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내용은 모 커뮤니티에서 나눈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스타트업 브랜딩이란 OOO다>라는 주제로 캐주얼하게 생각을 공유한 것이라 공사가 다망한 스타트업들 관계자들은 잔나비 노래처럼 주저하지 말고 쓱 훑고 가시면 된다.
이미 제목에 있지만 필자는 스타트업 브랜딩을 ‘일기(diary)’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일기의 특징이 스타트업의 브랜딩과 상당히 닮아 있기 때문이다. 3가지로 정리를 해 보았다.
일기는 이름 뜻 그대로 매일을 쓰는 것이다. 학창 시절 밀린 일기를 쓰느라 고생했던 기억들이 많을 것이다. 몰아서 쓰게 되면 디테일이 약해진다. 큰 에피소드들은 운 좋게 기억이 나겠지만 감정의 변화들, 오고 간 대화들, 세부적인 묘사들은 기록하기 어렵다. 요새는 인터넷으로 찾으면 되지만 예전에는 날씨도 굉장히 난감했다. 그날 날씨가 좋아 친구와 놀러 갔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비가 왔다든지!!!
브랜딩은 제품이 완성되고 나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 시작과 함께 시작해야 한다. 내가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가 곧 브랜드의 미션이 되고 내가 이 사업을 통해 무엇을 이룰 것인지가 브랜드의 비전이 된다. 또 이 사업은 고객에게 어떠한 가치와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를 정리하면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된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고민하고 정리해야 한다. 나중에 제품이 개발되면 브랜딩과 마케팅에 집중할 수 있을 거라 착각하면 안 된다. 스타트업은 모든 업무를 단계별로 진행할 수가 없다. 제품을 출시해도 다시 업그레이드를 시켜야 하고 피드백을 반영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일기를 미루듯 브랜딩도 미루게 되고 나중에 돌아보니 제품은 있는데 브랜드는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은 특정 스타트업이 아닌, 필자의 경험상 상당수 스타트업이 겪는 문제이다.
1시간 정도라도 좋다. 브랜딩에 작은 시간이라도 매일 투자해야 한다. 지루한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브랜딩 효과는 없고 의욕도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일기가 그렇듯 꾸준히 쓰는 사람이 이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는 지겹다고 생각하지만 고객은 아직 나를 모른다는 냉정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 귀에 딱지가 앉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고객이 그래야 한다.
와그(WAUG)라는 브랜드는 창업 초기 하루에 10개씩 SNS 콘텐츠를 만들었다고 한다. 눈뜨면 나와서 카페에 앉아 카드 뉴스만 종일 만들어 댔단다. 팔로워가 50만이 되었을 때 콘텐츠가 7000개 이상이나 됐다고 한다. 그것도 그냥 퍼다 온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가공해서 올렸단다. 그 정도는 해야 지겹다는 표현이 가능하지 않을까?
내일 일을 미리 쓰거나 먼 미래의 일을 쓰는 것은 일기가 아니다. 소설이지. 일기는 지금을 써야 한다. 스타트업 브랜딩도 유사하다. 일반적으로 브랜딩이라고 하면 너무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것만 생각한다. 세일즈나 마케팅처럼 단기 성과에 집중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부담을 가지는 스타트업이 많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황에서 몇 년 뒤 브랜딩을 어떻게 고민하느냐는 것이다. 동의한다. 그래서 필자는 우선은 현재에만 집중하도록 권한다.
