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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Sep 15. 2020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초등학교 때, 야구를 잘하던 남학생과 짝꿍이 되었던 적이 있어요. 흰색 바탕에 까만 세로줄이 규칙적으로 그어져 있는 유니폼 상하의를 입고, 넓은 까만색 허리띠를 매고, 등에는 오렌지 색으로 학교 이름이 쓰인 유니폼을 입은 남학생은 수업시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오곤 했어요. 그 땀방울은 짧은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 공책 위로 떨어져 종이를 적시고, 마르면 그 부분이 우글거렸습니다.

  열한 살의 저는, 나무 책상 위에 연필 금을 그어 놓고, “넘어오지 마!”라고 야멸차게 말했습니다. 공책이 넘어오면 옆으로 밀고, 팔꿈치가 금을 넘어오면 손으로 탁 치곤 했답니다. 다른 사람들이 선을 넘어오는 것도 싫고, 그 선을 넘어가지도 않던 까칠한 아이. 그 아이는 그대로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남에게 신세 지는 것도 싫고, 선을 넘어와 부대끼는 것도 싫은 개인주의자. 하지만, 아이가 생긴 다음 어쩔 수 없이 선을 넘어가게 되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아이는 애당초 대화가 통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고, 흘리고, 토하고, 쏟고 예측이 불가능해요.

  시냇물이던 수돗가던, 물을 보면 아무리 들어가지 말라 해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옷을 입은 채로 직진하거나, 모래 놀이터 위에서 몸을 굴려 흙투성이가 됩니다. 하지 말라는 이야기 자체가 무의미해요. 그냥 두고, 젖으면 젖는 대로 실컷 놀게 두고,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흙이 박혀도 바라보게 됩니다.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며 남에게 부탁하거나, 남이 나에게 부탁하는 일들을 조금씩 수용하게 되었습니다.

  반려묘 별이와 함께 사는 것도 비슷합니다. 별이의 취향이 저와 닮았어요. 제가 특히 좋아하는 것들을 귀신처럼 찾아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합니다. 1번은 소파. 제가 좋아하는 형태라, 소파를 천갈이를 하며 10년째 쓰고 있는 제품인데, 그걸 발톱으로 긁어 다 뜯어 놨습니다. 처음엔 잔뜩 뜯겨 있는 소파를 보면 징그러워 소름이 끼치고, 속상하니 별이도 미웠습니다.

  2번째는 독쿠리 난. 제가 좋아하는 식물입니다. 강한 잎이 제멋대로 풍성하게 자라는데, 그 잎도 다 잘라먹어 수형이 망가졌습니다. 아름다운 독쿠리난의 잎 모양이 뭉툭 잘린 걸 보며 안타까워하고요.

  하지만, 또 지금은 익숙해졌습니다. 안경을 안 쓰고 다니는 방법을 찾았거든요. 잘 안 보이니 또 괜찮아졌어요. 어차피 고양이는 또 긁을 텐데, 어떻게 하겠어요. 그냥 다 뜯긴 소파와 독쿠리난의 민둥산 상태를 받아들이는 수밖에요. 

  달리기를 하면서도 불완전함을 만납니다. 산책로에 달리는 러너들을 보면 의상, 보폭, 착지자세, 상체의 움직임, 무릎의 각도 만으로도 왕초보, 초보, 보통, 고수, 초고수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초고수의 자세를 갖고 싶으면 그만큼의 노력과 시간이 흘러야 합니다. 그래서, 팔다리가 튼튼한 할아버지의 발걸음 한 걸음 한 걸음은 꼭 곡괭이질처럼 한 번 또 한 번 그렇게 느껴집니다.

  오늘은 어떤 아주머니가 걸으시는 모습이 영 인상적이었어요. 분명히 걷고 계신데, 발걸음을 내딛음과 동시에 고관절, 무릎, 어깨, 팔꿈치 같은 몸의 관절들이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제멋대로 꺾이며 흔들립니다. 관절을 붙들고 있는 근육의 힘이 약해 그런 걸까요.

  그리고 보니, 오늘 유튜브 동영상 속 제 걸음걸이도 흔들거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의식적으로 관절의 흔들림을 붙들어 매고, 근육에 힘을 더 주며 단단하게 잡아당겨 봅니다. 그렇게 걸으면 온몸에 힘이 들어가 걷기도 뭔가 에너지가 많이 쓰이지만, 흔들림이 덜 하는 걸 느낄 수 있어요.  

  가을이 되니 달리기 더 좋습니다. 몸도 가볍고, 그동안 자리 잡은 달리기 자세 덕분에 척추가 꼿꼿하게 서고, 등 근육을 잡아당기고 있어요. 아직 온몸에 잔근육이 생기려면 멀었지만, 뭐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지만, 완벽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완벽함이란, 실수를 줄이고 완전함에 가까워지려 무한대로 수렴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지루한 달리기를 즐기며 달리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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