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과제 정보를 조금이라도 리서치해 본 창업자라면, 이렇게나 많은 과제 중에 뭐라도 하나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5,000만 원 미만의 초기 창업 지원 사업의 경우만 해도 경쟁률이 어마무시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선발 확률을 높일 수 있을까? 사실 많은 창업 후배들이 필자에게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도대체 어떻게 정부 과제를 수주하게 되었냐고…. 당연히 정답은 없다. 그리고 필자가 그 해답을 모두 꿰고 있다면 돗자리를 펴도 되겠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원론적으로 얘기한다면 모든 선발의 핵심은 아이디어, 기술, 사업성이다. 아이디어가 남들보다 참신하고 기술 경쟁력이 있고, 비즈니스가 될 만큼의 시장과 니즈가 있다면 당연히 선발될 것이다. 거기에 우리의 기술을 잘 설명하고 전달해 낼 수 있는 사업 계획서 작성은 필수적이다. 앞뒤가 맞고 논리가 정연해야 한다. 너무 상식적인 이야기겠지만….
하지만 이 세 가지(아이디어, 기술, 사업성) 요소를 모두 갖춘 초기 스타트업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 역시 초기 단계에서는 3박자를 갖추기에 역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 초기에 정부 과제에 선발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만큼 엄청난 노력을 했기에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회사의 경우 창업 이후 6년 동안 매년 크고 작은 과제에 선정되었으니 승률이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승률이 높다 해도, 야구로 치면 3할 초반대 정도의 타율이다. 매번 득점권에서 타점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리그 최고를 달리는 4할 타자도 아니다. 여전히 우리도 탈락과 실패를 하면서 배워 나가는 입장이고, 내가 경험한 것들이 100%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의 경험들 속에서, 적어도 예비 창업자들이 이것만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이 있다. 지금부터 초기 창업자 스테이지에서 정부 지원 사업 선발 확률을 높이는 팁을 공유하고자 한다.
마트에만 가도, 원 플러스 원 상품에 눈길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당연히 초기 창업자라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자금을 지원받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점은, 초기부터 과한 욕심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내 몸에 맞는, 내 fit에 맞는 과제는 따로 있다. 특히 내가 하는 사업 아이템이 어느 부서와 잘 맞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과기정통부인지, 문화체육관광부인지, 산업자원부인지 등을 사전에 따져 보고 접근해야 헛수고를 줄일 수가 있다.
그리고 첫 스타트부터 금액이 큰 예산이나 사업 과제에 욕심을 내다보면 실패의 확률도 높다. 작은 지원 정책부터 단계적으로 밟고 올라가는 게 정석이다. 물론 초기 스타트업이 받을 수 있는 과제들은 금액이 그리 크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엔, 초기 스타트업은 아무리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어도 1억이 넘는 예산을 확보하는 데는 솔직히 한계가 있다. 회사의 내부 역량과 연혁이 받쳐주지 않는 경우, 어지간해서는 심사 위원을 설득하기 어렵다. 또 그들은 실체적 팩트를 보고 평가를 하기 때문에 점수를 후하게 줄 수도 없다.
적은 금액에서 win 케이스를 내고 또 그다음 한 단계 높은 과제에 도전하는 단계별 접근이 필요하다. 군대 계급이나 회사에서의 승진도 최소한의 기간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올라갈 수가 없듯이 회사의 등급이나 스케일도 일정 기간이 필요하다. 회사도 월별, 분기별, 회계연도별로 단계마다 과업과 성장이 동시에 존재한다.
우선 결론적으로 초기 스타트업과 예비 창업자들은 중소벤처기업부나 과기정통부 쪽만 집중해서 보고 세심히 검토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매년 1~2월이면 부처별로 정부 지원 과제에 대한 설명회가 쏟아진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필자는 창업 초기에 동네방네 온갖 부처 설명회를 쫓아다녔다(최근부터는 지역별로 한 장소에서 부처별 통합 설명회로 진행됨). 필자처럼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시간을 허비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물쇠에 딱 맞는 열쇠가 따로 있고 궁합이 맞는 음식이 따로 있듯이, 내게 맞는 사업만 집중해서 점검하면 된다. 필자는 2년 차부터는 우리와 정말 관계없는 다른 부처의 정부 과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쓸데없는 곳을 다니는 것은 소모전이다. 귀한 나의 시간을 박살 내는 killing time이다. 언제부터인가 어느 방향을 보면 가야 할 길과 현명한 방법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어느 부처 예산이 우리에게 적합한지, 어떤 과제 테마로 제안하면 승산이 있는지 완전치는 않지만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가 있다.
물론 회사의 기술이 혁신적이고 확장성과 사업성이 있어야 선정 확률이 높다. 내용과 콘텐츠가 좋아야 하는 건 기본이다. 예비/초기 창업자 입장에서 내게 맞는 과제를 가장 빠르게 분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내 사업 단계에 따라 예비, 초기, 도약, 재도전으로 나눠서 접근하는 것이다. 창업을 준비하는 입장이라면 당연히 예비 창업가 과제, 3년 미만의 창업가라면 초기 창업가 과제만을 선별해서 살펴보면 된다.
