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을 설계하세요
2주 뒤 여름휴가로 괌 여행을 떠나는 민아 씨. 눈부신 바닷가에서 예쁜 옷을 입고 인생샷을 남길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렙니다. 휴양지에서는 역시 원피스죠. 평소 봐두었던 인스타그램 속 셀럽들의 사진, 연예인들의 화보가 머릿속을 스칩니다. 민아 씨는 쇼핑을 위해 스마트폰을 집어듭니다.
민아 씨는 아마 이런 과정을 거쳐 마음에 드는 원피스를 구매하게 될 겁니다.
사진첩을 뒤칙이면서 평소 마음에 들어 캡처해 둔 원피스가 있었는지 확인한다
자주 이용하는 의류 쇼핑몰 앱에서 원피스 카테고리를 훑어본다
포털에서 ‘여름 원피스’, ‘휴양지 원피스’ 등의 키워드를 검색해 본다
팔로우하는 인플루언서들이 입었던 옷의 브랜드 정보를 찾아 공식몰에 들어가 본다
상황별 패션 코디와 가격대별 아이템을 잘 추천해 주는 패션 유튜브 채널과 블로그를 다시 찾는다
이전 글들에서 언급한 매체 운영과 신뢰의 축적은 고객의 구매 여정에서 큰 힘을 발휘합니다. 민아 씨를 타깃 고객으로 삼고 있는 브랜드 A가 있다고 해볼까요? A 브랜드가 매체 운영을 제대로 하고 있다면 민아 씨는 정보를 찾는 과정에서 A 브랜드 사이트에 한 번은 접속할 겁니다. 적절한 원피스가 있다면 그 제품을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고민을 이어가겠죠. 그러던 중 민아 씨가 동경하는 연예인이 A 브랜드의 높은 품질을 방송에서 언급(=신뢰를 주는 요소)하는 일이 생긴다면? 민아 씨는 다양한 선택지 중 A브랜드의 원피스를 최종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탐색 과정에서 다른 제품보다 A 브랜드 제품의 가격대가 더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선택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겁니다.
매체 운영을 통해 평소 타깃 고객과 친분을 쌓아두면 구매 여정이 시작될 때 그들의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타깃 고객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요소를 다수 갖추면 그들에게 최종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친분과 신뢰는 기업이 광고에 의지하지 않고도 고객을 확보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는 작은 기업은 물론 큰 규모의 기업도 장기적 관점에서 반드시 쌓아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여기에만 의지할 수는 없습니다. 당장의 매출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병행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돈을 쓸만한 고객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합니다. 비용을 써서라도 그들을 만나 구매를 권해야 합니다. 되도록이면 우리가 말을 거는 그 순간에 구매까지 이어지도록 설득해야 비용을 아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고객이 우리를 만나는 그 순간에 ‘바로’ 지갑을 열게 만들 수 있을까요?
영화나 소설 속 주인공은 주어진 난관을 극복하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룹니다. 고객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 돈을 씁니다. 지금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 놓여있다면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돈을 씁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면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돈을 씁니다. 기업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고객을 주인공으로 만들며 그들의 구매를 유도합니다.
고객의 문제를 보여주고 기업의 해결책을 제안하는 패턴은 거의 모든 디지털 광고와 상품 소개 페이지에 적용되어 있습니다. 하루 종일 내린 비에 신발이 다 젖어 집에 돌아온 고객에게 ‘앞으로 1주일은 비 온다던데… 출근길 필수 샌들 ㅇㅇㅇ 내일 바로 배송!’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거죠. 샌들을 살 생각이 없던 고객이라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이 메시지에는 강하게 반응합니다. 오늘의 찝찝함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고객은 바로 이 샌들을 주문합니다.
문제를 자극하기 힘든 제품군은 고객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자극합니다. 없어도 큰 문제가 없는 명품 브랜드는 온라인 매체와 오프라인 매장 모두에 고객의 열망을 녹여냅니다. 더 아름답고, 더 고귀하고, 더 세련된 이미지를 내세우며 ‘우리에게 돈을 쓰면 당신도 이렇게 될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이미지에 사로잡힌 고객은 명품이 없는 자신의 상황을 문제라고 여기게 됩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기꺼이 몇 백만 원을 지불합니다.
