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엄마 고양이는 엄마 고양이다
라씨는 우리 집 고양이이다. 작년 이맘때쯤 라씨가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었다.
한 마리는 태어날 때부터 아프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죽었고 나머지 세 마리는 아주 건강하게 자랐다. 그중 한 마리는 시간이 되었는지 짝을 찾아 멀리 떠나 버렸고 이후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던 고양이 한 마리는 연못 울타리 붙어서 돌연사했다. 아무도 그 고양이가 어떻게 죽은 지 알 수 없었다. 죽은 고양이는 말이 없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남은 고양이가 바로 벤이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 남은 고양이는 두 마리였다.
사실 세 마리 고양이가 좀 컸을 때부터 엄마 고양이 라씨는 아주 까칠해졌었다. 자기 새끼들 먹이려고 매일 마다 도마뱀이야 생쥐를 잡아오던 엄마 라씨가 언제부턴가가 새끼 고양이들이 가까이 오기만 하면 으르렁 거리거나 날카로운 발톱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얼씬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다 큰 새끼 고양이들 젖을 떼려는 행동이겠지 했었는데 라씨의 행동은 점점 더 심해졌다.
새끼를 낳기 전 라씨는 애교도 많고 차분했었는데 새끼들이 어느 정도 큰 후로는 짜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예를 들면, 내가 그냥 지나가기만 해도 으르렁 거리며 짜증을 냈고 발로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다가도 기분이 좋을 때면 우리 무릎에 앉아서 옛날처럼 그르렁 거리기도 했다. 그런 기복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나는 라씨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홀로 남았던 벤이 첫 번째로 새끼를 가졌다. 벤의 배는 점점 불러왔지만 라씨는 여전히 벤에게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다. 가끔 기분 좋을 때만 임신한 딸과 조금 놀아줄 뿐이었지 대부분은 서로 모른 척하고 지냈다.
난 그런 매정한 라씨를 보며 생각했다.
‘이런 매정한 엄마를 봤나. 아니 딸을 저렇게 싫어해서 어떻게 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그렇게 나는 라씨를 좀 이상한 엄마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날은 벤이 새끼를 낳는 날이었다. 벤은 우리가 자는 방에 들어와서 계속 진통을 했다. 다행히 이미 고양이 출산을 몇 번 봐왔던 터라 나는 벤이 진통을 할 때 작은 박스에 보드라운 천을 깔아주고 벤을 그 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벤의 배를 마사지해줬다.
“성민아. 엄마가 이래 봐도 고양이 출산을 여러 번 시켰잖아. 이렇게 출산할 때는 마사지를 해줘야 돼. 엄마도 너 낳을 때 그랬거든. 옆에서 할머니와 아빠가 마사지를 많이 해줬지.”
성민이와 나는 새끼를 낳기 위해 야옹 거리며 우는 벤을 마사지해 주며 용기를 줬다.
얼마 후, 벤은 세 마리의 예쁜 오렌지 색깔 아기 고양이들을 낳았다.
그때부터 나는 라씨가 걱정되었다. 라씨가 워낙 벤을 경계했었기 때문에 혹시나 벤의 새끼들을 보고 공격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고양이 새끼를 물어서 죽여 버리는 고양이도 있다는데 설마 라씨가 그러지는 않겠지?’
그런데 벤이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라씨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벤의 박스 주위를 왔다 갔다 하더니 갑자기 박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내가 우려하던 것이 현실이 되는 것인가? 나는 최대한 민첩하게 라씨를 꺼내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라씨가 벤을 핥아 주는 것이 아닌가? 출산할 때 나온 양수와 피가 묻어 있는 벤의 털을 혀로 핥아주고 있었다. 그러더니 이제 세상 빛을 본 벤의 아기 고양이들까지 핥아주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사랑으로 말이다. 나는 라씨를 몰라도 정말 몰랐구나.
라씨는 엄마로써 벤의 산후 조히를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라씨를 이상한 엄마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라씨는 여전히 엄마였다.
아마 라씨는 새끼 고양이들을 키우면서 육아 우울증에 걸렸었는지도 모른다. 힘든 시간을 보냈을 라씨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무조건 성실한 엄마 고양이의 모습만 기대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라씨도 사람인데(?) 앗 아니 라씨도 고양이인데. ^^ 꼭 엄마로서의 희생만 강요된다는 것은 슬픈 일일 테니까.
그러고 보니 라씨가 새끼를 낳고 짜증이 많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 무릎에 올라와서 자는 것을 좋아했었다.
라씨도 엄마 고양이이기 전에 주인에게 사랑받는 고양이이고 싶었으리라.
그날 이후로 우리는 라씨를 더 많이 쓰다듬어 주고 예뻐해 준다. 그래서일까 라씨는 요즘 많이 긍정적이 되었다.
예전처럼 애교 많은 라씨가 되었다.
사랑하는 라씨야. 건강하게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