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e en Place',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여있다.
레스토랑 주방은 언제나 바쁘다.
정확하게 익히고 간을 한 음식을, 가장 완벽한 온도로, 적절한 타이밍에, 손님 앞에 우아하게 전달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움직인다. 요리사 한 명의 실수는 주방의 리듬을 깨고, 레스토랑 전체의 흐름을 늦춘다. 주방에서는 그 누구의 실수도 용납이 되지 않지만, 혹시 실수가 생겼을 때는 잘잘못을 따지지도 않는다. 바로 모두가 뛰어들어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 지금 이 상황의 원인을 따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사치다.
"Do you have your 'Mise' ready?"
('미즈'가 준비되었나?)
시간과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주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완벽한 '미즈'가 아닐까?
'미즈 Mise' 는 '미장플라스 Mise en Place' 를 줄여 부르는 말로,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여있다'는 뜻이다. 서비스가 시작되기 전, 필요한 모든 것이 준비되었는지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물어보는 질문이다.
스페셜 메뉴에 쓰일 대구 필레 fillet 는 트레이에 4x5로 정렬해 작업대 아래 냉장고에 넣어 두었는지? 요리마다 다르게 나가는 소스는 각각 소스팬에 담아 스토브 위쪽에 라벨링 하여 45도 각도로 배치하였는지? 서비스 중에 사용하는 스푼과 스페출러 spatula는 오른손을 뻗었을 때 잡히는 바로 그 자리에 정리가 되어 있는지? 마른행주는 작업대 칼 옆에 깨끗이 15x10cm로 접혀 있는지? 가니쉬로 올라가는 각종 허브는 정확한 크기로 다듬어져 어제와 같은 순서대로 놓여있는지?
셰프가 첫 손님의 주문을 외치는 순간부터, 요리사는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미장플라스를 준비했던 몇 시간 전의 나의 계획과 생각을 믿고 이제는 몸으로 정확하게 음식을 만들어 내야 한다. 혹시 내가 요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 옆의 동료가 나의 미장을 믿고 계속 나의 요리를 이어가야 한다. 모든 것이 정해진 자리에 정확하게 정리되어있어야 하는 이유다. 오늘 저녁을 무사히 넘기기 위한, 아니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한, 요리사들끼리의 약속이고 책임이다. (* 주방은 날카로운 칼과 뜨거운 불이 있기 때문에 종종 크고 작은 사고들이 생긴다.)
'나의 마음은 제자리에 놓여 있는가?'
미장플라스는 요리 재료와 기물을 정리하여 제자리에 놓는 것만을 말하진 않는다. 바쁘고 정신없을 시간을 앞두고 나의 마음도 제자리에 있는지 살펴야 한다. 아침에 잠시 신경을 곤두세웠던 동료에 대한 감정, 무언가 준비가 덜 된 것 같은 불안감, 여전히 분주한 마음. 머릿속의 여러 감정과 생각들을 잠시 각각의 서랍에 넣어두고, 깨끗이 정리된 마음으로 내 앞의 요리에 집중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음식을 먹을 그 누군가에 대한 마음이 준비되어 있는지 들여다본다. 음식이라는 것이 누군가가 먹어야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체, 그저 멋진 음식을 만들겠다는 자기만족을 위해 요리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의 마음을 바라본다.
요리할 때 마음 상태는 그 음식에 '왠지 모를 OOO'라는 이름의 소스로 뿌려진다. 그것이 사랑일 수도, 따듯함일 수도, 냉정함일 수도, 오만함일 수도.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했던 사람이라서 내가 더 민감한 것일 수도 있지만, 종종 참 멋지게 플레이팅 된 맛도 좋은 음식이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음식을 대할 때면, 살짝 가슴이 아프다. 이 음식을 완벽한 기술로 아름답게 플레이팅 한 요리사의 눈빛이, 혹시나 부드러운 온기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장플라스는 복잡하고 다양한 요리를 한 번에 만들어 내야 하는 레스토랑 주방에서 뿐 아니라, 소소한 요리를 하는 내 집의 작은 주방에서도 유용하다. 특히나 베이킹을 할 때 미장플라스의 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다.
풀풀 날리는 밀가루, 끈적이는 설탕, 미끄덩한 달걀과 기름. 작은 케이크 하나 굽겠다고 자칫 주방이 엉망진창이 되기 일쑤다.
오늘은, 조금 미리 계획을 세워 재료를 깔끔히 정리해 놓고 베이킹을 시작해보자. (미장플라스!)
레스토랑의 주방과는 달리, 평가받지 않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곳이 나의 작은 주방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레시피에는 적혀 있지 않은 마지막 재료인 나의 따듯한 마음을 듬뿍 준비하고, 이 케이크를 맛있게 먹을 그 누군가의 미소를 상상하며.
"Do you have your 'Mise' ready?"
