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T기업들의 사옥들이 보여주는 익명성
서울 분당선 정자동 일대는 한때 신도시의 꿈을 담고 태어난 계획도시였다. 넓은 도로망과 획일적 고밀도의 아파트 단지, 그리고 거대 기업들의 사옥이 뒤섞여 있는 이 도시는, 어느새 서울의 위성 도시가 아니라 자본과 기술, 정보와 속도가 각축하는 새로운 중심축으로 진화하고 있다.
기억이 맞다면 지금의 파크뷰자리는 문화체육 시설 자리였다. 1990년 아르바이트 나간 건축사사무소 현상설계경기 공모전의 대상지였다. 우리나라 도시개발이 항상 그렇듯 시작과 끝은 항상 다르다. 시장을 모르는 교수들 중심으로 전략을 작성하니 막상 상을 펴고 보면 상위에 올라갈 음식이 안 맞는 셈이다. 분당의 여러 곳이 그렇고 이곳 정자동은 계획과 180도 다르게 완성된 지역이다.
그나마 분당개발의 아이디어가 실현된 하나가 한복판에 위치한 ‘네이버 사옥이다. 그리고 이어 준공된 네이버 1784’는 이러한 도심의 변화 양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그리고 동시에 그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념비적 (?) 건물이다.
건축은 언제나 시대의 거울이자 미래를 비추는 창이다. 네이버 1784는 그 형식과 규모, 자재와 기술력 면에서 분명 이 시대의 최전선에 있는 건물이다. 그러나 그것이 담고 있는 공간의 의미, 도시적 태도, 그리고 건축적 언어는 과연 그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지 궁금하면서도 기업의 사옥이기에 기업정신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관찰하게 된다.
이 건물은 외관에서부터 우리에게 일종의 침묵을 강요한다. 그냥 통상의 건축 형태임에도 왠지 모를 고요함이 있는데, 그것은 차분함을 전달하는 고요함보다는 약간 압박감이다. 이 거대한 직육면체는 어떤 언어적 해석을 거부한 채, 수직성과 투명성이라는 이름 아래 철저히 자기 자신만을 응시한다. 특히 연두색에 이어 지어진 회색빛 타워는 무수한 유리의 세로 루버로 덧씌워져 마치 철통보안 같은 서바실의 외피처럼 읽히며, 건물과 외부 세계 사이의 감각적 교류를 차단한다. ‘투명’하다는 말은 오늘날 건축에서 미덕처럼 사용되지만, 이 건물에서의 투명함은 오히려 불투명함의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외부에서 내부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며, 내부에 들어가더라도 그 구조는 수직적 이동을 통해 폐쇄적으로 전개된다.
건축은 단지 외형의 조형성이 아니라, 그 내부에서 경험되는 감각과 움직임, 그리고 시간의 흐름과 직조된 기억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네이버 1784의 공간은 마치 사용자의 움직임과 감각을 철저히 계산된 효율과 감시의 장치 속에 종속시키는 듯하다. 모든 이동은 정제된 루트로 한정되며, 공간은 자유로운 배회와 체류를 허용하지 않는다. 기술적 완결성과 정보의 집약은 공간의 개방성과 사유의 여백을 제거한다. 이곳은 ‘일하는 공간’이라는 개념이 인간의 노동을 기계적 동선과 기능적 배치로 환원시킨 극단적 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건축이 담고 있는 색채 언어는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전체 회색빛의 유리 커튼월로 감싸진 건물, 또 하나는 녹색 그라데이션 내부 전동 루버로 처리된 건물이다. 이 ‘색’의 대비는 마치 기능적 구획처럼 사용되며, 시각적 상징이 되기를 포기한 채 단순한 구분의 도구로 기능한다. 녹색은 생태, 지속 가능성, 젊음, 혁신을 은유하는 듯 보이나, 실질적으로 그 내부의 구조는 기존 오피스 빌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듯 색채는 장식적 기호로만 존재하며, 공간과의 긴장감이나 감성적 교감을 유도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제품의 패키지 디자인처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시각화한 피상적 상징에 불과하다.
