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20’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의 37.3%가 해외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또, 해외사업을 하지 않는 스타트업의 70.2%도 해외 진출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렇게 해외 진출에 대한 열망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해외 진출 성공 여부의 불확실’로 나타났다. 당연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글로벌 진출은 기회인 동시에 그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익숙한 우리 문화와는 이질적인 해외 시장의 문화, 소비자의 습관을 이해해야 하는 큰 숙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물론, 언어의 장벽과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 부족 등도 도전을 망설이게 하는 요소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불확실성과 장애요소들을 극복하고 해외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한 스타트업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그들에겐 어떤 공통점이 있고, 그들의 전략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흔히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성공 요인으로 꼽는 것들이 있다. 비즈니스 확장성, 대상국의 문화 및 정책 파악, 현지 사업 파트너 활용 등이다. 즉, 사업 아이템이 얼마나 확장될 가능성이 있는지, 그리고 대상국 시장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현지화된 서비스를 내놓을 것인지, 또 이를 위해 현지 파트너와 어떻게 신뢰 협업 관계를 맺어 가느냐가 중요한 핵심 요소이다.
그런데 이에 앞서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 왜 우리는 해외에 진출해야 하는가? 왜 그 나라인가? 많은 스타트업이 수많은 강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실패하는 이유가, 이 질문에 대해 확실하고도 디테일한 답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즉, 해외 진출에 대한 확고한 목표와 명확한 타겟 국가 설정이 첫 번째 성공 전략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중동에 진출한 스마트팜 스타트업 엔씽의 사례를 보자. 이 회사는 자신들의 사업 모델에 꼭 맞는 해외 시장을 선택, 집중하는 전략을 통해 성공을 써가고 있다. 엔씽은 컨테이너 모듈형 수직공장, 사물인터넷 기반 자동화 운영 시스템, 식물 생장 Led 등의 자체 기술을 통해 잎채소와 허브류 등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국내에서 검증 받은 기술을 적용할 해외시장을 검토하던 중 그들이 선택한 곳은 바로 중동지역! 중동지역은 열악한 기후 환경으로 식량 자급률이 10%도 안 된다. 신선 채소와 과일은 대부분 유럽산 수입품에 의존한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로 국제 물류길이 막히자 중동 국가들은 ‘식량 안보’의 필요성을 느끼며, 첨단 농업 부문에 전폭적인 국가 재정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엔씽은 바로 이 기회에 집중하고 고민했다.
경쟁사인 미국의 스마트팜 모델은 넓은 건설 부지와 수천 억 이상의 초기 투자 비용이 필요하지만, 엔씽은 먼저 컨테이너 2동을 보내 사막의 여름을 버텨낼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빨리 증명해 보였다. 또한, 컨테이너 수직농장에서 생산된 잎채소를 현지 호텔과 고급레스토랑에 납품함으로써 중동에서도 자국산 신선 채소가 생산 판매될 수 있다는 확실하고도 획기적인 결과를 직접 증명해 낸 것이다. 이 덕분에 UAE에 모듈형 컨테이너 수직농장 100개 동을 올해 안에 수출할 예정인 것은 물론, 향후 중동 전역 스마트팜 시장의 30% 점유율을 목표로 성장해가고 있다.
동남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HR(인사 관리) 플랫폼으로 성장 중인 한국스타트업 스윙비의 사례도 있다. 이 회사는 아예 한국이 아니라 동남아시아를 타깃으로 잡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제품이 풀고자 하는 문제가 가장 큰 지역이 동남아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동남아 지역은 중소기업이 전체 시장의 95% 이상을 차지해 중소기업의 왕국으로 불린다고 한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낡고 낙후된 HR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거나 수기로 일일이 급여를 계산하는 업체가 대부분이었다. 오라클, SAP와 같은 글로벌 업체들의 HR 제품은 비싼 가격 탓에 도입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스윙비가 파고든 것이 이 지점이다.
스윙비의 소프트웨어는 직원 정보와 출퇴근 관리, 휴가 신청과 같은 기본 기능이 무료로 제공된다. 이것만으로도 연간 수천 달러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여기에 고급 기능인 급여 계산과 건강보험 추천을 유료로 제공해 동남아 중소기업의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서비스를 선보인 덕분에, 동남아 전역을 아우르는 서비스로 성장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처럼 기회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한국이 아닌 동남아에서 아예 창업을 시작한 과감한 판단이 현재의 성장을 일군 비결일 것이다.
