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는 버티고, 약자는 무너진다
요즘 ‘가족 해체’라는 말은 더 이상 충격적이지 않다. 정통 가족은 낡았고, 다양한 가족 형태가 인정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나는 변화를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파괴적 진보를 지지하고, 다양성을 소중히 여긴다. 하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가족이 해체되면, 누가 가장 먼저 무너질까. 가족이 무너졌을 때 가장 큰 충격을 받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 질문은 단순히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고소득자, 사회적 강자들은 여전히 잘 살 것이다. 가족이 없어도 아이를 키울 수 있고, 돌봄 서비스를 사서 쓸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취약계층은 다르다. 2021년 한부모 가정 아동 빈곤율은 47.7%였다. 같은 해 양부모 가정의 아동 빈곤율은 10.7%에 불과했다. 무려 네 배 차이다. 가족이 해체될수록, 그 자리를 대신할 사회적 안전망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그 피해는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가된다. 아이들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흔들린다.
나는 그 아이들을 위해 말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족 해체를 찬성하는 목소리의 상당수는 그 해체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나는 그들을 보호하려고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그들로부터 “시대착오적”이라는 비난을 듣는다. 내 말이 보수적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웃기지만, 이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나는 변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변화의 방향이 최소한 약자를 더 약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그게 그렇게 구시대적인 주장일까.
핵가족 비율은 1970년 71.5%에서 2020년 80.3%로 올랐다. 3대 이상 직계가족은 18.8%에서 4.7%로 줄었다. 돌봄은 점점 분산되고, 보호는 줄어들고 있다. 이미 사회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가족’을 전제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가족의 해체를 더 가속한다면, 그 결과는 단순한 ‘다양성 확대’가 아니라 ‘불안정의 확대’일 수도 있다. 가족 해체는 누구에게나 같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자산과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은 잘 버티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무너진다. 우리는 그 차이를 직시해야 한다.
나는 다양성을 지지한다. 하지만 다양성은 취약한 사람을 더 취약하게 만들지 않을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 가족의 형태는 다양해져도 좋다. 그러나 가족의 본질, 즉 돌봄과 안전, 회복의 기능은 지켜져야 한다. 사회는 그 본질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제도와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 가족 해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그 자리에 새로운 안전망과 회복의 장치가 들어설 때만 우리는 진짜로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형태가 아니라 본질을 지키는 것, 그것이 진짜 진보다.
#생각번호2025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