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업계에 “토큰증권(STO: Security Token Offering)”이 화제이다. 이제 부동산, 미술품, 저작권까지 다양한 자산을 토큰화하여 증권 형태로 거래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토큰증권(STO)은 기업이나 개인이 소유한 자산을 담보로 토큰증권을 발행해, 기존의 증권처럼 자금을 조달하는 제도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증권을 디지털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존에는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정형적인 증권만을 거래했다면, (i) 이제는 조각투자와 같이 새로운 형태의 증권도 제도권 내로 포함시키고, (ii) 전자증권 이외에도 토큰증권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토큰증권을 통해 토큰과 연동된 자산의 분배나, 이익의 분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자산”은 실물자산(부동산, 미술품, 한우), 무형자산(저작권, 특허 등 지식재산권), 비유동자산(주식, 채권)을 포괄한다.
조각투자는 여러 명이 하나의 자산을 나누어 투자하는 개념이다. 고가의 미술품이나 부동산, 그리고 형태가 없는 음악 저작권을 조각내어 투자하면서 손쉽게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100억 원 빌딩을 살 수는 없지만, 빌딩의 지분을 0.01% 정도 소유하는 대안을 생각해 보자. 전체 수익을 가질 수는 없지만, 내가 가진 지분의 비율에 따라 수익을 배분받으며 투자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혼자서는 개미이지만 함께라면 슈퍼 개미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투자자의 진입 장벽을 낮추어주는 효과가 있다. 시장에는 더욱 많은 자금이 유통되는 선순환이 된다.
기존의 부동산 시장에서는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이 있었다. 리츠(REIT: Real Estate Investment Trust)라고 하여, 자산관리회사에서 부동산을 매입, 운영하고 수익을 배분하며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제는 새로운 플랫폼과 스타트업의 등장으로 투자 대상이 부동산에서 미술품이나 한우, 그리고 음악 저작권까지 투자 대상과 투자 형태가 계속 진화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기존에는 없었던 새로운 방식이기에 제도권 금융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뮤직카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뮤직카우는 가수와 작곡가가 가지고 있는 저작권을 양도받아, 조각투자의 시장을 열었다. 개인 투자자에게 저작권료를 분배받을 수 있는 권리를 판매하고, 이러한 권리를 투자자끼리 사고팔 수 있는 플랫폼을 운영하였는데, 여기서 ‘수익 분배 권리’의 성격이 무엇인지 다투어진 것이다. 결국 이 권리는 ‘증권’의 성격으로 규정되었다. 이에 따라, 자본시장법상 증권 규제를 적용받고 제도권으로 합류되며 분쟁은 마무리되었다.
공유경제와 공동구매가 활성화되며 내가 가진 물건을 공유하고, 혼자서 할 수 없었던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서 조각 투자는 유행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최근에는 배달비를 나누어 내는 문화도 생겼을 정도로 우리는 늘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을 찾는다.
‘조각투자’와 같이 새로운 형태의 수익증권이나 투자계약증권의 등장은 잠시 혼선이 있었지만, 순조롭게 제도권 내로 유입되는 모양새다.
30년 전 삼성전자 주식을 사두고, 장롱을 정리하다가 종이 증권을 발견했다는 할아버지 이야기가 있었다. 본의 아니게 30년 장투 끝에 거물급 투자자가 된 이야기다. 누군가의 농담일 수도 있겠다. 이 이야기는 증권의 발행 형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주식은 회사의 지분증권이다. 회사가 얻는 수익을 배분받는 권리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종이에 이러한 권리를 기재하고, 종이 증권에 금액이나 일련번호를 기입함으로써 증권 거래가 가능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며 화폐를 실물이 아닌 무형의 데이터 형태로 주고받는 것이 가능해졌다. 실물증권에서 전자증권의 시대를 연 것이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나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통해 클릭 한 번으로 주식 거래가 가능한 것도 불과 몇십 년 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동일한 “증권”이라도, 발행 형태에 따라서 다른 방식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실물증권이라면 증서에 기재하여 사람 간에 직접 거래를 하여야 하고, 전자증권이라면 디지털 금융 시스템에 의해 계좌부에 기재하여 디지털 방식으로 거래를 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우리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 온 모습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등장은 우리의 삶을 또다시 바꾸고 있다. 분산원장 기술(DLT: Distributed Ledger Technology)로 불리는 블록체인은 거래 정보를 기록한 원장 데이터를 중앙 서버가 아닌 참가자들이 공동으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토큰증권(STO)은 중앙 집중식 금융 시스템에서 탈피하여, 분산 원장에 관련 내용을 기재하는 방식으로 증권을 거래할 수 있게 해 준다. 기술적으로 보면 증권을 디지털화한 것에서는 동일하며, 기재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밥을 먹을 수 있는 새로운 도자기 그릇이 밥상에 올라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토큰증권(STO)은 기존의 주식을 거래할 때에도 쓰일 수 있지만, 조각투자와 같이 지분관계나 법적 권리가 복잡한 새로운 형태의 증권에 더욱 적합한 발행 형태이기도 하다.
지식재산권은 무형자산이자, 우리의 머릿속에서 나온 지적 창작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권리이다. 기술과 아이디어, 브랜드, 디자인과 저작물까지 다양한 인류의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이 종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복잡한 성격을 가진다.
부동산을 여러 명이 나누어 소유한 것과, 지식재산권을 여러 명이 나누어 소유한 것은 법적인 의미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특허법에는 공유자의 행동을 제약하는 여러 규정이 있다. 여러 명이 특허권을 공동으로 소유한다면, 누군가 혼자서 지분을 양도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 공동연구로 연구자가 발명을 공동으로 하였다면, 특허를 획득하는 과정에서도 단독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공유인 경우에는 공유자 모두가 공동으로 특허출원을 하여야 한다. (특허법 제44조)
■ 특허권이 공유인 경우에는 각 공유자는 다른 공유자 모두의 동의를 받아야만 그 지분을 양도하거나 그 지분을 목적으로 하는 질권을 설정할 수 있다. (특허법 제99조)
지식재산 제도가 부동산과 같은 다른 자산과 달리 지식재산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두고 있는 이유는 누군가의 단독 행동으로 다른 공유자가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뮤직카우에서 거래되는 저작권은 정확히는 ‘저작권료 참여 청구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해당 음악의 저작권으로부터 발생되는 수익을 구매한 지분 비율로 지급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저작권자가 저작권을 쪼개서 그 지분을 판매하는 방식을 적용하는 경우, 투자자는 저작재산권의 공유자의 지위를 가지게 된다. 저작재산권자 전원의 합의로 권리를 행사해야 하고(저작권법 제48조 제1항), 지분 비율과 상관없이 전원의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소수 지분을 취득한 공유자 1명이라도 해당 음악의 유통을 반대할 경우에는 유통이 금지될 수 있다는 제약이 생긴다.
최근 상장을 준비하는 아이디어허브(IDEAHUB)라는 특허관리 기업도 표준특허를 이용한 수익을 투자자에게 분배하기 위하여, 회사채의 형태로 증권을 발행하였다. 특허권의 공유로 인한 제약에서 자유로우면서도 수익 분배를 쉽게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지식재산 제도가 권리자를 보호하는 환경이, 투자자에게 투자 환경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지점이다. 지식재산 제도의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금융 환경을 개선하는 창의적인 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렇게, 토큰증권(STO)의 발행은 ‘지식재산권’ 자체를 공유한 것이 아니라, 수익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투자계약을 하고, 이러한 권리를 블록체인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조금 더 유동적인 투자의 기회를 열고 있다.
손인호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