을 따라주는데 발생하는 다양한 어려움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빠르고 급격하게 나의 생각을 받아들여 달라고 상대에게 말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매우 비싼 비용을 상대가 지불하라는 의미입니다. 설득하기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때문에 기획의 실행을 위해서는 전환비용을 낮춰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전환비용을 낮추는 대표적인 방법은 비용을 지불하는 기간을 늘리거나, 전체 비용을 줄이거나, 이득을 발생시켜 비용을 상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천천히 자연스러운 스며듦은 비용을 지불하는 기간 늘려 부담을 덜어주자라는 개념에서 시작한 이야기입니다. 처음부터 강하게 기획의 실행을 밀어붙이는 것은 마치 상대방이 자신의 비용구조를 조정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 오롯이 그의 자원을 나에게 쓰라는 협박을 하는 것입니다. 통상 윗사람을 타고 내려보내는 협박은 1회성입니다. 상대가 자신을 희생하여 1번은 어떻게 실행이 되지만 2번은 없습니다. 오히려 거부감과 반발심이 추가되어 전환비용은 더 높아집니다. 지속가능한 실행을 추구한다면 절대로 하면 안 되는 행동입니다.
특히나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지불할 초기 비용을 낮추는 것입니다. 초기 비용을 낮출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심리적 비용입니다. '뭐 이렇게 해달라는 것이 많아'라는 생각을 상대방이 가능한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무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가 해야 할 일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가령 양식을 채워야 한다고 하면 최대한 적은 개수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심리적'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채울 내용이 적더라도 친절을 베푼다고 고주알미주알 설명을 붙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 설명을 보고 상대방이 복잡하다고 느끼게 만들면 안 하느니만 못한 설명이 됩니다. 상대 조직이 일하는 방식으로 나의 기획을 바꿔서 상대가 일하기 편하게 실행을 요청하는 것도 전체 전환비용을 낮춘다는 동일한 개념입니다.
한편 나의 기획을 실행하는 것이 상대방이 성과가 되도록 만드는 것은 상대방에게 이득을 발생시켜 비용을 상쇄하는 방법입니다. 기획의 실행을 통해 내가 잘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잘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제시해줘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히나 성과가 될 수 있다면 들어간 비용은 다른 이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의 성과를 위한 비용으로 생각되기 때문의 비용 상쇄효과는 드라마틱합니다.
이처럼 기획의 실행은 그 과정에 있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전환비용의 총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이때 너무나 당연하게도 전환비용의 대부분은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 지불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또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의 비용이나 이득을 가장 우선시하는 것도 사람입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하니까 우리 조직이 이런 상황이니까를 근거로 상대의 움직임을 요청하는 것이 정확히 나의 비용은 낮추고 이득은 높이되 상대방에게는 높은 전환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입니다. 이때 상대방의 당연한 반응은 '어쩌라고 그건 니사정이고'입니다. 남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비용을 지불해 줄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것이 기획의 실행과정에서 내가 아닌 우리를 생각해야 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