지름 15cm 케이크 한 개 / 40분
당근 케이크 재료
// 마른 재료 dry ingredients //
중력분 1/2 cup
베이킹소다 1/2 tsp
계핏가루 1/8 tsp
넛맥 (육두구) 간 것 1/16 tsp
소금 1/16 tsp
(옵션) 클로브 clove 간 것 1/16 tsp, 혹은 올스파이스 allspice* 간 것 1/8 tsp
// 젖은 재료 wet ingredients //
식용유 1/4 cup + 2 Tbsp
옅은 갈색 설탕 1/3 cup
달걀 1개
잘게 자른 당근 1/2 cup **
잘게 자른 호두 1/4 cup **
크림치즈 아이싱 재료
크림치즈 100g
무염버터 50g
슈가파우더 50g
* 올스파이스 allspice는 자메이카 후추 Jamaican pepper라고도 불리는 열매로 계피, 넛맥, 클로브 등의 여러 가지 스파이스의 향을 모두 가진 매우 독특한 향신료입니다.
** 당근과 호두는 푸드 프로세서 food processor 로 잘게 자르면 매우 수월하게 자를 수 있어요.
조리법
오븐을 180도로 예열합니다. 모든 베이킹은 정해진 온도의 예열된 오븐에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해요.
오븐이 예열되는 동안 '미장플라스'를 준비합니다. 밀가루도 꺼내고, 옅은 갈색 설탕도 꺼내고, 달걀도 꺼내고. 모든 재료를 우선 꺼낸 후, 레시피에 적힌 '재료' 순서대로 분량에 맞게 그릇에 각각 담아주세요. 모두 담은 후에는, 레시피 순서대로 배치하고, 빠진 재료가 없는지 다시 확인합니다.
미장이 끝난 베이킹. 이젠 순서대로 섞어서 굽기만 하면 끝이에요.
당근 케이크 재료 밑의 '마른 재료 dry ingredients'를 우선 섞도록 합니다. 중력분에 베이킹소다, 계핏가루, 넛맥 간 것, 소금, 옵션으로 적어 놓은 클로브나 올스파이스 가루를 잘 섞어주세요. 이제 '젖은 재료 wet ingredients'를 섞습니다. 식용유에 옅은 갈색 설탕과 달걀을 넣고, 거품기로 충분히 그리고 빠르게 저어 기름이 달걀과 분리되지 않도록 합니다. 여기에 잘게 자른 당근과 호두를 넣어 섞습니다. 마지막으로 젖은 재료 섞어 놓은 것에 마른 재료 섞어 놓은 것을 조금씩 부어가며 저어주세요. 밀가루의 흔적이 없을 때까지만 살살 섞습니다.
< 마른 재료 dry ingredients / 젖은 재료 wet ingredients >
거의 모든 베이킹 레시피는 마른 재료와 젖은 재료를 분리하여 섞은 후, 함께 다시 섞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어요.
마른 재료는 말 그대로 수분이 없는 재료를, 젖은 재료는 수분이 있는 재료를 말해요. 재밌는 것은,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설탕'입니다. 설탕은 분명 마른 재료이지만, 오늘 레시피에서 처럼 젖은 재료와 먼저 섞이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만드는 결과물이 바삭한 식감을 내야 하면 (바삭한 파이 크러스트, 바삭한 쿠키 종류) 설탕을 '마른 재료'와 함께 섞고, 결과물이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내야 하면 (케이크, 부드러운 쿠키 종류) 설탕을 '젖은 재료'와 함께 섞어요.
케이크 반죽을 틀에 붓고 (다 구워진 케이크를 틀에서 쉽게 분리하도록, 유산지를 깔고 반죽을 부으면 좋아요), 예열된 오븐에서 25분 정도 굽습니다. 케이크 가운데를 이쑤시개나 케이크 테스터로 찔러 반죽이 묻어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오븐에서 꺼내세요. 익지 않은 반죽이 묻어 나오면 5분 정도 더 구운 후,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케이크가 다 구워지면 틀에서 꺼내 식힘망에 올려서 완전히 식혀주세요.
케이크가 식는 동안 크림치즈 아이싱을 만듭니다. 크림치즈와 버터는 차가운 것을 바로 쓰지 마시고, 상온에 30분 이상 놓아두어 살짝 부드러워진 것을 사용하시면 좋아요. 크림치즈와 버터를 우선 핸드 믹서기로 잘 섞어 부드럽게 만든 후, 슈가파우더를 조금씩 넣어가며 섞어주세요.
충분히 식은 케이크에 아이싱을 올려줍니다. (따듯한 케이크에 아이싱을 올리면, 아이싱이 녹아 흘러요.) 아이싱은 자유롭게 개성 있게 올려주세요. 케이크를 가로로 반을 잘라 사이에 아이싱을 발라주셔도 좋죠. 전 아이싱을 끝낸 후, 위에 호두 가루도 뿌려주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