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IP’가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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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살 수원화성, 힙한 ‘콘텐츠 맛집’으로 리브랜딩 중?
수원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 아니면 줄 서서 먹는 왕갈비 통닭? 사실 수원은 우리에게 꽤 익숙한 곳이죠. 그런데 올해, 이 익숙한 도시가 심상치 않습니다. 축성 230주년을 맞이해 수원이 도시 전체를 ‘거대한 콘텐츠 테마파크’로 통째로 갈아엎고 있기 때문인데요.
단순히 “구경 오세요”라고 외치는 지자체 홍보가 아닙니다. 먹고, 사고, 감성까지 챙기는 영리한 ‘경험 설계’가 곳곳에 숨어있죠. 마케터의 눈으로 본 수원의 힙한 변신, 그 맛있는 비결을 하나씩 뜯어봤습니다.
우리는 흔히 도시를 공간으로 인식하지만, 브랜딩의 관점에서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IP입니다. 축성 230주년을 맞은 경기도 수원은 이 거대한 역사적 IP를 단순 관람의 대상에서 ‘참여형 콘텐츠’로 리브랜딩하며 도시 브랜딩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통닭거리가 영화 <극한직업>이라는 외부 콘텐츠에 기댄 수동적 상권이었다면, 지금의 수원은 이를 ‘K-미식 벨트’라는 자체 콘텐츠로 내재화하고 있습니다.
수원이 추진하는 ‘치킨 만들기 체험’과 ‘미식 가이드 투어’는 단순한 시식 그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마케팅에서 고객의 참여는 브랜드에 대한 강력한 심리적 소유권을 부여합니다. “내가 직접 튀겨본 수원의 맛”이라는 서사는 일회성 방문객을 브랜드의 전도사로 바꿉니다.
‘1박 2일 체류형 투어’는 관광객의 점유 시간을 확보하려는 전략입니다. 도시는 방문객이 머무는 시간에 비례해 수익을 창출하며, 이는 숙박과 주변 골목 상권으로 흐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듭니다.
요즘 가장 힙한 로컬 브랜딩의 정점을 보고 싶다면 단연 행궁동(행리단길)입니다. 이곳은 단순히 예쁜 카페 거리를 넘어, 230년 된 성벽이 카페의 담벼락이 되고 낡은 구옥이 감각적인 쇼룸이 되는 ‘타임슬립 콘텐츠’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수원이 가진 ‘힙(Hip)’한 정체성은 바로 이 행궁동이라는 공간에서 완성됩니다.
역사 문화 규제로 인한 ‘고도 제한’은 역설적으로 행궁동만의 독보적인 무기가 되었습니다. 높은 빌딩 숲 대신 낮게 깔린 한옥 지붕과 넓게 트인 하늘, 그리고 그 위를 수놓는 성곽 라인은 서울의 어떤 핫플레이스도 흉내 낼 수 없는 비주얼 자산입니다. 이 탁 트인 스카이라인은 방문객에게 시각적 해방감을 주며, 끊임없이 인스타그램의 UGC(사용자 생성 콘텐츠)를 재생산하게 만드는 핵심 동력이 됩니다.
‘팝업 스토어화’된 골목 오래된 골목 사이사이에 숨은 독립 서점, 빈티지 소품샵, 그리고 드라마 <그해 우리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촬영지들은 동네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테마파크처럼 작동하게 합니다. 걷는 모든 발걸음이 콘텐츠가 되는 이곳에서 MZ세대는 과거의 흔적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이 주는 ‘지금 이 순간의 감성’을 향유합니다. 구옥을 개조한 카페들은 그 자체로 상시 운영되는 팝업 스토어처럼 기능하며 매번 새로운 고객 경험을 선사합니다.
‘뉴트로(New-tro)’를 넘어
독보적 브랜딩 마케팅 관점에서 행궁동은 단순한 복고가 아닙니다. 옛것을 박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위에 요즘 세대의 감각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덧칠해 ‘수원다움’이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구축했습니다. 과거의 묵직한 하드웨어와 현대의 트렌디한 소프트웨어가 충돌하며 발생하는 에너지를 콘텐츠로 승화시킨, 로컬 브랜딩의 가장 모범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원은 지자체 굿즈가 가진 ‘촌스러움’이라는 한계를 ‘디자인 인증제’라는 시스템으로 정면 돌파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역사(수원화성) + 스포츠(KT 위즈, 수원 FC) IP의 결합입니다. 스포츠 팬덤은 충성도가 매우 높습니다. 이들을 지역 브랜딩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구단 유니폼을 공식 굿즈 라인업에 포함시킨 것은, 타겟층을 다각화하고 브랜드의 역동성을 확보하는 매우 영리한 전략입니다.
기와 모양 파우치나 성곽 책갈피처럼 일상적인 제품에 지역의 원형을 녹여내는 방식은, 브랜드 정체성을 소비자의 일상 속으로 침투시킵니다. 굿즈는 더 이상 기념품이 아니라, 수원의 세계관을 소유하는 매개체입니다.
벚꽃 명소인 팔달산 남포루 앞에 설치된 ‘느린 우체국’은 디지털 시대에 가장 강력한 아날로그 마케팅 수단입니다.
3개월 뒤에 배달되는 엽서는 잊혀가는 여행의 감흥을 강제로 소환합니다. 이는 단순한 추억 회상이 아니라, 재방문을 유도하는 강력한 푸시 알림(Push Notification) 역할을 합니다.
봄을 맞아 정조대왕 동상을 세척하고 성곽길을 정비하는 일련의 과정은 도시의 ‘첫인상’을 관리하는 행위입니다. 잘 정돈된 공간은 방문객에게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며, 이는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으로 연결됩니다.
결국 수원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역사라는 거대한 하드웨어에 어떻게 트렌디한 소프트웨어를 이식할 것인가’에 대한 답입니다. 수원은 이제 지도를 보고 찾아가는 ‘장소’가 아닙니다. 우리가 소비하고, 촬영하고, 소유하며,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완성형 콘텐츠 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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