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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빌리티그라운드 Jul 10. 2021

[클래식카 개러지]포르쉐가 만든 벤츠 500 E

포르쉐는 당시 다임러-벤츠로부터 빠른 투어링 세단의 디자인을 위임받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두사람이 이 옛 이야기를 다시 한번 돌아 본다.

1990년 파리 모터쇼에서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후, 500 E는 1991년 봄부터 판매가 시작되었고 투어링 세단의 편안함과 스포츠카와 같은 성능을 모두 보여주었다. 포르쉐 박물관은 이 차의 30번째 생일을 기념하며 클래식카의 반열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이 차의 제작과정에 참여한 팀에 있었던 두명을 보냈다.

개발부문의 프로젝트 매니저인 마이클 횔셔(Michael Hölscher)와 프로토타입 매니징 담당 마이클 뫼니그(Michael Mönig)는 거의 30년 전 500 E에 마지막으로 참가했다. 그들은 100km를 여행하며 주펜하우젠, 바이작, 신델핑겐을 거치게 된다.

그들의 경로는 포르쉐 박물관에서 시작해 다시 돌아오는 것이며 그들이 돌아왔을 때 500 E가 건물 외벽의 거울에 반사되어 빛을 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외관은 사파이어 블랙 메탈릭(컬러코드 009)컬러로, 내부는 가죽, 우드, 컬러풀한 도어 트림, 전동조절식 스포츠 시트와 카세트 라디오를 갖추고 있다. 

횔셔는, "오늘 다시 이 자동차를 보니, 30년 전 CAD 데이터가 없었다면 이 디자인이 이렇게 완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차체 수리를 위한 워크샵에 있는 동료들과 그들의 비전을 정말로 존경한다. "라고 말하며,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를 만난것 같은 느낌을 표현했다. 이들 두 사람은 계속 웅크리고 앉아 눈에 띄는 윙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이 윙은 500 E를 당시 124시리즈의 양산형 모델과 차별화시키는 가장 큰 특징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1998년, 포르쉐는 다임러-벤츠로부터 슈트트가르트 외각 지역인 운터투르크하임(Untertürkheim)에서 개발과 관련된 계약을 체결했다. 기술 사양에는, "기본 모델인 W124의 디자인과 실험적인 시리즈에 대한 개발"이라는 요청사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모델은 500 SL에서 사용한 5리터 V8 4밸브 엔진을 탑재하고 있었다. 1994년 4월까지 10,479대의 4인승 모델을 생산했다. 4인승인 이유는 디퍼렌셜이 너무 커서 뒷좌석 시트 중앙에 시스 서스펜션을 설치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뛰어난 투어링 카


두 사람은 지금까지도 500 E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 "30년 전, 나는 동료 세명과 함께 차를 타고 콘스탄스 호수로 갔었다. 가는 내내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느 순간 속도계를 봤는데 당시 속도는 무려 250km/h를 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을 때 모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섀시, 브레이크와 엔진을 완벽하게 튜닝했기 때문에 탁월한 주행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 당시 브레이크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던 것도 기억한다. 프로토타입 단계에서 팀은 최적의 브레이크 밸런스를 만들기 위해 기존 양산형 모델에 장착된 브레이크 보다 더 강력한 브레이크를 선택했다.

두 사람이 함께 참여했던 메르세데스-벤츠 500 E는 4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했으며, 연식에 따라 다르긴 했지만 0-100km/h는 약 6.1초가 걸렸으며, 최고출력은 326PS, 최대토크는 48.9kg.m의 성능을 냈으며 최고속도는 250km/h에서 제한되었다.

뫼니그는, "엄청난 파워를 냈지만 그것을 자랑하지 않았으며, 다이내믹하며 럭셔리한 모습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500 E는 화려함을 뽐내는 차는 아니다. 순수하게 절제된 표현으로 시선을 잡는 모델이었다."라고 평가했다. 이 두 사람은 포르쉐 박물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인 이전의 루터 빌딩으로 다시 향했다.



루터 빌딩의 보디 조립 라인


"주펜하우젠과 바이작에서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은 오더를 받기 위해 매우 중요했다."고 횔셔는 회상한다. 1990년부터 주펜하우젠에 이는 Werk 2의 루터 빌딩에서 차체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건물은 당시 비어있었는데 500 E를 위한 차체 조립 라인을 설치하기에 충분했다.

생산 절차는 아주 분명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신델핑겐에서 주펜하우젠으로 차체 부품을 공급했으며, Werk 2에서 포르쉐 팀은 이 부품들과 독특한 프론트 윙을 비롯해 사내에서 제작한 부품을 더해 차체를 조립했다. 조립이 끝나면 차체는 신델핑겐으로 이동해 페인트를 칠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후, 주펜하우젠의 뢰슬 바우에서 자동차가 완성되고, 최종 조립과 엔진 장착을 진행했다. 제작은 18일이 걸렸으며 각각의 500 E는 주펜하우젠과 신델핑겐을 2번 이동했다. 횔셔는, "물리적 관점에서 자동차 부품을 앞뒤로 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결국 부품들이 적시에 적절한 장소에 도착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위기 속에서 런칭한 프로젝트


슈트트가르트에 본사를 둔 자동차 제조사간 협력의 시점은 이보다 완벽할 수는 없었다. 포르쉐는 수출 사업 수익 감소, 생산 감소, 주요 성과 지표등 거의 모든 면에서 부정적이었고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1982년부터 2016년까지 포르쉐에서 일했던 횔셔는, "이 프로젝트에서 배운 교훈 중 하나는 항상 모든 프로젝트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런 주문을 통해 팀을 운영할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처음, 이 스포츠카 제작업체는 하루 10대의 차량을 생산했었다.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생산량은 곧 20대로 늘어났다. 뫼니그는, "우리는 카운팅 포인트 0에 있는데, 여기가 바로 500 E가 탄생한 곳이다."라고 말한다. 섀시, 기어박스 및 엔진 장착을 하는 과정을 "결혼"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지점이 포인트 4였으며, 포인트 8에서 고객에게 인도되었다. 

