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애는 불가항력#26] 책임이 위험해지는 순간

사랑이 주권을 대신할 수는 없다

by 민진성 mola mola

보호처럼 보이는 말

로맨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내가 다 책임질게.” 이 문장은 따뜻하게 들린다. 마치 상대의 삶 전체를 감싸 안겠다는 약속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문장은 언제나 사랑의 언어로만 작동하지는 않는다.



책임은 보호이자 권력이다

책임은 보호다. 그러나 동시에 권력이다. 누군가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말은 그 사람의 삶에 개입하고, 결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다 책임질게”는 이렇게 번역될 수 있다. “이 사람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나에게 집중시키겠다.”



그는 그녀를 보호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세계를 점유했다

그가 차단한 것은 다른 남자의 감정이 아니었다.

누가 정보를 아는지

누가 문제를 해결하는지

누가 판단하는지

그는 그녀의 삶에 작동하는 세계의 출입문을 자기 손에 모았다. 그녀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녀가 관계 맺고 있던 세계를 자기 손에 옮긴 것이다.



보호가 선언되는 순간, 사라지는 사람

“내가 다 책임질게”가 선언되는 순간, 그녀의 선택권은 흐릿해진다. 누가 도울지, 누가 알 권리가 있는지, 누가 개입해도 되는지—이 결정권이 그녀에게서 그에게로 이동한다. 그녀는 보호받는 대상이 되지만, 동시에 자기 삶의 주권자 자리에서 밀려난다.



그래서 이 장면은 낭만이 아니라 위험하다

이 장면이 낭만적으로 소비될수록 더 위험해진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삶에 대한 세계 관리자가 되는 순간, 보호는 점유로 바뀐다. 사랑은 곁에 설 자격이지, 삶의 주권을 위임받는 면허가 아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질문

이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대개 빠져 있다. 그녀는 무엇을 원했는가. 사랑은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줄 권리가 아니다. 사랑은 함께 서는 것이지, 대신 서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 보호는 권력이 된다.




#생각번호202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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