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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비 Oct 05. 2020

오이뮤 어떻게 브랜드가 되었나?

잊혀가는 것에 이야기를 담아 일상에서 조우하게 하는 브랜드_오이뮤


"Oneday I met you"


'당신을 만난 어느 날'이라는 의미를 담고 태어난 디자인 스튜디오 오이뮤를 알게 된 건 좋아하는 브랜드의 협업 제품을 통해서다. 처음에는 이렇게 예쁜 노방 책갈피가, 독특한 색감의 성냥머리가 어디서 만들어질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천천히 오이뮤의 매력에 빠져 이것저것 덕질을 하다 보니, 기억에만 아스라이 존재하는 '오래된 물건'과 '한국적 소재'로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쌓아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이뮤가 만들어가는 가치와 이야기에 매료되어 브랜드의 이름처럼 오늘은 누군가에게 오이뮤를 만난 어느 날이 되길 바란다.



오이뮤의 노방 책갈피와 성냥


오이뮤의 시작과 슬로건

오이뮤의 시작은 디자이너인 신소현 대표의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신소현 대표는 전 직장인 현대카드에서 일을 하다 예전부터 꿈꿔왔던 뉴욕과 포틀랜드로 여행을 떠났다. 포틀랜드와 뉴욕에서 1년이 좀 안 되는 시간을 보내며 그 지역 사람들이 로컬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큰 애정을 가지고 소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것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한 국내 정서 속에서 오래되고 잊혀가는 한국적인 콘텐츠에 기호성을 첨가해 현대인들의 일상으로 다시 되돌려 보내는 것이 신소현 대표가 오이뮤에 부여한 미션이었다.



We connect the past with present.



오이뮤가 진행한 프로젝트 6가지

오이뮤는 현재까지 점오 프로젝트를 포함해서 총 여섯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젝트는 '지우개 프로젝트''색이름 프로젝트'다. 



80~90년대 생산된 지우개들을 모아놓은 오이뮤 전시



지금은 좀처럼 무언가를 물리적으로 지울 일이 없다. 노트를 사더라도 볼펜으로 쓰고 잘못 적더라도 뒷장으로 넘겨버리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자판을 두들겨 적거나 두 엄지로 메모하는 편이 편하다. 오이뮤에서 진행한 '지우개 프로젝트' 아카이브를 찬찬히 보고 있자면 북적거리는 좁은 학교 앞 문구점에서 잘 지워지지도 않는 딱딱하고 예쁘게 프린팅 된 지우개를 고르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괜스레 연필을 사다가 사각사각 잘라 손편지를 쓰다 지우다 하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지금도 초등학생들은 지우개를 쓰려나?



'색이름 프로젝트'는 1991년 출판된 우리말 색이름 사전의 증보판을 토대로 (재)한국색채연구소 한동수 소장님을 만나 저작재산권 이용허락 계약을 맺고 진행한 프로젝트다. 1991년에 색채에 관한 우리말 색이름 사전이 출판되었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그것을 현대인의 감수성에 맞게 재해석한 오이뮤의 노력 또한 놀라웠다.

 


1991년 출판된 우리말 색이름 사전



노란색, 갈색, 연두색 등의 무감정적 색상 체계에 익숙한 내게 노른자 색, 팥색, 청포도 색 등의 치환 과정은 심리적으로 색에 대한 애정과 사물에 대한 인상을 바꾸는 재미난 일이었다. 



노른자 색, 팥색, 청포도색 표지



더구나 코스모스 색은 마음의 소풍을 떠올리는 색이다. 엄마는 길가에 핀 코스모스 무더기에 나를 세워두고 즐겁게 사진을 찍곤 했다. 한들한들거리던 코스모스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내내 버스를 타면 가을마다 나를 반기는 손 같은 역할을 했다. 색이름 프로젝트는 아주 깊이 나를 건드리는 프로젝트다.



가을마다 피던 코스모스는 한들한들 내 마음을 촉촉하게 만드는데ㅋ



오이뮤가 나에게 소중한 이유_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향수

예전에 정부기관과 일을 하며 네이밍 작업을 하던 중 무궁화에 꽂혀 깊이 디깅을 한 적이 있다. 무궁화가 국화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많이 사라진건 파괴적인 식민 문화를 오래 견뎌왔기 때문이다.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은 무궁화뿐 아니라 가양주, 동경이 등 우리가 가진 문화들을 속속들이 파괴했다. 일제는 무궁화가 눈병을 일으키고, 피부에 부스럼을 만든다고 날조하여 우리나라의 정신을 없애고자 했고, 주세령을 내려 가정에서 술을 빚지 못하게 했다. 자신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조각상 고마이누를 닮았다며 경주의 토종견 동경이를 수십만 마리씩 학살했다. 


이후 일어난 6.25 전쟁은 서울을 파괴했고, 파괴된 많은 것들을 빠르게 회복하기 위해 새마을 운동이 일어났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나라는 선진화된 문물들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정서를 키울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보았던 넷플릭스 다큐, '길 위의 셰프 서울 편'에서 그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다른 문화권과 비교해서 보면 확연히 다른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뿐 아니라 잃어버리고 빼앗겼던 문화에 대한 향수가 분명히 존재한다. 마치 시골에서 자라지 않은 도시인들이 자연을 그리워하듯 혹은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듯 우리는 꼭 겪지 않았더라도 그리워하는 빈칸이 우리의 DNA에 남아 있다.


나는 오이뮤가 이 부분을 정확하게 채워주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오이뮤의 '에어 프로젝트'와 '복 프로젝트'가 그 예이다. 오이뮤의 행위는 정원을 가꾸고 꽃을 피워내는 일이고, 오이뮤의 기록은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파괴되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다. 그래서 오이뮤가 오래도록 계속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프로젝트를 지속하길 바란다.



더 읽어볼거리

오이뮤 홈페이지

http://oimu-seoul.com/


이노렌지_오이뮤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0RgC1VlacLg


텀블벅_색이름 프로젝트

https://tumblbug.com/oimu_color?ref=discover


쌩스터 티비_오이뮤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00rqVawn1VQ

https://www.youtube.com/watch?v=GPGDp-7obCs

https://www.youtube.com/watch?v=BGXxMt39SLQ


서울 디자인 재단 블로_9월의 디자이너 신소현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iloveddp&logNo=220811665319&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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