차량이 양산에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이 당시 이 것을 직접 본 두 남자에게는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 이전 루터 빌딩을 방문하며 추억에 젖는다. 횔셔는, "500 E는 내가 담당했던 첫번째 시리즈 제작 프로젝트였다. 30년이 지난 지금, 마치 생산라인에서 방금 차량이 나오는 것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라고 느낌을 말했다.

그는 또한 그의 팀이 그들 자신의 이니셔티브로 일할 수 있는 많은 자유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 두 사람 모두 열정적인 자동차와 모터바이크 애호가라는 것 이외에 또 다른 공통점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횔셔는, "우리는 당시 500 E를 통해 마나 다른 여러 프로젝트를 같이 관리했다. 그것이 인생의 가장 큰 부분 중 하나였으며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라고 대답했다.



놀라움 가득한 퍼포먼스


1980년대 말, 다임러-벤츠는 신델핑겐의 124 시리즈의 자체 생산라인이 너무 작았기 때문에 포르쉐를 개발 서비스 공급업체로 계약했다. 이후 모델 업데이트 과정에서 E 500으로 이름을 바꾼 500 E의 더 넓어진 차체 덕분에 자동차 자체를 생산할 수 없게 되었다. 생산 장비를 개조하는 것은 회사를 위해서도 가치가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500 E가 언뜻 보기에 W124와 비슷하면서도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즉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고성능 세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본 모델 대비 56mm 더 넓고 23mm 더 낮은 차체를 가진 500 E는 포르쉐에서 "프로젝트 2758"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포르쉐에서 35년 이상 근무하며 500 E의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던 뫼니그는 스티어링 휠을 잡았지만 이 차를 처음 운전하며 감상을 내놓은 이전 동료의 말을 듣지 않고 운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30년이 지났고, 지금까지도 자동차 업계는 많은 일이 일어났고 500 E는 숨길 것들이 없었다. 핸들링은 놀랍다. 종방향 가속력은 탁월하며 브레이크는 확실하고 다이내믹한 특성 가득한 이 차를 운전하는 것은 너무 즐겁다. 8기통 엔진의 아름답고 눈에 띄지 않는 특별한 사운드가 너무 좋다."고 감상을 말했다.

바이작 개발 센터에 도착한 횔셔는 헥사곤으로 알려진 설계 엔지니어링 사무실 앞에 주차했다. 그곳은 그 장소에 있는 첫 건물들 중 하나였으며 그들의 여행에서 들러야 할 세번째 장소였다. 그는, "여기에 있는 것이 마치 집에 돌아오는것 같다."라며 키를 그의 동료인 뫼니그에게 주었다.



공기 흐름을 고려한 헤드라이트


바이작은 1980년대 후반 뫼니그의 팀이 500E에 대한 모든 개발 작업을 진행했던 곳이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그곳에서 처음 14대의 차량을 수작업으로 개조했다. 15번째 부터는 조립 작업이 당시 프로토타입 건축 빌딩인 1번 건물에서 진행되었고, 새로 설계된 차체 부품과 수정된 시리즈 부품들을 사용했다.

시승차의 생산은 메르세데스-벤츠가 양산에 들어가는 결정을 내리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횔셔는, "우리는 500 E의 개발을 계획했고 상대적으로 작은 차량에 대형 엔진을 장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회상했다.

더 나은 무게 배분을 위해 배터리를 엔진룸에서 트렁크로 옮겼다. 브레이크 및 배기 시스템이 대폭 수정되었고, 프론트 및 리어 윙 그리고 범퍼 트림이 개선되었다. 8기통 엔진은 두 헤드라이트 주변 틈새로 충분한 공기를 받아들였다. 90%의 개발을 책임진 포르쉐는 드라이브와 차량 구성 요소들을 통합하는데 필요한 거의 모든 작업을 담당했다.  

그들의 여행은 바이작에서 신델핑겐까지 네번째 지점까지 이어진다. 뫼니그는 운전할 때 상당히 당황하기도 했다. "종방향의 다이내믹스는 정말 놀랍다. 나는 젊은 엔지니어로서 당시 많은 책임을 맡았기 때문에 차량에 대한 좋은 기억만을 갖고 있었다. 500 E는 예전에도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젝트다."라고 말했다. 그는 스티어링 휠로 전해지는 경쾌한 움직임, 사운드, 탁월한 주행능력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했다.

그와 프로토타입 건축 빌딩의 동료들은 신델핑겐에서 많은 주말을 함께 보냈다. 모든 관계자들의 엄청난 헌신 덕분에 빠듯한 프로젝트 일정이 늦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동료들과의 협업은 서로 존중했고 집중적이었으며 동등한 조건에서 진행했고 성공에 대한 열망을 바탕에 두고 진행했다."라고 그는 기억한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는 동료들과 수많은 프로토타입 부품들과 함게 신델핑겐 공장으로 차를 몰고 간 첫날이었다고 회상하며 "그전 정말 특별했다."고 말했다. 

주펜하우젠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창문을 열고 V8 엔진 소리를 듣기만 한다. 이후 그가 박물관의 워크샵에 주차하고 나면, 그는 30년이 지난 후에도 500 E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뛰어난 성능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 때까지 그는 그저 길 위에서 주행하며 500 E가 전해주는 느낌을 즐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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