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5화 특허소송 상세 분석 – 2탄
안녕하세요. 손인호 변리사입니다.
지난 글에서는 드라마를 쉽게 보실 수 있도록 특허 용어와 제도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 드렸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드라마 속 특허 분쟁을 현미경으로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드라마의 스토리와 별개로, 지식재산 소송과 관련된 부분을 집중 해부하였습니다.
*5화 내용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Point ①. A 기업은 자신들이 개발한 현금인출기(ATM) 기술에 대해 특허(실용신안) 출원을 하였다.
Point ②. A 기업은 자신들의 특허권(실용신안권)을 기초로 B 기업의제품판매금지를위한소송을 제기하였다. (권리를 획득한 것을 전제로 합니다)
Point ③. B 기업은 A 기업이 특허(실용신안) 출원을 하기 전 공개된 기술이라고 주장하면서, A 기업의특허권(실용신안권) 침해에서벗어나고자한다
드라마 속에서 A 기업은 박람회에서 공개된 기술을 그대로 특허(실용신안) 출원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오픈소스로 공개한 다른 기업(C 기업)의 기술을 A 기업이 특허 출원하여 등록받은 것이 과연 법적으로 문제가 될까?
A 기업이 해외에 공개된 기술을 특허출원한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볼 여지는 있겠지만, 법적으로는 문제를 삼기는 어려운 사안이다.
단계별로 나누어서 접근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쟁점 ① A 기업이 기술을독자적으로개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될까?
쟁점 ② C 기업이 누구든지 사용하라고 공개한 기술을 기초로 특허출원한 것이 문제가 될까?
쟁점 ③ A 기업이 특허권을획득한 것이 문제가 될까?
쟁점 ④ A 기업이 획득한 특허권을 기초로, B 기업과 같이 선량한 기업에 소송을제기한 것이 문제가 될까?
특허 제도는 공개된 기술을 이용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다른 사람의 기술을 활용하여 개량된 기술을 발명할 수 있도록 무대를 만들어 두었다.
특허 제도의 본질은 우리 사회에서 기술이 점차적으로 진보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사회에서 좋은 기술이 개발되면 모두가 이익을 누리기 때문이다. 이는 특허법의 제1조에도 규정되어 있는 대원칙이다.
빅 테크 기업이 만들어낸 혁신기술의 이익은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 자율주행이 발전할수록 운전자는 편해지고, 인공지능을 통해 우리의 고민거리를 덜 수 있다.
이처럼 특허 제도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응용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혁신을 유도한다.
다른 기업(C 기업)이 자신이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서 특허권을 획득한 경우에 문제가 되지만, 다른 기업(C 기업)이 특허권을 획득하지 않고 방치한 경우라면?
C 기업이 누구든지 기술을 이용할 수 있도록 스스로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본다. 잠자는 권리는 보호받지 못한다.
A 기업이 공개된 기술을 개량해서 새로운 발명을 만들고, 특허출원까지 이어진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사안이다. A 기업의 독자 개발이든, C 기업이 공개한 기술이 모티브가 되었든지 말이다. (C 기업의 기술을 몰래 유출한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만, C 기업이 스스로 공개한 기술을 따라한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드라마 속 개발 팀장을 너무 미워하지 말기를 바라며.)
A 기업이 특허출원한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허출원 여부는 당사자의 자유이다. 만약 특허받을 수 없는 것이 특허출원되었다면 심사단계에서 걸러지면 된다.
자신의 기술을 영업 비밀로 간직할지, 강력한 힘을 제공하는 특허로 획득하기 위하여 특허청에 출원할지는 A 기업의 자유이다.
A 기업의 잘못은 C 기업이 공개한 기술을 독점하기 위한 욕망과 과욕이라는 내심의 의사에 있는 것이지, ‘특허출원’이라는 행위 자체를 지적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다.
따라서, 두 번째 이슈도 법적으로는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공개된 기술을 그대로 따라한 A 기업이 “특허권”이라는 기술 독점권을 획득하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하다. 이는 드라마 속에서 생략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특허(Patent)”라는 것은 서류를 제출한다고 바로 권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약 1년 이상의 특허청 심사관의 심사를 통과해야만 권리를 획득하게 된다.
자신의 기술을 글로 설명하고, 이를 특허청에 제출하고, 특허청의 심사를 받는 길고 긴 여정을 거쳐야 한다.
“특허출원“은 서류를 제출한 것일 뿐이고, “특허등록“까지 특허청 심사를 통해 레이스를 완주해야지 특허권이라는 권리가 탄생한다.
이 부분이 가장 핵심인 부분이나, 드라마 속에서 흐름상 특허 절차를 모두 소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A 기업이 특허출원하더라도 “이미 공개된 기술을 그대로 따라한 A 기업의 현금인출기(ATM) 발명”은 특허청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A 기업이 특허출원을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A 기업이 특허 출원을 하더라도 특허청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일 뿐이다.
특허청은 매의 눈으로 전 세계에 공개된 기술들을 조사하고, 특허를 부여할지 말지 결정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특허청이 공개된 기술을 등록받지 못하도록 수문장처럼 잘 수비한다.
