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발표 좋아하세요? (몇 분이나 좋아한다고 하실지 궁금합니다.) 직장 생활하면서 발표하는 걸 좋아한다는 분을 본 적이 없네요. 대학교 때부터 많이 보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조별과제에서 발표는 누가 맡을 것인가를 정할 때 다들 먼산만 바라보던 모습. 술 먹을 땐 그렇게 친하더니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
사실 발표는 프로젝트의 꽃이고 자신을 알리는 좋은 수단입니다. 화룡점정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개떡 같은 내용도 멋들어진 발표 한 번이면 순식간에 용과 호랑이가 승천하게 할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표는 우리 직장인들에게는 스트레스의 대상입니다.
저는 발표를 꽤 잘합니다. (….) 네 재수 없습니다. 압니다 알아요. 잘한다기 보단 어려워하지 않는다는 게 맞겠네요. 일단 얼굴이 두꺼워서 웬만한 청중들의 시선도 잘 버티는 게 주요한 것 같습니다. (…)
주변 동료 몇이 최근 발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보고, 저도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발표를 잘 하려면 어떤 부분이 더 필요할까에 대해서요.
사실 이 주제만으로도 글 10개는 쓸 수 있습니다. 오늘은 직장 생활하며 얻은 발표 잘하는 노하우에 대해서 공유코자 합니다.
사실 잘 된 발표와 그렇지 못한 발표는 이미 다 정해져 있습니다.
당장 저한테 핀테크 관련 발표를 누군가 요청한다면 어렵지 않게 준비해서 발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테넷(TENET)으로 보는 물리학과 양자역학’ (?!) 이런 주제라면 이야기가 다르죠. 그러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라면(?!) 또 해볼 만할 겁니다. 관련 전공 교수님들 앞이라면… 절대로 해선 안될 것이고요.
무슨 뜻인지 이해하실 겁니다. 발표에 임하기 전에, 주제와 청중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잘된 발표는 발표자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이길 수 있는 판을 만들고 시작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명심하세요. 이것만 잘해도 반은 이기고 들어가는 겁니다.
판을 잘 깔았다면, 준비도 잘해야겠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엄청난 자신감입니다. 말 그대로 ‘엄청난’ 자신감을 본인에게 불어넣도록 하세요. 저는 발표 자리에 설 때마다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합니다.
‘이 자리에서 이것 관련해서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설령 내가 틀려도 그걸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찌 보면 우습지만 이 방법은 엄청난 효과가 있습니다. 알고 계세요? 발표 무대에 서 있는 발표자의 표정, 말투, 손짓 모든 건 장표 이상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불안한 시선, 펴지 못한 어깨와 숙인 고개, 떨리는 말투. 청중들은 귀신같이 압니다. 이러면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이미 망한 발표가 됩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를) 당당함. (왜인지 모를) 자신감에 찬 눈빛. 흔들림 없는 목소리. 이러면 내용의 충실함과 관계없이 잘된 발표처럼 보입니다. 동네 꼬맹이들 주먹싸움과 비슷한데요. 발표는 기세가 중요합니다.
사실 발표 자리에서 해당 주제에 대해, 발표하는 사람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잘 없습니다. 의외로 많은 발표자들이 걱정하는 포인트는 따로 있습니다. 실수에 대한 두려움과 이에 대한 지적을 받는 것입니다. 발표의 충실성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게 큰 거죠.
앞서 제가 말씀드린 걸 계속 되뇌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발표 자리에서만큼은 내가 최고다. 아무도 뭐라 못할 것이다 라고 자기 암시를 계속하시길 추천드립니다.
Practice makes Perfect는 진리입니다. 발표만큼 반복적인 연습이 효과적인 것도 없습니다. 연습을 많이 하면 발표 퀄리티는 상승합니다.
주니어 시절에는 제가 직접 발표할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쩌다 발표를 하게 되면, 몇 달 전부터 시간 날 때마다 발표를 연습했습니다. 자다가도 연습하고 출퇴근하다가도 연습합니다. 두 눈을 감고 발표장에 있는 제 모습을 계속 떠올리면서요.
그런데 선임이 되어가며 발표 자리가 많아지니, 매번 그렇게 연습할 수가 없습니다. 또 어느 정도 경륜(?!)이 쌓이다 보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물론 체력도 안됩니다…) 그래서 살살 요령을 부리게 됩니다. 흐름을 외우는 건데요. 말하자면 물 흐르듯 진행되는 발표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거죠.
