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기일수록 ‘문제 진단’에 더 집중하세요!
사람이 유혹에 가장 취약해지는 시기는 언제일까요? 불안감에 휩싸일 때입니다. 불안하면 조급해지거든요. 마음이 조급한 상황에서는 충분한 고민을 거쳐 결정한 행동보다 ‘빨리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행동을 먼저 취하게 됩니다. 인생에 지름길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름길을 찾고, 노력 없이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달콤한 제안에 쉽게 흔들립니다. 마음이 평온한 상태일 때는 상식으로 여기던 것들을 잠시 망각하게 되는 거죠.
저희를 찾아오시는 클라이언트분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사업에 대해 ~한 고민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함께 해결해 주실래요?
사업에 대해 ~한 고민이 있었는데, 나름의 해결책 (퍼포먼스 마케팅을 제대로 못했던 것 같아, 상세페이지가 문제였어, 새로운 판매 채널이 필요해, SNS 콘텐츠가 필요해…)을 찾았고, 이걸 더 잘하는 곳에 맡기고 싶어요.
저는 어떤 액션을 취해야겠다고 이미 결정하신 분들께도 이걸 하려고 하시는 이유가 뭔지 꼭 한 번 여쭤보는 편입니다. 일의 맥락을 알고 해야 일을 더 잘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이걸 하면 정말 원하시는 목표를 이룰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이유가 더 큽니다. 클라이언트분들께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들면 저도 보람을 느끼고 더 열심히 할 수 있으니까요.
기존에 하고 계신 마케팅의 어떤 점이 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 크라우드펀딩을 하시려는 이유는 뭔가요? 상세페이지를 다시 만드는 목적은 뭘까요? 이런 질문을 시작으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지금 겪고 계신 문제 자체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내부적으로 내린 결론이 사실 그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는 결론이었다는 것을 발견할 때도 있죠. 클라이언트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매출이 주춤해서 생긴 불안감이 ‘지금 당장 뭔가를 해야 해. 되도록 빨리 결과가 나오는 걸로’라는 결론을 부추긴 것이죠. 저는 그 안에 속해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 조급함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뿐이고요.
매출이 주춤할 때, 야심 차게 준비한 신제품이 팔리지 않을 때, 오랜 시간 공들인 캠페인의 효과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을 때. 이렇게 마음이 조급해질 때는 ‘잠깐 멈춤’이 필요합니다. 당장 어떤 행동을 하는 것보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죠.
곧바로 외부 전문가를 찾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특정 분야에서만 활동하는 에이전시와는 상담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검색광고를 팔아야 하는 영업사원은 검색광고 세팅이 잘못되어 있다고 말할 겁니다. 상세페이지를 팔아야 하는 디자이너는 상세페이지 임팩트가 약한 것이 문제라고 하겠죠.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일을 따내지 못합니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넓은 관점에서 문제를 진단할 수 있는 컨설턴트를 찾으면 좋지만, 그전에 스스로 문제를 진단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대응이 너무 늦으면 안 되니 시간은 딱 한 시간만 투자합니다. 이미 모든 내부 사정을 알고 있는 분들이 참여하면 1시간은 그렇게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럼 문제 진단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쉽지만 다양한 기업에 모두 적용할 수 있는 ‘문제 진단 템플릿’ 같은 건 없습니다. 제가 제안하는 문제 진단의 시작은 [고객의 맥락 점검]입니다.
일에 몰입하다 보면 기업의 구성원들은 ‘기업의 입장’만 고려해 판단하고 움직이게 됩니다. 기업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들을 이어나가죠. 내부에서 보면 모두가 일을 잘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기업의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들이 고객의 입장에서도 반드시 합리적이진 않습니다. 어떤 선택은 기업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거나, 반감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 (기업) “단기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프로모션 빈도를 좀 높여보죠.” : (고객) “이 브랜드 요즘 세일 자주 하던데. 정가 주고 사기는 좀 아깝네… 친구랑 같이 기다렸다가 세일할 때 사야지”
- (기업) “물류창고 박스 크기를 전부 통일하면 배송 속도를 더 효율적으로 높일 수 있어요.” : (고객) “이거 하나 샀는데 이렇게 큰 박스가 와?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네… 여기는 환경 생각을 아예 안 하나?”
- (기업) “주부들이 요즘 ㅇㅇ청소가 힘들다고 해서 이걸 해결할 특별한 세제를 개발했어요. 대박 날 것 같아요” : (고객) “어제 네이버 카페에 보니까 ㅇㅇ 청소하는 꿀팁이 있더라? 집에 있는 재료만 조합해도 충분히 깔끔하게 할 수 있던데? 너도 한 번 해봐. 엄청 쉬워.”
문제가 어느 한 부분에만 한정되어 있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빨리 그걸 개선할 방법을 고민하면 되니까요. 잦은 프로모션이 문제라면 혜택률, 명분, 기간, 제품 구성 등을 조절해 ‘정가에 사면 손해’라는 인식을 지우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면 됩니다. 박스 크기가 문제라면 배송 물품의 크기에 따라 박스 크기를 4~5단계로 조금 더 세분화해 낭비되는 느낌을 줄일 수 있겠죠. 우리가 개발한 제품의 매력도가 다른 대안에 의해 떨어졌다면, 가격을 조정하거나 다른 대안보다 더 편리함을 강조할 수 있는 요소를 추가하면 됩니다.
만약 고객이 경험하는 구매 과정 전체에 문제가 고루 분포되어 있다면? 이러면 일이 커집니다. 단기적인 대책으로는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기업이 설계한 경험들 사이에는 대부분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설계를 다시 해야 할 수도 있죠.
이렇게 고객의 맥락을 다시 점검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기업의 맥락까지 함께 점검하게 됩니다. 올바른 진단 과정을 거친 뒤의 액션은 한층 더 탄력을 받을 수 있죠. 이런 문제들을 외면하고 당장 광고를 늘리고, 상세페이지를 바꿔봐야 매출은 오르지 않습니다. 늘어나는 지출에 불안감만 더 커질 뿐입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더 확실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좋다고 하는, 어디선가 들었던 ‘비책’들을 실천하기 전에 딱 한 시간만 투자해 지금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모두에게 다 들어맞는 비책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 게 있으니 빨리 해야 한다고 느껴진다면 내 마음이 불안한 겁니다.
지금 하려는 일이 ‘아무 고객’이 아닌 ‘우리 고객’을 위해 필요한 일인가?
다른 기업의 문제를 해결했던 저 방법이 지금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도움이 되는가?
참고할만한 사례가 없다면, 우리만의 새로운 해결책은 무엇일까?
행동은 이런 생각이 정리된 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박상훈 (플랜브로)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