인공지능 축구 영상 분석 기업 비프로일레븐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레알 소시에다드, AS로마 등 유럽 명문 구단을 비롯, 전세계 12개국 700개 팀을 고객으로 확보하며 고속 성장 중인 이 회사는 축구 본고장에서 승부를 보자는 확고한 목표 아래 독일에 진출한 케이스다. 이 회사가 개발한 축구 영상 분석 서비스는 4년 전 국내 유소년 리그 등에 먼저 적용해 좋은 평가를 받고 기술력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 회사는 국내에 채 자리 잡기도 전에 돌연 독일로 진출하는 과감한 도전을 감행했다. 이유는 바로, 국내 시장의 규모가 작아서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주변에서는 미쳤다는 반응까지 보였지만, 공동 대표 11명과 가족 전원이 독일로 이주해, 독일 하부 리그부터 적극 공략한 끝에, 전세계가 인정하는 서비스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만약 이들이, 축구 시장 규모가 작은 국내를 고집했더라면 현재의 성장이 가능했을까. 비프로일레븐처럼 우리 회사가 개발한 서비스와 상품이 국내 시장의 규모 등으로 한계가 있다면, 과감히 시선을 넓혀 해외 시장과 타겟 국가를 모색하고 발 빠르게 실행하는 행동력도 분명 필요할 것이다.
확고한 목표에 따른 명확한 대상국 선정, 그 다음으로 중요한 두 번째 성공 요인은 바로 철저한 현지화 전략이다. 현지화라는 말에는 무척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있다. 현지의 문화와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위해 현지인 인력도 확보하고, 그들의 눈높이로 생각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내놓는 전 과정이 해당될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열정과 끈기를 갖고 부딪혀서 일궈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설립된 스타트업 샌드버드는, 실리콘 밸리에 진출해 현재 채팅 서비스 분야 세계 1위 기업이 됐다. 기업 고객에 채팅 기능을 넣을 수 있는 API를 제공하는 이 회사는 곧 유니콘 기업으로 올라설 유력 후보이기도 하다. 샌드버드가 미국에 진출하면서 가장 집중한 것은 바로 현지화! 우선 언어 장벽을 없애기 위해 기술 및 제품 인터페이스를 모두 영어로 지원한 것은 기본이고, 한국과 미국의 비즈니스 관습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국에서는 고객과 관계 형성에 무게를 두지만 미국 사람들은 더 직접적이고 지체 없이 본론에 들어가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을 파악하여,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바꿨다고 한다. 메일 하나를 보내더라도 미사여구를 많이 쓰는 대신에 간단명료한 문장으로, 처음 두 줄에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다 담을 수 있게 했다. 이외에도 현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직접 미국에 거주하며 그들의 니즈를 파악한 것은 물론이었다.
현재 전 세계 50개국에 달하는 국가에서 해외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스타트업 센트비 역시, 현지화를 통해 성공을 거두고 있는 사례다. 센트비는 사업 초기부터 해외 고객들을 사로잡기 위해 철저히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생각하는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고 한다. 이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실시했던 사업 초기, 센트비 임직원들은 모두 함께 필리핀 장터에 매주 출석하며 직접 고객을 만났다. 종교 행사나 축구를 좋아하는 베트남 소비자를 대상으로 축구 대회를 개최하는 등 고객들이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가며 접점을 늘렸다. 다양한 은행·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을 때도 이러한 전략을 썼다고 한다. 한국과 비슷한 성향의 베트남 은행과는 회식을 통해 관계를 돈독히 다졌고 애국심이 투철한 인도네시아 은행에는 센트비 서비스가 재한 인도네시아인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설득하는 식이었다.
또한 국가마다 다른 문화적 특성에 맞게 고객 맞춤으로 수취하는 방법을 다양화해서 고객들의 불편함을 줄였다. 예를 들어 필리핀 고객들은 은행보다 전당포에서 돈을 수취하는 것에 익숙했기에 이들에게 맞는 방법을 제시하는 식으로 맞춤화한 것. 이렇게 철저히 현지인의 입장에서 현지인의 문제 인식(pain point)을 해소해주는 서비스를 낸 것이 이들의 성공 비결이 아닐까.
해외 시장은 분명 기회의 땅이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이 무수히 발생하는 만큼 확고한 목표 의식과 해당 국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현지화 노력이 없다면 결코 성공의 열매를 맺기 어려울 것이다. 앞서 언급한 스윙비의 최서진 대표가 한 말이 인상적이다. “글로벌 비즈니스란 없다. 다양한 로컬비즈니스만이 있을 뿐이다“. 결국 스타트업 해외 진출의 성패 여부는 대표와 핵심 인력이 얼마큼 해당 현지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현지인처럼 생각하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그 부분이 부족하다면 현지 조직을 만들어서라도 로컬라이징을 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박재승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