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하지의 영화 리터러시] 다시, 시간은 반복된다.
다시 중동이 전쟁의 포화에 휩싸였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한 폭격과 이란의 반격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어 전 세계가 에너지 수급에 심각한 문제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던 페르시아의 후예 이란은 아랍의 이슬람과 다르고 이스라엘의 유대교와 더욱더 다르다. 종교 갈등의 오랜 역사는 이제 합의와 화해를 찾을 수 없는 국면으로 향하고 있다. 40년 가까이 통치했던 최고지도자를 잃은 이란이 어떤 선택을 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현대사에 있어 중동 문제가 국제적 문제로 주목 받게 되는 분수령이 된 사건이 1972년에 있었던 뮌헨 올림픽 테러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검은 9월단’에 의해 자행된 이 사건은 최악의 결과로 귀결되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나아가 중동 각국의 갈등이 전면전이 아닌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으로 전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1972년, 독일 뮌헨에서 올림픽이 다시 열린다는 사실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선 정치적 선언이었다. 인류 화합이라는 올림픽의 이상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나치의 심장부였던 독일에서 가장 극적으로 구현될 수 있었다. 서독은 이스라엘을 공식 초청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의 원죄를 씻고 미래로 나아가려 했다. 이스라엘 역시 국가 수립 이후 국제 사회에서의 입지를 다질 기회로 삼았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만남은 팔레스타인 무장 조직 ‘검은 9월단’의 테러로 인해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뮌헨 올림픽 참사는 이미 수차례 영화로 재현된 바 있다. 그중에는 테러의 전말을 시간순으로 묘사한 윌리엄 그레엄의 <검은 9월단, 21 Hours at Munich(1976)>이 있고, 스티븐 스필버그는 <뮌헨_(2005)>을 통해 이스라엘 모사드의 보복 작전을 심리극의 형태로 풀어냈다. 하지만 팀 펠바움의 <9월 5일: 위험한 특종(2024)>은 전혀 다른 각도를 택한다.
이 영화는 뮌헨 테러를 중계한 방송국 ABC의 스포츠 중계진을 중심에 둔다. 뉴스 제작진이 아닌 스포츠 담당자들이 현장을 보도하게 되면서, 혼란과 분노, 윤리적 갈등이 방송국 내부에서부터 피어오른다. 뉴스를 제작하는 방송국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와 기술적 시스템을 스포츠 담당자들이 다룰 수 있는가가 관심의 대상이다. 거기다 이 사건의 크기와 무게는 관심도와 파급력에서 상상을 초월한다.
이 상황에서 펠바움은 테러 현장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방송국이 허락하는 시각과 관점에서만 사건을 다룬다. 시시각각 일어나는 일들은 망원렌즈를 통해 먼 거리에서 흐릿하게 보여준다. 뉴스 화면, 그리고 희미한 총성이나 섬광만이 전달되는 방식이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중계를 시청하던 당시 시청자들과 동일한 위치에서 사건을 체험하게 된다. 이런 시점의 제한은 흥미와 긴장감을 관객에게 주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함과 답답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또한 흥미 위주로 과거의 사건을 보려고 하는 관객에서 더 깊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우리는 인질의 무사 귀환을 기도하면서도, 동시에 방송국의 특종이 성공하길 바란다. 이 모순이 가지게 되는 고민은 관객으로서 환호와 동시에 절망으로 다가선다. 공포와 흥분, 안도와 죄책감이 겹치는 순간들, 결국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 비극의 진정한 관전자란 누구인가?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사건을 영화로 본다는 건 스포일러가 다 드러나서 패가 다 까발려진 도박판에 오르는 것과 같다. 이 사건에 대해 사전에 알지 못했던 사람들도 검색 한 번으로 사건의 경위를 다 알 수 있다. 하지만 팀 펠바움의 연출은 그런 단점을 다 잡아먹어 버린다. 영화의 시작 부분부터 어느새 우리는 1972년의 무더운 방송국의 혼잡함으로 들어가 버린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뉴스룸,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오보와 혼선, 그리고 마지막 순간, 오보로 인한 안도감과 실제의 비극적 결말이 교차하면서 영화는 절정에 이른다. 그때 관객은 비로소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사건임을 자각하게 된다.
펠바움의 이 작품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뮌헨에서 죽은 이스라엘 선수들의 그림자는, 오늘날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미국과 대립하는 이란의 전쟁과 겹친다. 4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세계는 ‘복수인가 화해인가’라는 선택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 어쩌면 이 지역에서 흘린 피로 세계는 풍요를 누려왔는지 모른다. 이제 그 풍요의 대가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9월 5일: 위험한 특종>은 과거를 들여다보는 영화가 아니라, 현재를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이며, 동시에 반복을 경고하는 영화다. 우리는 여전히 뉴스 화면을 바라보는 시청자다. 전환점을 놓치고 있는 것도, 어쩌면 우리다.
- 모하지 칼럼니스트 (mossisl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