발표 장소, 청중, 주제, 발표시간이 확정되면 장표 제작 때부터 이를 반영한 저만의 ‘흐름’을 만듭니다. 이야기를 풀어나갈 스토리라인 같은 건데요. 전체 뼈대를 잡고, 장표 페이지 단위로 어디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가지를 칩니다. 여기에 기반해서 장표를 구성합니다.
이때 중요한 건, 안 외워도 될 정도로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반대로 대부분 외워야 할 정도로 흐름을 꼬아서 만드니까 문제가 되고 발표가 어려워지죠 ^^;;
대체 자연스러운 흐름이란 게 뭐냐!라고 물으실 텐데 체크방법은 간단합니다. 발표 자료를 다 만드신 다음에 다음 사항을 봅시다.
1) 장표를 빠르게 넘기면서 입으로 꼭 해야 할 말만 빠르게 말해 봅시다. 한 문장 정도씩.
2) 장표를 안 보면서 (1)을 할 수 있나 봅시다.
이거면 됩니다. 이게 술술 되면 다 되신 겁니다.
이렇게 글로 적어두면 당연한 소리를 적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회사 생활하면서 흐름이 무너진 발표를 너무 많이 봤습니다. 왜 그런가 돌이켜 보면 대부분 아래 이유죠.
A) 사공이 많다 보니 발표자료에 너무 많은 내용이 담겼다
B) 발표자도 말하고 싶은 바를 명확히 모르더라
C) 장표마다 메시지가 다르더라
ABC를 피해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드는데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가급적 발표 준비 초반에 기틀을 잡아야 합니다. 나중에 하면 보고서 마무리 시점에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뭔가 이상한데 다 뜯어고치진 못하겠는 상황이 나오는 거죠. 흐름을 잡고 있으면 발표가 안 무섭게 됩니다.
발표를 잘하는 사람들은 많은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쓰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꼭 말씀드리고 싶은 2가지가 있는데요. 바로 아이컨택과 장표 안 보기입니다. 사실 이 둘은 비슷한 말입니다.
청중과의 아이컨텍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다들 잘 아시는 부분입니다. 거의 모든 프레젠테이션 관련 서적에 등장하는 말이죠. 몸으로 할 수 있는 제스처 중 가장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어깨가 굽어 있다거나 표정이 어둡다거나 한 것보다 아이컨텍이 안된다면 훨씬 큰 문제입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옛말이 딱 맞거든요. 힘을 주고 노려볼 필요까진 없겠으나 편안한 인상으로 모든 청중에게 골고루 계속 시선을 주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아이컨텍을 잘하는 프레젠터는 장표로 시선을 돌리지 않습니다. 물론 프로들의 중요한 PT에서는 장표 화면을 별도의 모니터로 앞에 두기에 훨씬 쉽습니다. 청중에겐 보이지 않는 모니터를 보통 맨 앞자리에 두기 때문에 뒤를 돌아보거나 아이컨텍을 끊지 않죠. 이렇게 진행되는 PT는 상당한 안정감을 선사합니다. 장비가 있는 발표장이라면야 좋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기 때문에, 발표자가 장표와 장표 사이의 이음매를 암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청중은 발표자의 모든 제스처에서 메시지를 읽습니다. 발표자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리모컨을 클릭하여 다음 장표의 말을 자연스럽게 이어간다면 큰 신뢰를 받습니다. (실제로 보면 꽤 멋있습니다. 하는 사람이 많이 없거든요)
사실 남 앞에 서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단순히 발표 내용이나 발표 스킬의 이슈가 아니라 타고난 성격 영향도 크고요. 쉬운 듯 주저리주저리 적어 내려 갔지만 저 역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을 때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여전히 흐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인에게 발표력(남들보다 발표를 잘하는 힘?)은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잘 해내는 만큼, 기회를 더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수단이니까요.
그리고 본말이 전도되는(?) 특이한 경험도 선사한답니다. 발표를 잘하면 다른 점들도 뛰어나 보이는 이상한 후광효과가 있습니다 ^^;; 잘 준비하면 그만큼 큰 도움이 되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들 슈퍼 프레젠터가 되실 수 있길 빕니다!
길진세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