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황금, 건강, 인기 등 오늘을 지배하는 우상들
한국교회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어느 순간부터 교회의 강단에서는 ‘축복’이 ‘부’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고, 신앙의 증거는 물질적 성공으로 평가되었다. 거대한 예배당, 초호화 성전, 교회의 영향력을 앞세운 정치적 목소리. 이 모든 것이 과연 예수가 가르친 길이었을까.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세속적 권력을 움켜쥐려는 모습이 신앙의 본질을 퇴색시키고 있다. 더구나 마틴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이 그토록 죄악시했던 권력화된 기독교가 오늘날 한국 기독교, 특히 선동적 대형 교회 목사들이 주도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성경을 읽어보자!
예수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셨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마태복음 21:13)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는 상업 논리 속에서 움직인다. 대형 교회를 세우고, 더 많은 헌금을 모으고, 방송과 출판 사업을 확장하는 것에 주력한다. 선교를 목적으로 교회마다 케이블 방송을 하고, 최근에는 유튜브 등 SNS에 주력한다. 이는 마땅히 비난할 일은 아니지만, 주객전도의 느낌이 강하다. 예수그리스도가 그토록 찾아다녔던 약한 자들보다는 드러나 있는 자들에 주목하는 것이다. 약한 자의 신앙고백보다 드러나 있는 자들의 신앙고백이 중심으로 보이고 있다. 교회가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가난한 자와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부유한 자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힘을 과시하는 데 집중하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과 정반대다.
그런데도 교회는 이러한 문제를 직면하지 않는다. 대신, 동성애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며 정치적 논쟁을 부추긴다. 이는 한국교회가 스스로의 부패를 가리기 위한 도피처로 활용하는 수단은 아닐까.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한복음 8:7) 하지만 많은 교회는 스스로의 죄악을 돌아보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의 삶을 정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마치 바리새인들이 도덕적 우월감을 내세워 예수를 시험했던 것처럼 말이다. "너희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화 있을진저! 이는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요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음이라." (마태복음 23:23) 예수는 겉으로는 의롭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불의를 품은 종교 지도자들을 꾸짖으셨다. 더욱 참혹한 것은 차별금지법을 문제시하는데, 사실 그중 동성애는 지극히 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까지 포괄하는 법 일체를 정치적 이슈화로 공포심 조장하고 있다.
십계명과 예수그리스도, 하나님의 첫 지적은 우상숭배금지다.
한국 사회에서 기이한 장면 하나가 있다. 정치인들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무당을 찾고 점괘를 듣는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교회의 비판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성경은 점술과 무속을 강력히 금지한다. "너희는 점쟁이나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 (레위기 19:31) 그런데도 교회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침묵한다. 왜일까? 정치권과의 유착 때문은 아닐까. 동성애 문제에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성경이 분명히 금하는 미신적 행태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야말로 교회의 위선을 드러내는 한 단면이다.
문제는 일부 목사들이 정치에 개입하는 수준을 넘어서 극우적 선동까지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폭력과 살인을 암시하는 발언조차 서슴지 않는다. 이는 기독교의 본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예수께서는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마태복음 26:52)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오늘날 몇몇 목사들은 신도들에게 증오를 부추기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예수의 가르침과 일치하는가?
하나님은 불의한 종교 지도자들을 심판하신다고 경고하셨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내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에게 내린 복을 저주로 변하게 하리라." (말라기 2:2)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불의에 눈감고 거짓을 행할 때,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라 말씀하셨다. 오늘날 일부 목사들이 권력을 탐하고 탐욕에 빠져 신앙을 상품화하며, 폭력을 조장하는 것이야말로 이러한 경고가 현실이 된 모습이 아닐까.
더 문제는 신도들을 하나님의 세계로, 예수그리스도 닮기를 이끌어야 할 신학자, 목사들이 망각하고 죄악의 세계인 우상세계로 이끈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우상은 무엇인가? 물신과 권력이다.
특히 차별금지법을 왜곡하여 동성애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신도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이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은 우상숭배와 다름없다. 바울은 말한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겼느니라." (로마서 1:25) 목사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외면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 집단을 공격하며 신앙을 정치적 도구로 변질시키는 것이야말로 참된 우상숭배가 아닐까?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로마서 1:28)
차별금지법이 보호하려는 것은 단순히 동성애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존엄을 유지하며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성경애는 동성애뿐만 아니라 성적 타락 자체를 금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의 심판을 받은 것은 강간, 간통 등 온갖 성적 타락 자체를 벌한 것이다. 그러나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법의 다양한 인권 보호적 측면은 외면한 채, 오직 동성애 문제에만 집중하며 공포심을 조장하고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반대 되는 태도다. 예수는 소외된 자들과 함께하셨고, 누구도 배척하지 않으셨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누가복음 5:32) 그분의 사랑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오늘의 기됵교인이라면 예수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마음에 되새겨야 한다.
보통의 지극히 매일 죄를 짓고, 매일 회개하는 연약한 한 명의 기독교인으로 매일 기도하게 된다.
정치와 종교가 결합할 때, 신앙은 도구로 전락하기 쉽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고린도후서 10:4) 그러나 일부 목사들은 마치 신앙을 정치적 무기로 삼아 특정 이념을 옹호하고, 반대자들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하나님의 뜻이라 포장하며, 신도들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요구한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성전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예수를 배척했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신앙의 본질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위험을 초래한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라." (로마서 12:18)고 가르친 예수의 메시지는 어디로 갔는가? 극단적인 정치적 발언을 일삼고, 분열을 조장하며, 폭력까지 암시하는 일부 목사들의 행태는 기독교의 본질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교회는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