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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 Nov 14. 2023

별을 분양합니다


"이걸  쓸."


아들이 소주잔 세트를 들고 왔다. 고등학교 친들과 른 연말 모임을 하고 받은 선물이.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아들에게 소주잔이란 아무리 봐 쓸모없는 물건이다. 아니나 다를까  콘셉트가 '없는 것'이었단다. 친구들끼리 가격 만 원선으로 정해 서로에게 가장 쓸모없는 선물을 하기로 했다 한다. 어릴 적 친구 그런가 애들이 귀엽게  각했다.

"요즘 우리가 너무 열심히 사는 거 같아서. 한다고 바쁘고 공부하는 애들도 그렇고. 다들 얼마나 찌들어 사는지 몰라요. 그래서 쓸데없는 짓 좀 하자 한 거지. 재밌었어요."


아들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어허, 이 녀석들이 나이 서른도 안 돼서 장 알다니. 거야말로 장자가 말한 쓸모없 쓸모, 무용지용 아닌가. 


 말을 듣고 나니 내가 했던 지극히 무용한 선물 하나가 떠올랐다. 30대 초반 어느 가수의 열렬한 팬이었는데 그때는 팬들이 모이는 카페를 팬페이지라 하  팬피라 불렀다. 팬피에선 일 년에 중요한 기념일 개 있었. 가데뷔일과 생일이 가장 큰 행사였고 밸런타인 데이나 크리스마스 챙기기도 했다. 그때그때 달랐지만 편지와 카드 보내가끔은 모금을  가수에게 필요 물건했다.

생일이었는지 데뷔일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해 가수가 앨범을 내지 않았고 요즘 같지 않아 활동을 하지 않으면 어디서도 소식을 듣기 어려웠다. 팬들에게 공백기란 보릿고개와 같은 시기였다. 얼른 새 앨범 내고 공연하길 기다 어떤 선물이 좋을까 고심했다. 그때 누군가 별 얘길 꺼냈다. 디선가 별을 선물했단 소릴 들었다는 것이다. 별을 준다고? 어떻게? 별을 살 수 있단 말이 납득되지 않았는데 찾아보니 정말 별을 분양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별을 판 사람은 한강물을 퍼서 팔았던 옛날 김선달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허무맹랑하고 어리석은 일이 분명한데 그땐 그만큼 딱 맞는 선물이 없어 보였다.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니 별마다 복잡한 번호가 붙어있 분양받으면 소유증서를 주고 별에 가수 이름을 붙여 준댔다. 스타에게 별을 선물하다니 마나 멋진 일인가. 맞아. 우리 가수한테 별 하나쯤은 있어야지.

묘하게 설득된 우리는 별 하나를 분양받았다. 15만 원 주고 샀다. 마치 언젠가 들릴 예정이라도 있는 듯 위치를 고려하고 가능하면 빛센 별로 사고 싶어 며칠을 고민했다. 신중하게 골라 분양받은 별에 가수 이름이 붙 순간, 벅차오르는 기쁨이여. 무용하여 한없이 아름다운 별이여. 어린 왕자가 꽃 키우고 화산 청소하며 하루에 노을을 마흔네 번 바라본 곳을 상상하며 얼마나 설레고 뿌듯했는지 모른다. 증서를 선물하며 이렇게 적었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별처럼 볼 수없어도 우리에게 오기 위해 어디선가 애쓰고 있음을 압니다. 별보다 높은 별이 되시길." 


아악, 누오그라든 제 손가락 좀 펴주세요. 발가락은 제가 펼게요. 손발 오그라드는 편지와 함께 별 증서 받아 든 가수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왜 내 이름 아무 데다 갖다 붙이지. 참 쓸데없는 짓 하는구나 했으려나.  이러고 놀면 재밌나 궁금겠지만 한번 해보십시오. 진짜 재밌니다.

시간이 흐르고 정신 차리고 나니 은 가장 어이없고 쓸모없는 선물이었다. 이 얘기를 아들에게 하며 나는 눈물 흘릴 정도로 깔깔 어댔다. 쓸모없는 일의 가장 큰 미덕은 이런 즐거움일 것이다. 별을 분양받은 걸 이해할 수 없는지 웃는 내가 이상한 건지 아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도 쓸데없는 소주잔을 받아온 주제에. 아들은 딱 한마디만 했다.


"그래서 그 별이 어딘데."


모른다. 모르지. 알 리 없지. 지금 이 상황에서 별 위치가 중요한가. 이럴 때 요즘 애들은 '너 T야.' 한다던데 이건 몰라 더 재밌고 몰라서 훨씬 멋진 일이다. 이 별도 저 별도 다 그 별일 수 있으니 이 별을 봐도 저 별을 봐도 무용했던 한때의 기억으로 웃을 수 있다.


장자가 말하길 상수리나무는 쓸모없어 목수에게 찍히지 않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는데 쓸모없음이 쓸모가 됐다 말했다.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사람을 쉬게 하니 세상의 수단으로만 쓸모를 평가하려 들면 안 된다 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모두가 노력한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고 자기 계발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려 애쓴다. 이런 태도를 인생 대입하는 순간 삶은 숨이 차고 메말가기 쉽다. 그러니 가끔 무용한 것을 사랑하고 즐거울만한 쓸모없는 짓을 해야 한다.


거기서 밥 나오, 무슨 의미냐, 사는데 도움 되냐는 질문받더라도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다면 당당하게 쓸모없음을 즐야 한다. 어리석어 보여도 세상의 욕망과 방향이 다르더라도 그래야 삶이 숨 쉬고 영혼이 풍요로워진다.


지금 내게 글쓰기가 그다. 벌어먹는 일도 아닌데 시간과 공을 들인다. 이유는 단 하나 즐거움이다. 책 내고 작가될 주제가 기도 하지만 장자의 소요처럼 목적 없이 의도 없이 쓰고 싶다. 그렇게 소요하다 물고기 곤이 붕새가 되는 기적처럼 겨드랑이 깊은 곳에 숨겨진 날개 하나 발견할 수 있다면 좁은 강을 떠나 멀리 날아 하늘 연못에서 편 쉬리라.


저 하늘 어딘가에 추억 하나가 빛난다. 시절 감정은 소멸했으나 한때의 쓸모없음이 얼마나 즐거운지 가르쳐준다. 지금의 무용을 응원한다. 이것 또한 쓸모없음의 쓸모 아닌가.



“이제 뭔가를 시작하려는 우리는 ‘그건 해서 뭐 하려고 하느냐’는 실용주의자의 질문에 담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하는 거야’, ‘미안해. 나만 재밌어서’라고 하면 됩니다. 무용한 것이야말로 즐거움의 원천이니까요.”(김영하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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