지금 대기업처럼 브랜드 시스템을 구축해 놓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회사치고 그런 상황에 직면할 만큼 크는 걸 못 봤다. 그리고 어차피 대기업도 브랜드는 계속 뜯어고치고 바꾸고 한다. 브랜드는 변치 않아야 한다는 말 뜻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된다. 어떤 스타트업은 우리가 ‘배달의 민족’처럼 될 거니까 그들과 비슷한 포트폴리오를 고민해서 브랜드 전략을 수립하자고 한다. 미안하지만 그건 배달의 민족이 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지금 내 브랜드의 상황과 여건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필자가 자문하고 있는 브랜드 중에서 ‘나누다키친’이라는 공유 점포 플랫폼 스타트업이 있다. 저녁에만 장사하는 가게에서 영세 사업자가 점심 장사를 하도록 도와줌으로써 부동산 문제와 실업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기업이다. 이 회사는 처음에는 식당으로 포지셔닝했다. 실패율이 낮은 카레나 덮밥 뷔페 위주로 프랜차이즈화해서 점심때만 만날 수 있는 식당으로 브랜딩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원래 목적은 중개 플랫폼이었다.
한마디로 ‘점포 공유 전문 직방’인 셈이다. 어느 정도 시점이 왔다고 생각했을 때 디자인을 리뉴얼했고 기존 식당의 이미지를 플랫폼의 이미지로 개선하였다. 처음부터 플랫폼을 향해 가니까 무조건 식당처럼 보이지 않게 했다면 초기 고객들에게 모호한 정체성을 심어줘서 더 어려웠을 것이다.
스타트업은 우선 지금에 집중해 가면서 전략적 판단에 따라 브랜딩을 해 나가면 된다.
일기도 베끼는 친구들이 있다. 같이 한 일도 아닌데 도플갱어처럼 한 일이 똑같다. 이렇게 들으면 웃기겠지만 많은 스타트업이 브랜딩을 이렇게 하고 있다. 자기 페이스북인데 가보면 남의 기사만 잔뜩 퍼와서 도배해 놨다. 그것은 일기를 미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기도 하다. 갑자기 내 이야기를 쓰려니 ‘꺼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좀 유명하다고 하는 브랜드 중에 자기 이야기 없는 브랜드는 없다. 결국 내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몽베스트라는 작은 생수 브랜드가 있다. 생수 시장은 대기업들도 쉽게 성공하기 힘든 곳인데 하물며 이런 회사는 수도 없이 생겼다 사라진다. 어쩌면 몽베스트도 진작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수 있었다. 필자가 컨설팅을 할 즈음에 몽베스트는 뚜렷한 브랜드 이미지가 없었다. 다른 생수 브랜드들의 이야기를 따라 전하느라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뻔한 수원지, 셀럽이나 모델을 활용한 이미지 등을 카피하고 있었다. 모두가 이렇게 하는데 우리도 그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냐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건 다른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팀은 고민 끝에 오히려 경쟁사들이 따라 할 만한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고 했다. 몽베스트는 당시 1리터짜리 보틀이 있었는데 그건 꽤 차별화되는 사이즈였다. 500밀리미터는 너무 작고 2리터는 너무 커서 그 중간 사이즈를 개발했는데 우리는 그것을 시그니처로 삼아서 ‘물 마시는 습관’을 이야기하자고 했다.
하루에 1리터는 몽베스트를 들고 다니며 마셔주고 그 외에 나머지 수분을 보충해서 충당을 하자 즉 이 보틀이 기준이 되어주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몽베스트만의 브랜드 키 메시지를 ‘물 마시는 문화를 생각하다 Think With’라고 정했다. 콘텐츠들은 전부 물을 어떻게 하면 잘 마시게 할 수 있는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바꿔서 1년 동안 주야장천 뿌려댔다. 그러기 위해서 물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물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소방서에 생수를 기부하고 소방관을 브랜딩 하는 일까지 확장했다. 생수가 아닌 생명수의 이미지로 만들어 간 것이다.
그 결과 작년 네이버 데이터 기준으로 생수 시장에서 판매율 15위에 오를 수 있었다. 바로 위에 농심 백산수가 있으니 꽤 좋은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스타트업 브랜딩은 조금씩이라도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고 먼 미래를 고민하기보다는 현재의 상황에 맞게 하고 특별하지 않더라도 나의 콘텐츠를 전달해야 한다.
매드해터님의 브런치 글을 모비인사이드가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