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스스로를 '진일보'하다고 믿는가
예술의 역사는 끊임없는 '부정(Negation)'의 역사다. 아버지를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를 세우려는 예술가들의 시도는 외견상 '진보'의 형태를 띠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단순한 앞서나감이 아니라 '시대와의 불화'이자 '고유한 실존의 증명'에 가깝다.
과학이나 기술은 과거의 성과를 딛고 더 높은 효율을 향해 나아가는 선형적 진보를 추구한다. 하지만 예술에서의 '새로움'은 반드시 '더 나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간의 무력화: 21세기의 화가가 아무리 새로운 기법을 내놓는다 한들, 그것이 수만 년 전 동굴 벽화나 르네상스의 거작보다 '우월한 예술'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차별화의 강박: 예술가들은 스스로를 '진일보한 사람'이라고 믿기보다, '이전의 누구와도 같지 않은 사람'이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 새로움은 수직적인 계급이 아니라 수평적인 영토 확장에 가깝다.
물론 역사 속에는 스스로를 '시대의 선구자'라고 굳게 믿었던 예술가들이 존재한다. 이른바 '아방가르드(전위)' 예술가들이다.
최전선의 감각: 군대 용어에서 유래한 아방가르드라는 단어처럼, 이들은 대중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미래의 미학을 자신이 선취했다고 믿는다. 이때 예술가는 '진일보한 사람'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느낀다.
이해받지 못함의 역설: 이러한 자부심은 종종 고독과 결합한다. "나의 작품이 지금은 외면받지만, 미래에는 고전이 될 것"이라는 믿음은 그들이 기존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것을 내놓게 하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예술가가 기존의 것과 다른 것을 내놓으려 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자아의 해방'에 있다.
관습이라는 감옥: 기존의 양식은 예술가에게 안전한 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기도 하다.
파괴를 통한 창조: 피카소가 "모든 창조적 행위는 파괴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듯, 예술가에게 새로움은 '진보했다'는 평가를 듣기 위함이 아니라, 기존의 틀을 깨고 나와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예술가는 스스로를 '진일보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대한 예술가일수록 자신의 작품이 미래를 향한 전진이라기보다,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근원적인 무언가를 건드리는 행위라고 생각하곤 한다.
결국 예술가가 다른 것을 내놓으려는 이유는 남보다 앞서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는 고유한 우주는 이전의 그 누구와도 치환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새로움은 '진보의 척도'가 아니라 '생존의 증거'인 셈이다.
#생각번호2026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