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은 오염을 '치유'했는가, '추방'했는가
부유한 국가들이 보여주는 깨끗한 도심과 맑은 공기는 그들의 환경 기술이 뛰어난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오염을 국경 밖으로 밀어낼 수 있는 '자본의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는 환경 보호라는 명목하에 자행되는 일종의 '환경적 불평등의 고착화'다.
부유한 국가가 집중하는 것은 '지구 전체의 오염 감소'가 아니라 '내 눈앞의 거주 환경 개선'이다.
굴뚝의 이동: 과거 런던이나 뉴욕을 뒤덮었던 매연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 굴뚝들은 비용이 싸고 규제가 느슨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으로 옮겨갔다.
소비와 생산의 분리: 선진국 시민들은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전기차를 타지만, 그 전기차의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타국의 광산은 황폐해지고 정련 과정에서 막대한 오염 물질이 배출된다. 즉, 오염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야 밖으로 추방'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흔히 보는 국가별 탄소 배출 통계는 대부분 '생산 기준(Territorial emissions)'이다.
통계적 세탁: 만약 어떤 나라가 자국 내 공장을 모두 폐쇄하고 모든 물건을 수입해 쓴다면, 그 나라의 탄소 배출량은 0으로 찍힌다. 하지만 그 나라 국민이 소비하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타국에서 배출된 탄소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소비 기반 배출(Consumption-based emissions): 실제 소비를 기준으로 통계를 다시 내보면, 선진국들의 오염 책임은 영토 기준 통계보다 훨씬 가파르게 상승한다. 결국 부유한 국가들은 자신들의 소비 활동으로 발생하는 오염의 책임을 타국에 전가하고 있는 셈이다.
재투자할 여력이 된다는 것은 오염 물질을 정화하는 기술에 투자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오염 리스크를 가장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지역으로 배분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선진국은 고부가가치 산업(설계, 금융, 서비스)만 내부에 남기고, 저부가가치이자 고오염 산업(제조, 폐기물 처리)은 외부로 밀어낸다.
이는 '부유해지면 환경이 좋아진다'는 쿠즈네츠 곡선의 환상이 사실은 '부유해지면 더러운 일을 남에게 시킬 수 있다'는 비정한 경제 논리의 결과물임을 시사한다.
결국 부유한 국가들이 보여주는 쾌적한 환경은 지구 전체의 오염 총량을 줄인 결과라기보다는 '오염의 공간적 재배치'에 가깝다. 그들은 자본을 이용해 자신들의 거주지를 '환경적 낙원'으로 만들고, 그 낙원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오염된 뒷마당을 국경 너머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가난이 환경 오염의 주범이라는 주장은 오염의 최종 소비자인 부유한 국가들이 생산자인 가난한 국가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매우 편협하고 우월주의적인 발상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