백화점의 의류 매장, 마트의 시식 코너 등 오프라인에서 직원들은 고객이 제품을 직접 경험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합니다. 예쁜 옷을 입어본 고객은 그 옷을 입고 모임에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시식해 본 고객은 그 음식을 먹는 우리 가족의 웃는 얼굴을 떠올립니다. 돈을 쓰는 장소에 찾아온 고객의 맥락 속에 적극적으로 제품을 집어넣으면 고객은 이상적인 상황을 상상합니다. 입어본 옷과 먹어본 음식은 어느새 고객에게 ‘꼭 필요한 제품’이 되어 쇼핑백에 담깁니다.
작은 기업도 고객을 주인공으로 만들면 그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고 소액으로도 실행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합니다.
앞에서 만들어두었던 마케팅 메시지 자료를 다시 꺼내듭니다. 모든 카피는 그 마케팅 메시지를 기반으로 만듭니다. 그게 우리 기업이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가치니까요. 알맹이 없이 ‘어그로’를 끄는 메시지는 매출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디지털 광고는 cpc 방식으로 과금됩니다. 우리는 한정된 예산으로 최대의 성과를 올려야 합니다. ‘제품을 봐도 구매할 가능성이 낮은 고객’은 과감하게 포기합니다. ‘제품을 보면 구매할 가능성이 높은 고객’만 우리 광고를 클릭할 수 있게 만듭니다. 그러려면 메시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적어야 합니다.
원피스를 전문으로 만드는 패션 브랜드에게 위에서 등장한 민아 씨는 최고의 타깃 고객입니다. 제품 중 휴양지에 딱 어울리는 원피스가 있다면 민아 씨를 찾아가 우리 제품을 권해야 합니다. 아래의 두 광고는 모두 브랜드가 내세우는 가치에 기반한 카피지만 그 구체성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민아 씨는 어떤 소재에 더 강하게 이끌릴까요?
소재 1 : 다양한 원피스 착용샷 4 분할 + ‘고품질 자체제작 원피스 전문숍 (브랜드명)’
소재 2 : 바닷가에서 예쁜 몸매가 드러나게 찍은 모델의 착용컷 + ‘이거 입고 휴가 가서 프사 다 바꿨어요’ + 바다의 시원함을 담은 (브랜드명) 비치 원피스
우리 브랜드가 모든 원피스를 취급한다고 해도 광고는 제품 단위로 좁게 합니다. 품질이 좋다, 소재가 좋다, 디자인이 예쁘다 등 어느 브랜드나 내세우는 소구는 고객에게 전혀 와닿지 않습니다. 개별 제품의 소구점에 기반해 고객의 상황을 한층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카피를 사용하세요. 고객이 이 제품을 통해 얻으려는 긍정적인 결과를 함께 드러내면 좋습니다. 광고에서 주는 기대감이 그 광고를 클릭한 뒤에 마주하는 랜딩페이지에서 (휴가지에서 이 옷을 입은 여성들의 다양한 이미지 + 좋은 품질 + 예쁜 디자인 + 시원한 소재까지) 충족된다면 구매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더욱더 높아집니다.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직접 경험하게 만들면 단순 광고보다 훨씬 더 강하게 구매 욕구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직접 경험은 고객이 제품을 사용하는 자신의 모습을 직접 보거나 아주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만듭니다. 온라인 구매 시 겪는 의심과 불안을 대부분 없애 고객의 이탈을 줄여주기도 하죠.
