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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선 Aug 12. 2023

'먹'으로 떠나는 예술 여행

KBS오늘아침 1라디오 예술로 떠나는 여행

오늘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오늘은 바로 붓과 먹으로 떠나는 예술 여행 2탄 '먹으로 떠나는 예술여행'입니다. 지난주 방송에서 붓을 그렇게 다양한 동물 털로 만드는 줄 몰랐다는 분에서부터 아는 작가님께서는 본인이 인모붓을 쓰고 있는데 인모붓은 자기가 원하는 길이와 두께로 일일이 깎아서 쓰는 diy 붓이라고 알려주시는 분도 있었고 반응이 아주 다양했는데요 오늘은 지난 시간 못 다했던 먹의 예술로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먹은 모두 검은색이라 종류가 많지는 않을 듯합니다만?

네~ 세상에 다 같은 검은색은 없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요. 먹에도 당연히 종류가 있습니다. 우선 크게 '송연먹'과 '유연먹'으로 나눌 수가 있겠는데요, '송연먹'은 송진을 가득 머금은 소나무의 중심 부분이나 뿌리를 태워서 나온 그을음을 모아서 만든 먹을 '송연먹'이라고 합니다.


'유연먹'은 유채꽃, 홍화, 콩 등의 기름을 태워서 만드는 먹인데요 이러한 식물성 기름 뿐만 아니라 경유와 증유등 광물성 기름을 태워 만든 '유연먹'도 있습니다. 즉 소나무와 기름으로 만드는 먹으로 구분이 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예전에 '송연먹'은 목판 인쇄를 할 때 사용했고 '유연먹'은 금속 활자를 찍을 때 사용했기 때문에 '송연먹'과 '유연먹'은 쓰임새도 질감도 완전히 다르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송연먹. 출처 가일전통안료

   

먹은 무언가를 태워서 만든다는 거네요?   

맞습니다. 바로 그을음이죠. 그래서 먹 만드는 과정은 최고의 '최고의 그을음'을 얻는 것부터 시작이 됩니다. 소나무를 열흘간 먹가마에서 태우고 연통을 거쳐 연막에 쌓인 그을음을 채취합니다. 이렇게 채취된 그을음은 동물의 가죽이나 뼈를 고아 만든 아교와 섞어서 반죽을 하고 먹틀에 네모 반듯하게 성형을 하고, 건조와 가공의 과정을 거쳐서 아주 귀한 먹이 완성됩니다.


또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요 여기에 광택도 넣고 묵장님의 낙관과 글씨를 새겨 넣기까지 최소 7단계 이상의 과정을 거쳐서 좋은 먹 하나를 만드는데 1년에서 최대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만큼 먹을 만드는 과정은 정성에 또 정성을 기울여야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문화재청


나무를 엄청 많이 태워야 할 것 같은데요?  

네 얼마나 채취가 어려운지 소나무 1톤을 태워봐야 겨우 3~4kg의 그을음을 채취할 수 있습니다. 이마저도 소나무를 바짝 태우면 완전연소가 되어버려서 한 열흘간 조금씩 조금씩 태워 불완전연소를 시켜야만 금보다 값진 그을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죠. 좋은 먹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소나무 3~4그루를 태워야 만들 수 있습니다.     


먹을 만드시는 분들을 뭐라고 부르나요?

지난 시간에 붓을 만드시는 분들 필장이라고 부른다고 말씀드렸었는데요, 먹을 만드시는 장인은 먹장 혹은 묵장 이라고 합니다. 국내에 먹장은 딱 네 분밖에 안 계시는데요, 조선시대 초기만 해도 먹을 만드시는 분들을 묵척墨尺이라고 부를 만큼 천한 직업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수공업이나 천한 일에 종사하던 이들을 간干과 척尺이란 한자를 붙여 부르곤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을 만드시는 분들께서 제대로 된 고등 교육을 받기가 어려우셨겠죠? 그렇기 때문에 먹 제조 과정은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졌을 뿐, 문헌으로 남아있는 흔적은 많지 않기 때문에 현재까지 남아계신 우리나라에 전통 먹 제작기술을 이어가시는 묵장님이 몇 분 안 남아계시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묵장님은 어떤 분?

네 분 모두 대단하신 분이지만 그중에서 한상묵 묵장님이 가장 많은 먹의 연구와 개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전통 맥이 끊어진 우리나라 고유의 '송연먹'을 부활시킨 분이시기도 한데요, 국내 유일 '송연먹' 제조기술 전수자이십니다.


'송연먹'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6·25 전쟁을 거치면서 먹 수요자가 급감했고, 산림 보호차원에서 원자재인 소나무를 구할 수 없어 한동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한상묵 묵장님. 출처 음성군


그래서 한상묵 먹장님께서 사라진 '송연먹'을 부활시키고자 직접 일본과 중국을 수없이 다니시며 송연을 생산하는 가마를 찾아 나섰고 송연 채취를 위한 가마를 만들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재현하려 했지만 실패의 연속이셨다고 해요.


그러던 중 2002년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굴된 송연 가마터를 통해 한 먹장님이 운영하고 계신 공방에 전통방식으로 발굴된 송연 가마를 그대로 복원하시면서 끊겼던 '송연먹'의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한국 전통 인쇄 문화의 위상을 드높이셨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딜 가면 한상묵 묵장님을 만날 수 있나요?