특히 그중에서도 매년 정기적으로 창업 지원을 해 주는 프로그램을 추천하고 싶다. 이유는 단발성 창업 지원의 경우 지속성이 없지만, 이미 역사와 전통이 있는 창업 지원 사업은 후속 지원도 빵빵하고, 교육/마케팅/수출/유통/투자 등을 연계해서 지원해 주도록 매년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 자금은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피와 같다. 그리고 그 피가 수혈되어야 할 골든타임이 있다. 골든타임을 놓쳐서 적당한 시기에 피가 돌지 않으면 당연히 창업 현장에서 생존하기 어렵다. 그 때문에 자신의 사업 단계별로 지원 과제 사업을 레벨업하는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필자도 초창기에는 무상 사무실 지원 제도나 창업 초기 지원 아이디어 사업을 통해 2,0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으면서 조금씩 스케일업을 했고, 3년 차가 넘어가면서 2년에 8억이라는 큰 과제에 도전해 선정되었다. 단계별로 내가 어떤 과제에 지원할지 미리 플랜을 짜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현명하다. 초기 1년 차 단계에는 창업을 위한 사무실 지원, 초기 개발비 과제에 집중하고 기술 개발이 어느 정도 진행된 단계에서는 시제품 제작 지원 사업 등의 과제에 눈길을 주는 것이 현명하다.
많은 예비, 초기 창업자들의 경우, 당장 실탄으로 쏠 수 있는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을 진행하려면 당장 일할 수 있는 사무실 공간이 필요하다. 사무실을 마련하고 매달 월세에, 전기세 등의 운영비까지 조달하려고 하면 정말 만만치 않은 비용이 소요된다. 여기에 들어가는 돈만 아껴도 기술 개발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돌이켜보면 필자는 정말 운이 좋았다. 그리고 기회도 잘 포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14년에는 정부 주도로 지역별 창조경제 혁신센터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수많은 스타트업들과 경쟁 PT를 통해 제1기 서울창조혁신센터(광화문 소재) 10팀에 선발되어, 대한민국의 중심 광화문에서 창업의 꿈을 키워나가게 되었다. 당시 광화문 대로변에 소재한 창조혁신센터에서는 매일 창업 이벤트와 IR, 엔젤투자 세미나, 사업 마케팅 전략 심포지엄, 그리고 다양한 네트워킹 등을 통하여 회사가 성장하고 스케일업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었다. 사무실과 내부 책상 설비는 물론, 심지어 음료수 커피까지 완전무상으로 지원받는 혜택을 누리게 된 건 물론이다. 회사를 창업하고 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법인 소재지와 사무실이 존재해야 하는 필수적인 요건을 한 방에 해결한 셈이다. 덕분에 당시에 유치했던 엔젤 투자자금은 고정비(사무실 임대료 등)에는 한 푼도 사용하지 않고 오롯이 기술 개발 비용으로만 집중 투입할 수 있는 임팩트도 생겼다.
초기 창업자들은 새어 나가는 돈 한푼 한푼이 아쉽기 마련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초기 창업자들을 위해 사무 공간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 넘칠 만큼 많이 있다. 창업진흥원 등의 사이트를 활용해서 초기 운영 비용을 아낄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길 바란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했다. 기왕이면 남들보다 한 템포라도 먼저 타깃 과제를 정하고 움직이면 합격의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질 것이다. 정부는 9~10월이면 이미 내년도 과제 예산 편성을 마무리하게 된다. 관련 부처의 홈페이지에 가보면 관련 예산들과 전년도에 이어지는 예산 리스트를 다 볼 수 있다. 조금만 알뜰하게 파헤치면 내가 궁금해하는 정보를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공고가 쏟아지는 내년도 1월보다 최소 두 달은 앞서서 준비를 할 수 있는 셈이니, 시간도 벌고 내실도 더 다질 수 있는 건 당연하다. 여기서 또 하나의 팁을 주자면 창업의 시작은 여름부터가 좋다고 본다. 최소 6개월 전부터 멤버를 구성하고 준비해서 어디에 제안할 것인지 정해 놓고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쟁률이 높은 초기 사업자 대상의 정부 과제의 경우, 사소한 차이가 선발의 당락을 좌우할 수도 있다. 내가 주목하고 있는 과제가 있다면 해당 지원 사업의 전년도 합격 사례를 둘러보고 분석하는 것도 성공의 확률을 배로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또한 내가 떨어진 과제가 있다면 탈락의 사유가 무엇인지 꼼꼼히 복기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피드백을 거쳐야 우리의 단점도 보완되고 다음번 도전에 실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또 한 가지! 주변에 지원 사업에 합격했던 선배 창업자나, 인맥 네트워크를 통한 지원 사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작지만 큰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온라인이나 책에서 찾지 못한 생생한 노하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창업 멤버 간의 업무 분장이 확실히 이뤄지기란 쉽지 않다. 보통 한 사람이 두세 가지의 일을 겸해야 하고, 때로는 일당백의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많다. 더구나 사업 진행을 위한 기술 개발 등에 매진하면서도, 동시에 정부 지원금 유치 노력을 병행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에 조금 힘들더라도 내부 시스템을 조금씩 구축해 가면 한결 업무가 수월해질 수 있다. 정부자금 지원사업의 경우 창업자가 주축이 되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또 발표에 임하고, 이후 집행 및 개발 마무리 보고까지 주도해야 한다. 사업계획 작성 시에도 책임연구원을 지명하게 되는데 스타트업의 경우 대부분 창업자들이 수행하게 된다. 사업 제안의 주체가 되어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이끌어 가기 위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박재승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