오프라인 매장을 직접 차리거나 힙한 지역에 팝업 스토어를 여는 건 비용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땐 우리와 비슷한 타깃 고객을 만족시키고 있는 작은 오프라인 브랜드를 찾아보세요. 카페도 좋고 옷가게도 좋습니다. 그곳에 우리 브랜드와 타깃 고객을 설명하고 양사에 이익이 될 수 있는 공간 이용 방식을 논의해 작게라도 시작해 보세요. 우리의 고객이 그 브랜드를 알 수 있게 하고, 그 브랜드의 고객이 우리를 체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을 공통의 목표로 설정하면 좋은 아이디어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우리 카테고리를 다루는 단기 오프라인 행사나 전시회에 참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공간 없이 시도할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고객이 브랜드의 핵심 역량을 파악할 수 있는 체험용 키트를 만들어 판매해 보는 겁니다. 디퓨저를 파는 곳이라면 5가지 향을 뿌린 시향지를 각각 밀봉한 후 고객에게 보내볼 수 있습니다. 고객은 부담 없는 가격으로 향을 경험해 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제품의 종류에 따라 샘플을 무료로 배송해 주거나 일정 기간 사용 후 환불을 보장해 주는 방식도 활용해 볼 수 있습니다.
디지털 서비스의 경우 한정 기간 동안 사용해 볼 수 있는 체험판을 만들어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적에 맞게 제품을 써봤을 때 그 제품의 강점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미 다양한 기업에서 실행하고 있는 전략이므로 참고 사례를 최대한 많이 보면서 우리 브랜드에 맞는 방식을 찾아갑니다.
프로모션도 즉시 구매를 권유하는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명분과 시기가 중요합니다. 매출이 안 나온다고 치밀한 계획 없이 가격 할인을 진행하면 브랜드의 이미지만 손상됩니다.
고객의 입장에서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는 프로모션을 기획해야 합니다. 잦은 세탁을 위해 ‘여러 벌 소유하면 좋은 기본 반팔 티셔츠’는 1+1+1의 프로모션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직장인들이 휴가를 준비하는 시즌’에 맞춰 호캉스 필수템 기획전을 열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싸게 판다’가 아니라 고객에게 더 큰 가치를 주기 위해 ‘준비했다’는 느낌을 줘야 합니다.
프로모션을 기획할 때는 기존 구매 고객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습니다. 일찍 구매했다가 손해를 봤다는 사실을 알고 좋아할 고객은 없습니다. 프로모션 없이도 우리를 믿고 선택해 준 고객을 지키는 게 프로모션으로 새로운 고객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입니다. 기존에 팔던 제품의 가격을 깎는 방식보다는 새로운 구성을 마련하거나 재구매 고객에게 혜택을 더 주는 쪽으로 기획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일 거래 금액이 큰 기업 고객을 상대하는 비즈니스라면 세일즈 과정에 그들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경험을 녹여낼 수 있습니다. B2B도 결국 기업에서 일하는 ‘실무자’와 ‘대표’라는 사람을 상대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면 되죠.
여러 기업에 견적서를 요청해 비교 후 결제까지 가는 번거로운 실무자의 일에 힘을 보태주면 어떨까요? 우리 기업과 다른 몇몇 기업들의 가격, 경쟁 우위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그래프를 만들어 견적서에 첨부해 주는 겁니다. 서비스에 대한 자신감은 물론 고객의 관점까지 세심하게 챙기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웹사이트에서부터 그들의 성공을 도울 적임자임을 어필할 수도 있습니다. 기업 고객이 자주 겪는 문제와 이에 대한 전문적인 의견을 콘텐츠로 만들어 공개해 두면 우리의 풍부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알릴 수 있습니다. 계약 전 고객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가벼운 대화 경험을 설계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고객의 니즈를 파악할 수 있는 간단한 설문을 제시한 뒤 설문에 응한 고객에게 맞춤 리포트를 무료로 제공하는 거죠. 이런 세심한 세일즈 프로세스가 화려한 포트폴리오 나열보다 더 큰 임팩트를 줄 수 있습니다. 고객에게는 다른 기업을 어떻게 도왔는지보다 우리 기업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가 훨씬 더 중요하니까요.
구매를 권할 땐 고객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세요. 우리에게 돈을 쓰면 지금 당신이 원하는 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세요. 메시지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면 타깃 고객이었던 그 누군가는 여러분의 진짜 고객이 되어줄 겁니다.
박상훈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