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두 얼굴

박제된 박물관과 살아있는 공방 사이

by 민진성 mola mola

똑같이 전통의 방식을 따르는데, 어떤 작품은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것이라 손가락질받고, 어떤 작품은 시공간을 초월한 장인정신이라며 경외의 대상이 된다. 이 둘을 가르는 것은 ‘형식을 지켰는가’가 아니다. 그 형식을 대하는 예술가의 태도가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다.



고리타분함 : 정신이 빠져나간 껍데기의 반복

고전이 고리타분해지는 순간은 그것이 ‘안전한 대피소’가 될 때다. 새로운 시도를 할 용기가 없거나, 깊은 사유 없이 선조들이 만들어놓은 정답지를 그대로 베끼기만 할 때 고전은 생명력을 잃는다.

이때의 규범은 예술가를 가두는 감옥이 된다. 왜 이 선을 그어야 하는지, 왜 이 화성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원래 그래왔으니까"라는 관습에 매몰되는 순간, 고전은 박제된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새로움뿐만 아니라 ‘진실함’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가동이 멈춘 기계의 반복적인 소음과 다를 바 없다.



장인정신 : 규범이라는 극한을 견디는 힘

반면 고전이 장인정신으로 승화되는 순간은, 예술가가 규범을 ‘지름길’이 아닌 ‘가장 험난한 고행길’로 받아들일 때다.

장인은 규범이 주는 제약을 기꺼이 껴안는다. 남들이 보기엔 똑같은 그릇이고 똑같은 연주 같지만, 장인은 그 좁은 규범의 틀 안에서 완벽에 도달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0.1mm의 오차와 싸운다. 여기서 발휘되는 에너지는 파괴적인 혁신만큼이나 뜨겁다.

사람들은 그 치열한 정교함에서 경외감을 느낀다. 규범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규범이라는 극한의 환경을 뚫고 ‘본질’에 닿으려는 의지가 보일 때, 우리는 그것을 장인정신이라 부른다.



고전은 매 순간 다시 태어나야 한다

결국 고전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매번 새롭게 증명되어야 하는 과정이다.

연주자가 베토벤의 악보를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자신의 영혼을 담아낼 때, 베토벤은 고리타분한 유물이 아니라 동시대의 동료가 된다. 규범은 예술가를 묶어두는 밧줄이 될 수도 있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하는 사다리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고전에서 장인정신을 읽어낼 수 있는 이유는, 그 규범 속에서 '죽어 있는 과거'가 아니라 '살아 있는 현재'의 고군분투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고전은 멈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치열하게 움직이는 자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정점의 다른 이름이다.





#생각번호20260114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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