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테크 스타트업 바풀의 디자이너 JASON YOO가 블로그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 디자인 의도와 포인트
스타트업의 제품은 작다. 물론 다양한 요소와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진 제품도 있다. 하지만 실제 제품의 가치는 작다. 시장 점유율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고, 사용자의 규모도 작다. 지금까지 증명한 것보다 앞으로 증명해야 할 것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사용자의 피드백은 놀랄 만큼 다양하고, 사무실에서도 매일 크고 작은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 업무도 중심 잡기가 힘들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일하면, 결과적으로는 여러 가지 넣고 싶은 것들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제품이 된다. 디자인해놓고도 이게 뭐하는 앱인지, 이 페이지는 왜 필요한지 나중에 의구심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특히 릴리즈하고 업데이트를 하면 할수록 그런 의구심이 커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 전에는 페이지마다 퀄리티에 굉장히 신경을 쏟았다. 하지만 요즘은 퀄리티는 안 좋게 말하면 뒷전이 되었다. 문제는 페이지마다 의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포토샵에서 뭔가 그리기 전에 의도부터 생각해야 한다. 어떤 근거에서, 또 어떤 기대로 의도하는 것인지. 다음은 그 의도를 하나의 포인트로 함축해야 한다.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듣는 사람에게 장황하게 설명하면 잘 전달될 수 없다. 그래서 그 의도가 버튼이든 일러스트든 다른 무엇이든 하나의 포인트로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의도 자체를 많이 또는 깊게 하면 또 어려워진다. 이제 성장해야 하는 제품에서 의도가 많으면 하나도 못 잡고 가기 쉽상이다. 또 의도가 너무 깊으면 만드는 사람조차 해석하기 힘들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만드는 속도가 느려진다. 그래서 ‘페이지마다 얕은 곳부터 하나씩만 잡고 가자’는 게 실무에서 목표가 되었다. 좀 더 고차원적인 것들은 회사가 더 성장하고 더 많은 사람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과정은 팀원들과 커뮤니케이션할 때도 대단히 많은 영향을 끼친다. 말하기 전에 전달하려는 의도와 그 포인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되기 때문이다. 단지 시안이나 감상부터 던지는 게 아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도 이해가 쉽고, 또한 같은 커뮤니케이션 구조에서 좀 더 명확한 반응이나 비평을 얻을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기획자 + 디자이너 + 개발자의 조합은 제품 제작을 위한 하나의 유기체였다. 하지만 벤처 또는 스타트업같이 작은 회사들이 생기면서 그런 유기체가 무너지고 있다. 먼저 기획자가 만들던 와이어프레임은 구성원 간의 커뮤니케이션과 스케치로 대체되었다. 디자이너의 업무도 마찬가지다. 디자이너가 없어도 어느 정도의 디자인은 구현할 수 있도록, 모바일앱 개발툴에서 자체 UI 라이브러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단 돈 몇 불이면 각종 UI Kit과 Icon Set을 사다 쓸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실무에서 역할 감소뿐만 아니라 디자이너 역할 자체의 비중이 줄었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 얼리 스테이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디자인은 제품의 가치를 높이지만, 가치의 증명을 판가름하지는 못한다. 쉽게 말해 디자인이 좋아도 안될 건 안되고, 디자인이 나빠도 될 건 된다.
그리고 제품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정말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스타트업에서는 제품의 핵심적인 부분이라도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또한, 여러 피드백에 따라 빠르게 시도하고, 빠르게 변해야 한다. 그런데 디자인에 지나치게 신경쓰면 스텝마다 짧게는 1주에서 길게는 얼마나 더 걸릴지도 모른다. 목업만들고, 수정하고, 애셋, 스펙, 애니메이션 구현하고, 실제 제품에 적용하고… 디자인을 위한 이런 복잡한 단계들이 때로는 스타트업들에게 독이 될 수 있다.
디자인이 정말 힘을 발휘하는 스테이지는 제품의 가치가 어느 정도 증명되었을 때, 유의미한 트래픽이 발생하고 있을 때라고 생각한다. 즉 증명한 가치를 크게 증폭시켜야 할 때다. 앞서 말한 대로 디자인이 안될 것을 되게 만들어주지는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된 것은 더 크게 만들어준다. 사용자가 한 번씩 누르던 버튼을 2번, 20번씩 누르게 만드는 것, 사용자가 10초씩 보던 화면을 1분씩 보게 하는 게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보통 좋은 디자이너들은 픽셀 하나하나에 굉장히 집중한다. 나쁘게 표현하면 집착이겠지만, 나쁘게 표현하면 안되는 훌륭한 태도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스타트업에서 때로는 독이 될 수 있다. 물론 정해진 시간 내에서는 최대한의 퀄리티를 추구해야겠지만, 말한 것처럼 정해진 시간 내에서다. 그래서 디자인 일정을 잡기 전에 비즈니스 파트에서 요구하는 일정, 그리고 프로그래머가 필요한 일정을 먼저 따져야 한다. 이후에 디자인 일정을 잡고, 그 일정에서 가능한 최대의 퀄리티를 내면 된다. 일단 우선순위의 요소들만 페이지에 나오면 된다. 그 나머지의 디테일이나 애니메이션, 각종 아트웍들은 나중 이야기다.
스타트업에서 디자이너는 디자인의 퀄리티보다 비즈니스의 타이밍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