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이 빠르다’는 오해, ‘적응이 빠르다’는 진실
환경이 바뀌어도 잘 적응하고, 일시적인 불안이나 결핍이 있어도 금방 회복하는 존재. 그래서 영아기는 “문제가 생겨도 괜찮은 시기”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오해가 하나 숨어 있다. 영아기의 탄력성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영아기는 분명 변화의 폭이 크다. 뇌는 빠르게 연결되고, 기능은 아직 고정되지 않았으며, 하나의 경험이 정서·인지·신체 전반에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영아는 조금만 자극해도 크게 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탄력성(resilience)이라기보다 가소성(plasticity)에 더 가까운 개념이다. 가소성은 형태가 아직 굳지 않았다는 뜻이다. 쉽게 바뀔 수 있다는 말이지, 반드시 건강하게 회복된다는 뜻은 아니다.
발달 이론에서 말하는 탄력성은 손상이나 스트레스 이후에도 기능을 유지하거나 재조직하는 능력을 뜻한다. 여기서 핵심은 ‘원상 복구’가 아니다. 영아는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회복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신경 회로를 사용하거나
다른 정서 전략을 채택하거나
환경에 더 민감해지는 방식으로
기능을 우회해 유지한다. 그래서 영아는 무너지지 않는다. 적어도 겉으로는.
이 지점에서 탄력성이라는 개념은 위험해진다. 영아는 문제 상황에서도
울음을 줄이고
요구를 낮추고
환경에 맞춰 빠르게 조정한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생각보다 잘 크네.”, “애는 금방 잊어." 하지만 많은 경우, 이것은 회복이 아니라 조기 적응이다. 영아는 환경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바꾼다. 그것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영아기의 탄력성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회복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 영아는 빨리 회복되는 존재가 아니라, 빨리 적응해버리는 존재다. 그리고 그 적응은 단기적으로는 문제를 가려주지만, 장기적으로는 비용을 남길 수 있다. 성인이 되어서야 나타나는
이유 없는 불안
과도한 자기조절
관계에서의 긴장
설명되지 않는 신체 반응
이것들은 종종 너무 이른 적응의 흔적이다.
영아기의 탄력성은 분명 희망이다. 인간은 쉽게 망가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 개념이 잘못 사용될 때, 환경의 책임은 사라지고 개인의 ‘강함’만이 강조된다. “그래도 잘 컸잖아.” 이 말은 때로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라는 면죄부가 된다.
영아기의 탄력성은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문제를 견뎌냈다는 뜻이다. 그리고 견뎠다는 사실은 나중에 돌볼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설명과 조정이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영아기는 끝났지만, 그때 만들어진 적응은 아직도 우리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것을 이해하는 일은 과거를 탓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어려움을 정당하게 해석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생각번호202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