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리라는 신화

우리는 왜 기하급수적 곡선에 중독되었나

by 민진성 mola mola

현대 사회에서 복리는 단순한 수학 공식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도덕이자 신념이다. "작은 노력이 쌓여 거대한 결과가 된다"는 말은 성실함을 찬양하는 가장 세련된 방식이 되었고, 자산 형성의 유일한 정답으로 군림한다. 하지만 복리라는 화려한 곡선 뒤에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몇 가지 서늘한 진실이 숨어 있다.



'생존 편향'이 만든 허상

복리의 마법이 성립하기 위한 가장 잔인한 전제는 '중단 없는 지속'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선형적이지도, 안정적이지도 않다. 복리 곡선이 가팔라지는 '티핑 포인트'에 도달하기 전에 대다수는 예기치 못한 질병, 사고, 혹은 번아웃이라는 변수를 만난다. 복리의 기적을 이룬 소수의 사례만 조명될 뿐, 그 곡선이 꺾여버린 수많은 실패는 '노력 부족'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진다. 복리 신화는 결국 살아남은 자들만의 기록일지도 모른다.



현재를 저당 잡힌 미래 권력

복리를 우상화할수록 우리는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의 나'를 끝없이 희생시킨다. 지금 누릴 수 있는 한 잔의 커피, 지금 떠날 수 있는 여행의 가치는 복리 계산기 안에서 30년 후의 수백 배 가치와 비교당하며 난도질당한다. 하지만 시간은 금전과 달리 저축할 수 없다. 20대의 체력으로 누리는 경험과 70대의 자산으로 누리는 경험은 본질적으로 치환 불가능하다. 복리에 집착하는 삶은 결국 '가장 풍요로운 장례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될 위험이 크다.



구조적 불평등을 가리는 장치

복리는 '초기 자본(Seed)'이 클수록 압도적으로 유리한 게임이다. 1억의 10%와 100만 원의 10%는 시작부터가 다르다. 그럼에도 사회는 복리의 원리를 보편적 성공 공식으로 홍보하며, 개인의 가난을 '일찍 시작하지 않은 탓'이나 '인내심 부족'으로 돌린다. 이는 자산 불평등이라는 구조적 모순을 개인의 성실도 문제로 치환해버리는 아주 교묘한 도구로 작동한다.



복리보다 중요한 '운'의 영역

우리는 노력이 복리로 쌓인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현실의 거대한 도약은 종종 '비연속적인 행운'에서 온다. 복리는 점진적인 우상향을 약속하지만, 세상은 때로 퀀텀 점프(대도약)나 갑작스러운 몰락으로 움직인다. 복리에 대한 맹신은 삶의 불확실성과 무작위성이 주는 기회들을 오히려 '계획에 없던 변수'로 취급하게 만들어, 인간의 유연성을 거세한다.




#생각번호20260116




본 글은 RE:Mind 아카이브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관련 기록과 개인 아카이브는 여기에서 이어집니다.

https://molamola.live/product-category/korean-essays/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1화해방의 조건: 세련된 종속에서 벗어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