  

충북 음성에 위치한 '취묵향 공방'에 가시면 한상묵 명인님을 만나실 수가 있는데요, 묵장님께서 어렸을 때 이모부가 먹물 공장을 운영하고 계셨다고 해요. 이모부를 따라 먹물 공장에서 일하게 된 것이 '취묵향 공방'의 시작이 되었고 처음에 화성에서 자리를 잡으셨다가 지역개발 이슈가 있어서서 충북 음성으로 터를 옮기게 되셨다고 합니다. 충북 음성은 소나무가 많고 해발이 높아 예전부터 먹이 활발하게 만들어졌던 지역이었습니다. 나중에 방문하시면 먹 만들기 뿐만 아니라 먹 공예품, 체험등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니 시간 되실 때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한 분밖에 없으니 송연먹은 굉장히 비쌀 듯합니다만?

네 단순히 가격을 매기기에도 어려울 정도인데요. 워낙 독보적인 퀄리티를 가지고 계시다 보니 만드신 송연먹 80%가 문화재청으로 납품됩니다. 거의 정부에서 전량 수매를 해주시는 거죠. 이렇게 판매된 먹은 규장각 소장품 복원 사업 및 조선왕조실록 복제품 인쇄 사업,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전국 사찰 목판 인쇄 작업, 삼국유사 목판본 인쇄 작업에 쓰이게 됩니다 주요 국보 문화재 관련 복원 프로젝트에 거의 선생님의 먹이 쓰이고 있으니 국가대표 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먹을 외국에 전래해주기도 했다고요?     

삼국시대부터 일본에 우리의 먹을 전래해주고 있었죠. 이미 일본의 기록을 봐도  삼국시대부터 양질의 먹물이 만들어지고, 고구려에서 일본으로 제묵 기술이 전해지고 있었다고 일본에서 이야기합니다. 특히 신라에서 만든 '신라무 가상묵'과 '신라양 가상묵'은 현재도 일본 나라현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쇼소인(正倉院)에 보관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일본 국가문화재인 쇼소인(正倉院)의 모습. 신라에서 전래된 먹이 보관되어 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서양의 잉크와의 차이는?     

일단 잉크를 예전에는 뭐라고 불렀느냐 양먹, 양묵입니다. 양장, 양복 양주할 때 양을 붙인 것이죠. 그리고 우리 먹이나 먹물이 영어권으로 가면 또 잉크로 불렸습니다. 즉 둘 다 아교와 그을음으로 만드는 것이죠.


차이는 동/서양의 관념의 차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먹은 물을 많이 섞어서 사용하기 때문에 잉크에 비해 점성이 덜 하고 묽습니다. 동양은 붓을 사용하면서 동물 털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먹물이 묽어도 잘 묻었어요. 서양은 대체로 펜을 사용해 농도가 진하고 점성이 있는 잉크가 금속이나 철필과 잘 맞았던 것이죠.


또한, 동양은 주로 수묵화나 한국화처럼 붓과 먹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고 서양은 서양화처럼 유화나 수채 물감을 사용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동양화는 선이 뭉툭하거나 날카롭고 거친 느낌이 강하고 한지 자체에 물들게 표현하는 게 특징이 색채도 물과 먹 하나만을 사용해 농담을 조절하였어요. 서양화는 어떠한 사물을 나타내는 것에 집중하거나 화가만의 특징을 잘 살리기 위해 여러 색상의 물감을 사용하고 덧칠하여 정밀하고 확실하게 표현이 됩니다.     


잉크 관련 출처

https://www.goeonair.com/mobile/article.html?no=23807


왜 서양에서는 얇고 날카로운 펜을 썼고, 우리는 부드러운 먹과 붓을 썼을까요?     

▶동양= 사물의 전체를 중시해 명암의 표현이 가능한 붓이 발달

▶서양= 사물의 경계를 중시해 정밀한 선을 그리기 편한 펜이 발달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음식을 나눠먹고 나눠 먹기 편하게 이미 다 잘라져 있는 요리에 젓가락만 가지고 하는 것이고, 서양은 자신의 음식에 나오면서 칼로 또다시 잘라야 하는 선을 긋는 것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동양은 사물 간의 경계보다 전체를 하나로 볼 수 있는 직관을 중시했던 반면, 서양은 사물의 경계를 분명하게 구분하여 분석하는 것을 중시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출처 ㅣ EBS 다큐멘터리 동과 서(예담)

좋은 먹의 조건이란?

좋은 먹은 손으로 들었을 때 느끼는 촉감과 무게, 눈에 보이는 형태, 냄새에 의한 향료, 두드렸을 때의 소리로 판별하죠.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벼루에 갈 때 부드러우면서도 미끄러지듯이 쉽게 잘 갈려서 사용에 편리하고 마음 가는 대로 붓을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 농담(濃淡)까지 좋으면 으뜸이라 할 수 있죠.      


국가적 지원 상황은?

그래서 먹뿐만 아니라 k-black 먹색에도 집중을 하고 있는데요. 국가차원에서 '송연먹' 명품화 사업을 통해 먹과 먹의 컬러를 상품화하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송연먹' 특유의 감칠맛이 느껴지는 먹색을 한국의 색으로 지정해서 프린터기와 만년필 잉크, 붓펜, 드로잉 펜 등에 송연 먹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 외 막걸리, 향수, 비누, 마스카라, 심지어 타투 잉크 업체 등 품목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회사들과 전통 먹을 활용한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k-black 먹뿐만 아니라 먹색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s1PyDUKccs&t=1541s(25분 40초부터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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