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로또 당첨될 뻔했던 거 알아?"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 왔을 때 딸은 18개월이었다. 나는 부산에 오자마자 일을 시작했고 딸은 엄마 차지가 됐다. 우리 집은 엄마 집 두 층 위였는데 딸은 할머니 집이 제 집인 줄 알았다. 세 살 네 살 적엔 할머니를 엄마라 부르기도 하고 초등학교 들어가서도 계속 할머니 집에서 지냈다.
다른 애들은 통문자로 한글 배울 때 딸은 할머니에게 기역니은 한글을 배웠다. 엄마는 딸 친구 엄마들과도 잘 어울려 같이 어린이 연극을 보러 가기도 하고 어느 피아노 학원이 좋은 지도 알아냈다. 딸이 학교에 입학하고 나선 급식봉사, 횡단보도 도우미, 참관수업, 운동회에 갔다. '할머니 안 오셔도 돼요.'라는 선생님 말에 애 기죽이면 안 된다며 못 가는 나 대신 한사코 나갔다.
할머니가 키워 버릇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네가 제일 이쁘다 소릴 듣고 자란 딸은 구김 없고 자신을 아낄 줄 알고 다정한 아이로 컸다. 엄마가 아플 때 가장 미안하고 고마웠던 건 딸이었다. 딸이 사랑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난다는 소릴 들을 때마다 엄마 덕분이라 고마웠고 그렇게 엄마 등골 빼먹었구나 싶어 미안했다.
내 꿈엔 한 번도 오지 않는 엄마가 딸에게는 여러 번 찾아갔다. 프로이트는 꿈이 인간의 무의식적인 욕구와 충동을 나타내는 방법 이랬으니 딸이 꿈으로 할머니를 불렀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지난 추석 부산에 내려온 딸은 여름에 꿨던 꿈 얘길 해줬다. 할머니가 자신이 번 돈을 적은 장부라며 보여줬는데 첫째 날 4만 원 둘째 날 8만 원 중간에 기억나지 않는 숫자 몇 개와 마지막에 24만 원, 40만 원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꿈을 꾸는 와중에도 이거 로또 번호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잠에서 깼다. 잠결에도 잊어버릴까 싶어 꿈에서 본 숫자 4개를 핸드폰에 적어놓고 다시 잠들었다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계속 떠올라 로또를 살까 고민하다 그만두었는데 그 주 일요일 깜짝 놀랐단다. 당첨번호에 4, 8, 24, 40이 있었던 것이다.
"정말? 와, 신기하다. 로또를 샀어야지. 4개 맞히면 얼마지?"
"5만 원. 나 진짜 너무 신기했어."
"할머니가 용돈 주려고 그랬네."
"그랬나 봐. 나 졸업했다고 선물 주고 싶었나 봐."
딸은 올해 7월 대학을 졸업했다.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던 모양이다. 나 역시 그랬다. 졸업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는 거 다 볼 때까지 오래오래 함께 하길 바랬는데 엄마는 오래 아팠고 3년 전 돌아가셨다.
추석에 납골당에 갔을 때 딸이 명랑하게 말했다.
"할머니 나 로또 못 샀는데 아까워하지 마. 할머니가 용돈 주려고 그랬다 생각하니까 오천만 원 받은 것처럼 행복했어. 고마워. 근데 다음엔 4개 말고 숫자 6개 다 알려줘. 그땐 바로 살게."
엄마가 누워있을 때 나는 엄마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났다. 내가 울면 엄마도 울어 안 울려고 했지만 도리없어 자주 눈물지었다. 나와 다르게 딸은 엄마를 웃게 했다. 이상한 춤을 추며 까불고 짧게 자른 할머니 머리를 이쁘다며 쓰다듬고 홀쭉 빠진 볼에 제 얼굴을 부볐다. 내가 또 울까 봐 엄마는 내 꿈에 안 오는 모양이다. 샘나게 딸에게만 가는가 보다. 지난 봄엔 딸 꿈에 찾아와 웃으며 말했다 한다. 이제 하나도 안 아프다고. 다 나았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고.
납골당에 딸과 같이 가 다행이었다. 날 보며 울었을지 모를 엄마는 딸을 보며 웃었을 것이다. 납골당을 나오는데 딸이 나를 안고 인사했다.
"할머니 엄마 운다고 속상해하지 마. 엄마는 원래 울보잖아. 내가 옆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우리가 할머니 사랑하는 거 알지? 또 올게. 사랑해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