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가 경영악화와 임금체불 문제로 시끄럽다. 아무래도 쉽게 정상화되기가 힘들어 보인다.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서비스가 몰락의 길을 걷는 모습을 보자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싸이월드는 한때 가입자 3천만 명을 훌쩍 넘겼던 서비스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2000년대 초반 싸이월드의 기세는 대단했다. 싸이월드 때문에 디카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실상 한국의 디카 보급에 큰 공을 세운 싸이월드. 나 또한 당시 거금을 주고 니콘의 쿨픽스 모델을 샀던 기억이 난다. 하긴 뭐 디카뿐인가? 시대를 앞서간 코인이었던 도토리로 구매한 음악과 스킨, 그리고 그 밖의 잡다한 아이템들… 그렇다.
당시는 네이버 블로그도 싸이월드에 명함을 못 내밀던 시절이었다.
싸이월드의 숨통을 끊다시피 한 경쟁 서비스로,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외국계 SNS 서비스들이 자주 언급이 된다. 하지만 페이스북 등장 이전부터 몰락의 조짐은 있었다. 아마도 그 조짐은, 네이버 블로그의 등장과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2000년대 초중반 싸이월드의 위세는 네이버 블로그를 압도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싸이월드에서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파워 유저층의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했다. 타인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수동적인 유저층의 눈에 띄는 이탈은 당장 없었지만, 사진이나 글을 적극적으로 업로드하는 창작자들이 먼저 신대륙인 블로그로 하나 둘 이주를 시작했다. 그들의 상당수가 후에 파워블로거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인플루언서로 나아가 지금의 스타 유튜버로 새롭게 생겨나는 온라인 신대륙의 지분을 선점해갔다.
종합해보면, 결국 플랫폼의 이상 징후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계층의 이탈에서 먼저 관찰된다는 의미일 수 있겠다. 그걸 배달의 민족 같은 플랫폼으로 적용해 보면, 배민의 경우 콘텐츠를 올리는 점주나 적극적인 리뷰어 이탈이 플랫폼의 가장 위험한 이상 징후라 할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배민의 최근 쿠폰 이슈는 단발성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해당 이슈가 점주나 헤비 유저의 이탈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당시 콘텐츠를 열심히 생산하는 유저들이 싸이월드에서 네이버 블로그로 이동을 했다는 건,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사실, 싸이월드나 네이버 모두 폐쇄적인 성향을 가진 서비스라는 점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두 서비스 모두 일종의 가두리 양식장처럼 서비스를 운영하고자 했다. 싸이월드는 미니미와 배경음악, 그리고 스킨, 폰트 등 자잘한 아이템들을 통해 가두리 양식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소비자들이 시간과 돈을 쓰도록 유도했다.
반면, 네이버는 훨씬 더 큰 그림의 가두리 양식장을 기획했다. 일단, 검색과 지식인으로 틀을 짰다. 아마 초기 네이버 지식인의 주요 콘텐츠 생산자 상당수는 네이버 내부였으리라고 추측된다. 초기 네이버 지식인의 질문과 답변은 어뷰징과 함께 성장했다. 그리고 이게 시장에 먹히게 되며 네이버는 블로그, 카페 서비스를 줄줄이 내놓는다. 그리고 실시간 검색어 등을 통해 검색을 유도하고 지식인, 블로그, 카페 글 포스팅을 노출시켰다. 네이버의 가두리 양식장은 그렇게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가 됐다.
2000년이 되기 전의 네이버.
싸이도 뒤늦게, 네이버의 그림을 따라 그리려 했으나…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일단 가두리 양식장의 설계와 스케일 자체가 달랐고, 서비스의 태생 자체도 달랐다. 하지만 포털과 SNS의 차이가 성패를 갈랐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싸이월드의 몰락 이후에도 태생이 싸이월드와 유사한 페이스북 같은 SNS 서비스들이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흥했다.
개인적으로 싸이가 지고, 블로그가 뜬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콘텐츠 생산자에 대한 보상과 수익창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콘텐츠를 생산하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의 여부가 핵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싸이월드는 그 부분에 대한 기대가 희박했다. 싸이월드의 시스템에서 콘텐츠 생산자가 수익을 만들기는 매우 어려웠다. 싸이월드에서 콘텐츠를 올리는 것은 결국 일종의 기록과 자기 관리, 혹은 자기 과시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당시 네이버 블로그의 경우 콘텐츠 생산자가 수익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하나 둘 생겨나고 있었다. 파워블로거, 중고나라 같은 히트 카페들이 나오면서 그것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서 수많은 콘텐츠 생산자들이 블로그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지금의 인스타처럼 블로그와 카페는 당시 많은 셀러들에게 가장 핫한 채널 가운데 하나였다. 싸이월드는 결국 그런 생태계를 만들지 못했다. 콘텐츠 생산자들에게 수익을 주기보다는, 콘텐츠 생산자들의 주머니를 터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콘텐츠에 대한 대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 결국 부메랑이 된 모양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살펴보면, 과거 싸이월드가 그랬던 것처럼 네이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런 우려 가운데 하나는 네이버의 콘텐츠 생산 계층이 대거 유튜브로 이동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안 좋은 징후라고 판단된다. 물론 지표상으로는 아직 크게 이상 징후가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선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해당 지표가 콘텐츠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의 행동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네이버에 대한 피로감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만 봐도 쉽게 느껴진다. 네이버 검색의 좋은 점은 그저 고민과 생각을 안 해도 되는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구글의 경우 검색에 있어서 스스로 고민과 생각을 많이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보다 창의적인 검색을 통해 좋은 레퍼런스를 골라내고, 어떻게 현실에 적용하고 차별화하면 좋을지 유저들이 스스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이버 검색에는 그런 고민이 전혀 필요 없다. 일종의 가두리 양식장이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큐레이션 해서 노출시킨 검색 결과와 콘텐츠에 고민의 요소가 들어갈 여지는 없다. 거기에는 사실상 네이버의 고민과 의도가 있을 뿐이다. 그렇게 해서 모두가 똑같은 맛집을 가거나, 관광지를 가고 똑같은 물건을 사게 된다. 뭐,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게 익숙하고 편할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그와 같은 네이버 주요 서비스 내 콘텐츠 생산자들의 이탈은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특히 유튜브로의 급격한 이동은 과거 싸이월드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주요 콘텐츠 생산 유저들의 유튜브 이동을 단순히 영상 시대로의 전환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
유튜브는 영상이라는 이 시대 가장 핫한 아이콘을 선점했지만, 영상이 유튜브의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그보다 더 주목해서 보게 되는 부분은 유튜브가 콘텐츠 생산자를 끌어들이는 전략이다. 유튜브는 콘텐츠 생산자들에게 직접적인 방식으로 수익을 나눠주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의 경우 애드포스트가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하지만 유튜브는 다르다. 구독과 좋아요를 돈으로 바꿔준다. 유튜브는 상당히 직접적이고 공평해 보이는 방식과 이미지로, 콘텐츠 생산에 대한 보상과 대가를 당근처럼 내밀고 있다. 콘텐츠 생산자들의 욕망을 가장 적극적으로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유튜브의 전성시대는 콘텐츠 생산자들에게, 현시점에서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수익 모델과 기회를 제시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네이버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네이버는 과연 제2의 싸이월드가 될 것인지, 아니면 지금보다 더 큰 가두리 양식장을 그려나갈 것인지…
Min님의 브런치 글을 모비인사이드가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