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몰랑맘 Dec 24. 2023

인생을 가로지르는 칭찬

'어떤 칭찬은 인생을 가로질러 함께 갑니다.'


요즘 핫한 책 정헌재 작가님의 '귀여운 거 그려서 20년 넘게 살아남았습니다.' 에서 내 마음을, 엄마로의 마음을 가로지른 문장이다. 내가 받아보지 못한 세상 좋은 것들은 다 주고 싶은 마음. 그게 엄마 마음이다. '인생을 가로지르는 칭찬'보다 아이 인생에서 축복이 되는 말이 있을까.  


pixabay

정헌재 작가님의 아이 시절, 어느 은사님의 '글'에 대한 칭찬은 작가님에게 축복이었다. 20년 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게 한 힘, 즉 성공 (정헌재 작가님은 살아남았다고 표현했지만) 의 원동력이 이 바로 그 칭찬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강렬한 칭찬, 내 인생을, 십 수년의 세월을 가로지르는, 아니면 기억이라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칭찬이 있는가. 슬프지만 바로 떠오르는 칭찬은 없다. 없으니까 나이 마흔이 되도록, 아이 둘의 엄마가 되도록 나를 찾아 헤메였던 것 아닐까.


적어도 인생을 가로지르는 칭찬이라면 '말'로만 끝나면 안되는 것 같다. 작가의 은사님의 경우 말 뒤에 '도움요청'과 '반복'이 뒤따랐다. '너 글씨 잘 쓴다.'에서 끝나지 않고, 학급에서 필요한 글씨 쓰는 일들을 부탁했다. 그리고 '글도 잘쓰니 나중에 이런 일을 하면 되겠다.'고 덧붙여 주셨다. 20년이 지나 제자에게 연락해 또 일거리를 주신 선생님. 맛집을 모시고 간 제자에게 '너는 어떻게 이런데도 잘 아니.' 라며 또 칭찬하신다. 작가는 이런 선생님의 '칭찬화법'을 언급하며 어쩌면 바닷 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을 열 다섯살의 아이가 살아남았다고 표현했다. 


아마 은사님께서 작가님을 찾아 연락을 주지 않으셨다면 이 책에 '인생을 가로지르는 칭찬'이 등장했을까. 성인이 되서까지 작가의 재능을 잊지 않고, 찾아주신 은사님의 진심과 다시 그 분을 마주했을때 변하지 않은 익숙하고 사소한 칭찬 화법이 작가님 책에 은사님이 소환될 수 있었던 결정타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아마 내가 이런 칭찬을 떠올리지 못한 이유는 칭찬을 받아본 경험이 전무한게 아니라 도움요청으로 이어졌던 칭찬, 반복적인 칭찬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 아닐까. 그렇다면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냥 '행운'인 것일까. 그런 분을 만난것 자체는 행운일 수도 있겠지만, 그 행운을 붙들어 기대에 부흥하려 노력했던 15살의 작가님도,  성인이 되서까지 감사함으로 기억해낸 작가님의 따뜻함도 몫을 했을 것이다.


다시 엄마로 돌아와 생각해 보면 나는 아이가 '행운'의 여신을 만나기만을 바랄 수는 없다. 일단은 내가 '칭찬'을 하되 도움요청과 반복을 덧붙여야 함을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사용했던 칭찬은 그냥 '좋은 말'이었다. '듣기 좋은 말.' 조금 더 솔직해 지자면 아이가 저항없이 책상에 앉을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당근 정도였던 것 같다. 이제 나는 칭찬의 힘을 알았으니 당근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와, 책 너무 잘 읽네.' '너무 잘 썼다.' 에서 끝나는게 그 동안의 칭찬이었다면 '엄마 이게 필요한데 너가 글을 잘 쓰니 좀 도와 줄래?' 부탁도 해보고, '역시 넌 글을 잘 쓰는구나.', '네가 골라준 책이 너무 재밌었어. 역시 안목이 있네.' 등등의 반복적이고 연쇄적인 칭찬도 해보는 것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분이 한 분 계시니 바로 남편이다. 별스런 잘못을 하지 않아도 내 맘 속 어딘가의 분노 버튼을 자꾸 눌러대는 분. 내가 또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몰라 대화를 시작할 엄두를 잘 내지 못하게 만드시는 분이다. 그런 사람이기에 '칭찬' 같은 고운 말은 입밖에 잘 내지 않았었다. 필요할 때만 겨우 찾았을 뿐이다. 아이들에게는 '당근'이었을 지언정 하루에도 열댓번 칭찬을 해댔던거 같은데 말이다. 


글을 읽고, 쓰다보니 오늘도 깨닫는다. 그동안 나는 남편에게는 칭찬없는 도움요청을, 아이들에게는 도움요청 없는 칭찬만 했었구나. 깨달음이 행동변화로 이어지기까지는 또 적응과 노력의 시간이 필요할테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치 남편 몫의 칭찬과 아이들 몫의 도움요청 목록은 생각해 두었다. 


작가님의 에세이 한 줄에서 얻은 엄마와 아내가 깨달은 '칭찬' 이 작은 날개짓이 되어 아이의 인생을 가로지르고, 남편의 인생을 거쳐 가정의 평화로, 아이의 성공 혹은 생존으로 돌아오기를 소망해 본다. 아니 그런 원대한 미래를 꿈꾸기 전에 행운의 여신을 붙들 수 있는 감사한 마음과 따뜻함을 오늘 하루 기억하고 살아봐야겠다. 아이와 남편에게 건낼 좋은 말들을 생각하면서 이미 마음이 어느정도 데워진 느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