건축은 대지와 맥락, 그리고 인간의 삶과 맞닿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물론 아파트 계획도시에 가로의 인간적 컨텍스트는 존재하진 않다. 그럼에도 이 꽉 막힌 압박감은 숨이 막힌다. 네이버 1784는 마치 기존 도시와 단절된 채, 독립된 시스템으로만 작동하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대지 경계선은 단단히 봉인되어 있으며, 인접한 도로와의 관계성은 무심하다. 보행자 레벨에서의 접근은 협소하고 경직되었으며, 스케일은 인간적이지 않다. 이는 공공성과 개방성을 무시한 자족적 자본의 공간이다. 건물은 도시의 일부가 아니라, 스스로 히키코모리처럼 섬으로 정의했다.
네이버 사옥에서 안타까운 점은 글로벌한 포털회사들이
보여주는 지극히 인간적 관계에 대한 노력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최신 기술을 도입하고, 자동화 시스템과 AI 로봇을 구동시키는 것이 아니다. 건축의 철학은 공간이 인간과 맺는 관계, 삶을 수용하는 방식, 그리고 존재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러나 네이버 1784는 그 어떤 실존적 사유도, 인간에 대한 근본적 질문도 품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 건축은 인간을 효율적이고 무소음의 구성원으로 재편하려는 관리적 구조 속에 가두려 한다. 이곳에서 인간은 주체가 아니라 시스템의 일부이며, 공간은 기능의 매트릭스로만 나타난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사실상 수익형 상가 건축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단지 고도화된 기술과 기업 이미지를 통해 포장되었을 뿐, 공간은 여전히 최대한의 밀도와 최소한의 여백, 그리고 전면적 통제를 지향한다. 이는 자본이 도시와 건축을 다루는 방식의 전형이며, 네이버 1784는 이를 가장 정교하게 구현한 사례일 뿐이다. 고밀도의 층고, 최대한의 연면적 확보, 공간의 획일화, 그리고 상징의 배제는 오늘날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이 만들어낸 건축의 프로토콜이다.
우리는 이 건축이 건축상 수상작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 건축이 한국 건축의 미래라는 상징을 부여했다. 그러나 이 수상은 건축이 삶의 예술이 아니라, 자본과 기술력의 지표에 중점으로 둔 것이다. 건축은 단지 ‘잘 지어진 것’이 아니라 ‘왜, 어떻게, 누구를 위해’ 지어졌는지를 묻는 철학적 행위여야 한다. 그러나 이곳에는 질문이 없다. 그저 응답만 있다. 자본의 요청에, 효율의 명령에, 기술의 욕망에.
더욱이 거대한 조경 속에 안착된 외계우주선 같은, 도넛 형태의 애플 사옥과도 너무 비교가 되고, 심지어 캘리포니아에 있는 삼성전자 사옥과도 비교된다. 압도적인 폐쇄성의
형태다.
도시는 점점 더 무표정한 건축들로 채워지고 있다. 개성과 기억, 장소성과 역사성은 사라지고, 브랜드와 기능, 정제된 ‘경험’만이 남는다. 그리하여 네이버 1784는 하나의 건축이라기보다, 프로토타입이다. 반복될 수 있는, 확장될 수 있는, 복제 가능한 하나의 모델. 그것은 도시의 빈틈을 메우지 않고, 오히려 더 큰 공허를 남긴다. 그 공허는 우리가 건축을 대하는 방식, 도시를 설계하는 방식, 그리고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글쎄, 처음 연두색 루버 (이것도 프랑스 파리 미테랑 도서관의 나무루버를 연두색으로 바꾼 것일 뿐 오리지널리티가 없다.)의 유리덩어리가 네이버 경영진을 감동시켜서 이번엔 기계이미지의 실지로 결정 했는지 모르지만, 너무 비인간적이다. 이런 형태도 얼마든지 매력적일 수 있는데, 주어진 땅을 빈틈없이 채워서일까?
도시에서, 건축은 과연 우리 삶의 어떤 본질에 응답하고 있는가? 그것이 품고 있는 기술과 디자인이 아닌, 그것이 만들어내는 삶의 풍경, 도시의 감수성, 그리고 미래의 인간형에 대해 말이다. 건축은 단지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공간적 표현이다. 이 표현이 빈약할 때, 우리는 그 속에서 진정으로 거주할 수 없다.
때문에 경부고속도로 너머 세차장에서 바라보면 네이버 1784는 인접한 두산그룹의 사옥보다 더 권위적이고 폐쇄적이고, 사실은 구시대적이다. 전혀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는 단선적으로 성공한 “브랜딩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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