하지만, 특허 심사는 인공지능이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번 사례와 같이 공개된 문헌이나, 이미 판매된 제품을 놓치기도 한다. 수비 실패는 곧 특허 등록으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다음 단계가 중요하다.
A 기업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특허청이라는 심사를 통과했다. 공적 기관이 일차적으로 이상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행정기관의 판단을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다.
A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권은 정당성을 가진다. “행정행위의 공정력”이라고 불리는 법적인 안전장치이다.
특허 제도는 권리자가 특허권을 가지고 있다고 무작정 칼을 휘두를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두고 있다.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A 기업은 언제든지 자유롭게 소송을 할 수 있다.
특허권은 기술을 독점하도록 권리자를 보호하는 힘을 제공한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지식재산권을 획득하는 이유이다.
A 기업이 같은 현금인출기(ATM)를 판매하고 있는 B 기업에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한다면, B 기업은 제품을 더 이상 판매할 수 없다.
만약, A 기업이 처음부터 특허를 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면 어떻게 될까?
특허청 심사 단계에서 비록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소송을 하고 있는 도중에 자신의 특허출원 이전에 다른 기업(D 기업)이 공개한 것이 알려진 경우를 생각해보자. A 기업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부당한 행위로 보아야 할 것이다.
B 기업만이 그러한 내용을 알고 있다면?
이번 드라마와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B 기업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D 기업이 판매한 현금인출기(ATM)를 찾아다녔다. B 기업은 A 기업의 특허권이 무효가 될 자료를 찾아서 법정에 제출할 것이다.
특허 제도는 B 기업과 같이 당사자에 방어권을 제공하고 있다. 원래 등록되지 않았어야 하는 권리이지만, 뒤늦게 잘못된 사실이 알려진 경우에는 피고를 소송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준다.
“권리남용의 원칙” 또는 “공지기술 제외의 원칙”이라고 불리는 항변을 통해 피고는 A 기업의 특허권 침해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법원 2012후4162)
소송에서 공격과 방어라는 공성전을 통해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당사자의 주장과 증거에 의해 실체적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소송의 속성이다.
*여기서부터는 더욱 전문적인 부분이라, 관심이 있으신 분들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드라마에 소개된 사례를 시간 순서대로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C 기업이 외국에서 현금인출기(ATM) 기술을 박람회에서 공개
– D 기업이 한국에서 현금인출기(ATM)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전국 은행에 판매
– A 기업(원고)이 한국에서 현금인출기(ATM) 기술을 특허출원(및 등록)하여 권리 획득
– B 기업(피고)이 한국에서 현금인출기(ATM)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판매
1) 드라마에서는 B 기업의 사장님은 특허권 침해를 피하기 위해 A 기업의 특허출원 이전에 판매되었던 D 기업의 현금인출기(ATM)를 찾아 나섰다. 제품이 전량 회수되어 D 기업이 판매한 제품을 증거로 찾는 데 고생을 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D 기업이 판매한 현금인출기(ATM)는 A 기업의 특허를 무효화하는 데 핵심 증거가 된다. 파악한 바로는, 실제 사례에서도 D 기업의 현금인출기(ATM)를 찾으면서 특허권 침해가 부정되며 분쟁이 해결된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실제 사례를 각색하면서 C 기업이 추가되었고, 여러 맹점이 발생하게 되었다. 옥에티라고 해야 할까.
B 기업의 목적은 A 기업의 특허를 무효화하는 것이다. 엄밀히는 특허법 제29조 제1항 및 제2항에 의한 무효 사유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자료를 찾는 것이다.
A 기업의 특허출원 전에 D 기업의 제품이 공개되었다는 사실은 A 기업의 무효자료가 된다. 하지만, C 기업이 등장하며 판세가 바뀌게 되었다. 특허제도는 속지주의를 따지지 않고 있으며, 특허발명의 신규성과 진보성 판단은 국가를 불문한다. 즉, 외국에서 공개된 C 기업의 자료도 A 기업의 특허 무효화를 위해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B 기업의 입장에서는 D 기업이 판매한 현금인출기(ATM)를 찾아 나서지 않고, C 기업이 공개한 자료를 활용하여 특허를 무효화하면 충분했다. 물론 반전과 극적인 스토리는 사라지겠지만, 특허적으로 바라볼 때는 그렇다.
2) 최근에 확립된 “자유기술의 항변”이라는 법리를 통해서도, B 기업의 수고를 줄일 수 있었다. (대법원 2016후366 판결) 실제 법적인 분쟁 과정에서 A 기업의 특허권을 무효화시키는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나온 우회책이다.
C 기업이 공개한 기술이나, D 기업이 공개한 기술과 A 기업의 특허발명을 대비하여 무효 여부를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 곧바로 B 기업 자신의 기술을 C 기업이 공개한 기술과 비교함으로써 법률 분쟁을 조속히 종결할 수 있었다.
대법원 판례에서도 “자유실시기술로서 특허발명과 대비할 필요 없이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라고 설시하였다는 점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지식재산권 소송을 드라마에서 쉽게 그려내기 위하여 많은 고민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실제 법적 분쟁은 더욱 복잡하게 진행되고, 이러한 과정을 드라마에서 모두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어떤 부분들이 실제 법적으로 쟁점이 되는지 정리해보았습니다.
조금은 생소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드라마를 보는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손인호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