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컴의 면도날에서 살펴본 제품 원칙
여기 가상의 상황을 그려보겠습니다.
“이 기능 추가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제품 회의에서 누군가 말했습니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어요. 경쟁사도 비슷한 기능이 있었고, 일부 사용자도 요청했기 때문에요.
“좋네요, 한번 만들어봅시다.”
2주 후 기능은 완성됐습니다. 디자인도 세련됐고, 작동도 완벽했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사용자 이탈률이 오르고, 고객 문의엔 “너무 복잡해요”라는 말이 늘었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제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우리 사용자는 떠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기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은 경제성의 원리(Principle of economy) 또는 검약의 원리(lex parsimoniae), 단순성의 원리를 의미하는 오컴의 면도날을 보고 제품 구현에 필요한 원칙이라 생각되어 글을 써봤어요. 글의 순서는 아래와 같아요.
1. 80%의 기능은 아무도 쓰지 않는다
2. 실패한 제품들의 공통점
3. 더 많은 선택이 자유를 빼앗는 이유
4. 14세기 철학자가 남긴 교훈 - 오컴의 면도날
5. 성공한 제품들의 공통점
6.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야 할까
7. 결론, 삭제의 용기
제품 분석 회사 Pendo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소프트웨어의 80% 기능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고 해요.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새로운 기능을 계속 추가하곤 합니다.
“경쟁사 A가 이 기능 있던데요.”
“고객사에서 요청했어요.”
“이미 70% 만들었으니까 완성하죠.”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모두 합리적으로 보여요. 하지만 이런 결정들이 쌓이면 제품은 점점 복잡해지게 돼요.
이어지는 더 큰 문제는 한번 만든 기능은 지우기 어렵다는 거예요.
“혹시 쓰는 사람 있을 수도 있잖아요.”
“개발하는 데 한 달 걸렸는데 이걸 지워요?”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결국 우리 제품은 “혹시 모르니까” 남겨둔 기능들로 가득 차게 됩니다.
혹시 iTunes를 기억하시나요? 처음엔 단순한 음악 재생 앱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음악 구매, 팟캐스트, TV 쇼, 아이폰 동기화까지 전부 들어오게 된 제품이었어요.
그 결과는 어떤가요? 과거 아이팟이라는 mp3를 사용할 때는 자주 이용하곤 했지만, 지금은요?
물론 음악을 듣기 위한 제품이 mp3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고, 음악도 구매보다는 스트리밍 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iTunes 자체는 느리고 복잡한 앱이 되었어요.
결국 2019년, 애플은 iTunes를 음악 앱, 팟캐스트 앱, TV 앱, iPhone/iPad 관리와 같은 여러 앱으로 나누게 됩니다.
여기서도 제시하는 문제는 명확해요. “더 많이”를 추구하다가 “더 좋게”를 놓쳤던 부분이라고 생각돼요.
우리 한 번, 100가지 맛을 조합할 수 있는 자판기를 상상해 볼까요?
어떤가요? 무려 100가지 맛의 조합이라니! 이걸 정말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정말 대단해요!
하지만 실제로는 이 자판기 앞에 선 사람들은 1분, 2분.. 어쩌면 1시간을 고민하게 될지도 몰라요.
자판기 뒤에는 줄이 길어질 테고, 결국 몇몇은 그냥 자판기를 포기하고 말 거예요.
100가지의 맛을 조합할 수 있는 기술은 정말 혁신적이었지만, 사용자 경험은 실패였어요.
심리학자 Barry Schwartz는 이를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이라 불렀어요.
그는 슈퍼마켓에서 잼을 시식할 수 있는 부스를 설치하고 실험을 진행했는데, 실험 결과는 이랬어요.
24가지 잼 진열, 지나가는 고객의 60%는 시식대에 머물렀으나, 구매율은 3%
6가지 잼 진열, 지나가는 고객의 40%는 시식대에 머물렀으나, 구매율은 30%
구매율을 보면 무려 10배 차이가 납니다.
어쩌면 우리 제품도 이와 같다고 생각돼요. 사용자는 기능이 적어서 떠나는 게 아니라, 원하는 걸 찾기 어려워서 떠나게 돼요.
14세기 철학자 윌리엄 오컴은 이렇게 말했어요.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가정하지 말라.”
철학에서 이 개념은 '가장 단순한 설명이 가장 진실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고방식을 말해요. 복잡한 가설을 세우기보다, 관찰된 현상을 최소한의 전제로 설명하라는 원칙입니다. 그래서 오컴의 면도날은 불필요한 가정이나 요소를 면도날로 잘라내듯이 과감히 ‘잘라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입니다.
이 원칙은 700년이 지난 지금, IT 제품에도 그대로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면 이를 과감하게 제거하고 없애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제품을 단순하게 만들어 사용자의 경험을 개선할 수 있다면요.
Google의 첫 화면을 떠올려보세요. 검색창 하나, 버튼 두 개. 그게 전부였습니다.
iPhone은 물리 키보드 대신 버튼 하나로 세상을 바꿨습니다.
토스 초기 송금 화면도 마찬가지예요. 전화번호 입력 / 금액 입력 / 전송. 단 세 단계가 끝이었어요.
이들의 공통점은 명확해요.
“무엇을 더 넣을까”보다 “무엇을 뺄까”를 고민했다는 부분이에요.
이제 새로운 기능 요청이 들어왔을 때, “어떻게 만들까”보다 먼저 이런 질문을 던져보세요.
“사용자의 80%가 이 기능을 쓸까?”
“이 기능이 없으면 핵심 가치가 훼손될까?”
“이게 제품을 단순하게 만들까, 복잡하게 만들까?”
“적게 만든다”는 건 “덜 고민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오히려 더 깊이 고민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증명하듯 스티브 잡스는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훨씬 어렵다.”라고 말했어요.
기술이 발전할수록, 만들 수 있는 게 많아질수록
우리는 “무엇을 만들까”보다 “무엇을 만들지 말까”를 더 자주 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팀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게 정말 필요한가?”
불편한 질문이 될 수 있지만, 이 질문이 바로
더 나은 제품을 만드는 시작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