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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Jul 03. 2017

버린 물도 다시 보자

지속 가능한 라이프 스타일

창문 밖으로 모처럼 천둥소리가 들린다. 어린 시절에는 종종 듣던 소리인데, 최근 언제 들었는지 기억을 뒤져 봐도 페이지가 펼쳐지지 않는다. 그 정도로 오랜만이구나. 귀한 손님이 오신 것처럼 반갑다.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깨끗한 물, 갈증을 해소하는 비, 그리고 천둥소리, 보송보송한 눈, 투명한 얼음. 일회용품으로 가득한 현재에 충실한 삶은 편리함을 주는 대신,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빼앗아 갔다.


어릴 적엔 아침마다 대문에 달려 있는 가방에서 병에 담긴 우유를 꺼내는 즐거움이 있었고, 일주일에 두 어 번쯤 갓 만든 따끈한 두부를 리어카에 싣고 오시는 아저씨가 오셨으며, 저녁 즈음엔 나무 상자 안에 얼음과 신선한 생선을 싣고 집 앞까지 배달해 주시는 아저씨들이 계셨다. 기다리는 불편함이 있었고, 위생적인 측면이 조금 아쉬웠지만, 집안 그릇에 바로 담아 옮길 수 있으니 포장재가 필요 없는 환경친화적인 방법이었다. 그 시절은 효율과 스마트 폰 대신 낭만과 사람이 있었다. 


먹거리를 그다지 즐기지 않고, 소비지향적이지도 않은 편인 우리 세 식구가 일주일 살고 난 삶의 흔적은 네 봉지의 분리수거 쓰레기로 고스란히 남는다. 비닐포장지, 스티로폼, 종이박스, 우유병.  제일 아까운 것은 우유병이다. 내 병에 2일에 한 번 배달해 주는 우유 배달 서비스가 있다면,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이용할 의사가 있고, 내가 내 병을 깨끗하게 닦아 내놓을 거다. 시간 맞춰 오는 우유 냉장차 앞에서 급식하듯 내 병에 우유를 받아야 한다고 해도 환경을 위해서라면 할 마음이 있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아직도 일상생활에서는 쓰임의 비중이 매우 높다. 장을 한 번 볼라치면 위생비닐 한 장 쓰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가득한 비닐봉지와 우유병, 스티로폼 박스와 종이상자들을 보면서 지구 자원을 펑펑 쓰며 곶감을 빼먹는 낭비에 정말 안타깝다. 1회의 소비를 위한 포장재. 인간이 단 '한 번'을 쓰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한다. 우린 이렇게 많은 지구 자원을 펑펑 쓰는 마지막 세대일 거다. 


그 결과, 우리는 숨쉬기도 어려운 공기, 비가 오지 않는 봄, 창문을 열기 힘든 하루하루, 깨끗하지 않은 물, 수시로 창궐하는 메르스, 신종 플루, A형 독감, 조류독감 같은 전염병 등의 또 다른 불편을 얻었다. 이제 천천히 시간이 흐르도록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더 엄격하게 절제를 생활화하고 자원을 아껴야 한다. 분리수거뿐 아니라, 물도 휴지도 전기도 더 불필요한 낭비는 더 줄이고, 계획적으로 소비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삶을 반영하는 '미니멀 라이프'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이다. 


한국에서 2호점을 준비 중인 스웨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이케아에는 지속가능성 스페셜리스트 (Sustainability Specialist)라는 직업이 있다. 2017년 카탈로그에서 그녀는 욕실에 분리 수거함을 비치하면 재활용이 더욱 쉬워진다는 라이프 스타일의 팁을 제안한다. 이제 제품을 생산할 때에는 생산 과정 및 유통 과정 및 상품의 생애 주기 등을 고려할 뿐 아니라, 폐기 시의 편리함 및 자원 재활용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해야 한다. 

2017 이케아 카다로그 중

작년 여름 끝 무렵 일본의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무지'에서 아무 무늬가 없는 단순한 디자인의 양치컵을 구입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양치컵은 300~350ml 정도인데, 무지의 컵은 예뻐서 사놓고 보니 사이즈가 너무 작았다. 용량을 측정해 보니 가까스로 200ml 정도. 왜 이렇게 작은 물컵을 쓸까 궁금했는데, 양치하며 알았다. 그 정도면 입을 헹구는데 양칫물이 충분하다는 것을. 옆 나라 사람들은 양칫물 한 방울도 버리지 않는다. 

맨 왼쪽 무인양품의 양치컵, 욕실에서 쓰기 좋은 더리빙팩토리의 멜라민 소재의 컵들. 

물 한 방울조차 아끼도록 지속 가능한 삶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다. 숨도 쉬기 어려운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다이어트도, 영어 공부도, 글쓰기도, 운동도 더 나은 모습을 위해서는 '매일매일 꾸준히' 해야 한다. 환경을 보호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일 역시 그렇다. 매일매일 꾸준히.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결국 바위를 뚫는 변화를 가져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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