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눅눅해진 벽지처럼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 날이 있다. 헤어진 연인의 SNS를 습관적으로 새로고침하고, 이미 끝난 대화창을 거슬러 올라가며 '그때 왜 그랬을까'를 되뇌는 밤.
우리는 이 축축한 감정을 사랑의 무게라고 착각하지만, 법륜스님은 이를 두고 '감정의 찌꺼기'라 일갈한다.
스님은 이별의 미학을 설명할 때 아주 독특한 비유를 든다. 바로 '쌀과자'다.
"안녕이라는 인사는 바삭한 쌀과자를 씹는 것처럼 가벼워야 한다."
스님의 이 한 문장은 이별이 지녀야 할 최적의 상태를 관통한다. 쌀과자를 베물 때의 그 바삭함.
입안에 어떤 끈적임이나 잔여물도 남기지 않는 그 명쾌한 산뜻함이 이별에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만약 이별이 눅눅하고 끈적거린다면, 그것은 슬픔이나 원망 같은 감정의 습기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이별을 '상실'이나 '고통'으로만 정의하지만, 스님의 관점에서 이별은 '안녕'이라는 인사의 본래 의미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만날 때의 '안녕'이 반가움이라면, 헤어질 때의 '안녕'은 상대의 평온을 빌어주는 동시에 나 자신의 내면을 평온하게 유지하겠다는 수행적 결단이다.
인연이 다해 떠나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보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나를 아끼는 길이다.
이별 후 우리를 괴롭히는 정체는 크게 두 가지다. '미련'과 '집착'이다. 스님은 이 둘의 차이를 '꿈'의 비유로 명확히 구분한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